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뱀딸기는 안 따 먹나

김창집 2012. 6. 22. 00:03

 

뱀딸기는 시골길 도랑이나

길섶 습한 데 잘 자라기 때문에

그곳에 뱀이 자주 출몰하여

뱀딸기라 한 모양이다.

 

제주어로는 ‘아야머리탈’이라 하는데

당도는 그냥 딸기보다 못해도

그런 대로 먹을 만하여 잘 따먹었다.

먹을 때는 뱀딸기를 이마에 갖다 대고 돌리면서

딸기 몸에 붙은 돌기가 이마에 붙도록

‘아야머리 아야머리’하고 주문을 왼 다음에 먹어야

나이 들어 대머리가 안 된다고 했다.

 

그 때 그것을 잘 지켜서일까?

집안 내력이 젊어서부터 대머리인데

아직도 머리가 더러 남아 있는 것이?

요즘은 맛이 없어서인지 잘 안 먹어

이렇게 그냥 남아 있더라.

      

 

♧ 뱀딸기, 그 선홍빛 - 김영자

 

들꽃 만나러 아침 승합차를 탔다 맨살 속에서 흰 풀꽃들이

바람의 귀를 세우며 승합차 안에서 먼저 웃고 있었다

들꽃밭 주인의 가슴에 노란 매미꽃들이 꽃술을 열고

노루귀꽃 뒤에서 제 몸을 숨긴 뱀딸기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다가오고 있었다 선홍색 가슴소리 가시관 그 

뜨거움의 발자국 소리 젖은 어깨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혼자서 저녁 승합차를 탄 내 곁에서 함께

젖고 있었다 내 온몸에 선혈이 흐른다.  

 

 

♧ 뱀딸기 - 백우선

 

봄 햇살의 더운 혀로

핥아 피운 노란 꽃

날름날름 따먹고

몸을 감은 뱀과 뱀

긴긴 첫 얽힘의

불꽃 너울 맺혔어라

또록또록 뿌려진

피의 불씨

눈길 앗아가고

속눈썹 뽑아가고

혀뿌리째 녹였어라

풀두렁의 봄을 밴

빨간 성핵(性核)   

 

 

♧ 장마예보 - 김수우

 

표시나지 않게 웃는다 복숭뼈에 튀는 빗방울. 우산

을 접었다 꽃이 두근거린다 아니 두근대는 건 꽃을

안은 가슴, 우산을 폈다 문방구에 들러 두꺼운 노트

를 산다. 일기를 새로 쓸거야. 우산을 접었다 잎차 향

기가 들새의 눈물처럼 흔들린다. 우산을 폈다 수화기

를 들고 물안개 목소리로 안부를 전한다. 깨어진 유

리컵. 우산을 접었다 맹꽁이 울음이 심심한데 빈 의

자 같은 얼굴 하나.우산을 폈다 철조망 감아오른 호

박줄기 그 손짓에 속살대는 개망초. 우산을 접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미워한다. 뱀딸기 같은 몽상의

파편. 우산을 폈다 코끝이 시리다 오늘부터 장마래지

뭉게구름처럼 사치스러울 수 있을 거야. 타박거리며

현관문에 키를 꽃다가 어머나 택시 안에 우산을 두고

내렸어.   

 

 

♧ 항아리 - 박서영

 

빈 집 뒤뜰에 앉아

빨간 뱀딸기를 삼켰다

둥근 시계꽃들을 삼켰다

진동하는 숲을 삼켰다

내 발등을 기어오르는 뱀딸기는

불안했다 아니 불행했다

내 다친 발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툭 고개를 꺾고 마는

뿌리들을 삼켰다

목구멍의 감옥에 대해 말해야 한다

반나절, 혹은 한나절

부풀어오르는 상처처럼 검붉은 핏방울이

목구멍에 가득 차 있었다

불행했다고 써야 하리

그 집에 살았던 동안에

 

 

나는 자꾸 게워내야 한다

뱀딸기를, 시계꽃을, 장미를, 숲을,

바람을, 그것들의 모든 뿌리를

입이 모자라면 코로, 눈으로, 귀로

삼킨 만큼 게워내는 건 쉬울 것이다

내가 믿을 거라곤

하늘로 날아갈 듯한 폐가를

땅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뒤뜰 풀숲 사이의

저 뚱뚱한 기억의 항아리들 뿐

필사적으로 담을 넘어가는 통곡의

푸른 잡풀들은 언제나

깨진 항아리에 두 발을 담그고 있다   

 

 

♧ 꽃뱀 - 문병란

 

금기의 사랑 , 거미줄 쳐 놓고

거짓 마누라 덫을 놓아

애잔한 먹이감을 노리고 있다.

 

그 연인은 한 그루 독초

따서 먹으면 잠드는 아편

지금 미끼는 솔솔 향내를 풍기고 있다.

 

어디서 이리 좋은 냄새가 진동 하는가

뱀딸기 익어가는 으슥한 오솔길

꽃뱀이 또아리를 틀고

그 차고 빛나는 눈을 흘기고 있다.

 

 

꽃뱀아, 솔솔 냄새 피워

향기론 두꺼비 기름진 들쥐

호랑나비 대자 수염 뽑아내는

눈부신 잔치가 숨겨져 있다

주린 식욕에 낼름 거리는 샛바닥아.

 

너는 옛날에 남사당패 였다

밑구멍 쑤시고 엽전 훔쳐 먹는

그 숙명의 쓰디쓴 쇠주를 마시고

달밤이면 모르게 담을 넘었단다

고이 밑에 감춘 굴욕의 남성이 울어

지금은 창녀의 엉댕이께 빌붙은 빈대.

 

밤마다 고향은 남쪽으로 멀어만 가고

너는 밤마다 넘치는 술잔 속에서

비내리는 고모령을 몇 번이나 넘었느냐

남의 계집 밑구멍 훔쳐먹는 보리문둥아!   

 

 

♧ 우물 깊은 집 - 강수정

 

꽃과 햇볕은 서로 숨결을 느낀다

자석으로 끌어당기는 건조한 숨결

목 긴 민들레 떨리는 바람 기다리고

제비꽃 통통한 봄비 기다린다

내 팔뚝에, 장단지에 번지는 반점들

붉게 돋은 뱀딸기 빤히 일몰 쳐다본다

 

나비 손님 떠날 줄 모른다

풍성한 빛 속으로 꽃가루 번져 탱탱한 나비들

새들 찾아와 가슴속에서 말한다

 

내 오금처럼 따뜻한 담장 너머,

우물 깊은 집이 있다

 

새벽 산길, 눈먼 네 아버지 아침 이슬 가득 쥐고 오면

젖은 발목에 매달린 빛의 무게

도랑 건너 접시꽃 핀 하얀 길 따라

정미소 가는 길, 아버지 지팡이가 된

그녀의 꽃밭은 담장 너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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