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 7월호를 받았다. 우리詩 칼럼 ‘이슈Issue와 시詩’(박승류)에 이어 신작시 28인 선(임보 정순영 김경호 김소해 김두환 장문석 김성찬 이영준 권영준 박정원 유혜련 한옥순 박설희 박은우 민문자 김세형 주기철 김혜경 김숙 박동남 임형신 한병석 이강하 최해돈 김봉구 송인철 이시경 권위상), 내가 읽은 시 한 편으로 임보의 ‘자벌레’(이재부), 안명옥의 ‘바로크 가구’(최상호), 이종섶의 ‘물결무늬 손뼈 화석’(박현웅), 신작 집중 조명은 조명기와 이송희(해설 박성민), 이 달의 시들은 ‘상처에 내리는 시의 안개’(박수빈), 고전에서 생각 줍기(2)는 ‘단오를 추억하며’(진정환), 영미시 산책은 마크 스트랜드의 ‘신 시작詩作 지침서’(백성국)가 실렸다.
그 중
내 마음을 끄는 시 8편을 골라
지난 달 계룡산에서 찍은 애기나리와 같이 올린다.
♧ 꽃무릇 - 임보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푸른 촛대 끝에 열린 붉은 절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위대의 촛불처럼
선운사 산문에 운집한
저 뜨거운 꽃불의 아우성
누구를 향해 무엇을 어쩌라는
저리도 붉은 시위인가
♧ 호롱불 - 정순영
먹을 갈아
붓에 흠뻑 적시어서
어두운 가슴에 산을 높이 세워 지고
가늘고 긴 시내를 흐르게 하니
깊은 산속 오두막 같은 마음에
호롱불 하나가 세상을 밝힌다.
♧ 노도 횟집 - 김성찬
모터 달린 2.5t 배가 그와 나를 싣고 곰팡이 핀 음습한 벽에 걸려있다 가끔 디지털을 거부하고 동굴 같은 반지하 방에 담겨 긴 편지를 쓴다 우체통이 안부 한 뭉치 들고 남해 가천 다랑이 마을 굽은 허리길 돌아 백련 포구로 간다 첨단 낚시 바늘에 엮여 유배당한 수족관에서 횟감 건져내는 그의 몸에서 생선 비린내가 몹시 났다 햇살이 예리한 날 세워 감성돔을 얇게 썰어냈다 술잔 속에 풍-덩 바다가 빠졌다 돔의 영혼이 횟집 문을 밀고 나와 방파제를 훌쩍 뛰어넘어 먼 바다로 헤엄쳐 갔다 앵강바다에 던져 놓은 그물 안에 서포*의 일생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그의 생은 포구에서 대물림되었고 노도의 내력을 들려주는 전령사다
저녁 어스름이 비틀거리는 취객 등에 업혀 유리창 안을 슬쩍 들여다보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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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호
♧ 보쟁이꽃 - 권영준
제 몸으로 짠 즙이
제 혼을 적셔
온몸이 타오를 때
피는 추화醜花
너무나도 간절한 열망이
시간을 돌려세워 피운 꽃도
죄가 되는 세상
죽어 썩을 몸둥어리에도 꽃은 피고
살아 거름이 되는 영혼도 시들어
황홀이 쳐놓은 덫에 걸려
피 흘리는
모순의 꽃
♧ 봄을 타다 - 한옥순
장을 보러 나간 것이
봄 노을을 만나고 말았다
버스를 탄다는 것이
봄을 타고 말았다
봄바람이 동행해주던
그날 밤엔 지독한
봄 몸살을 앓고야 말았다
약을 먹는다는 것이
봄밤을 털어넣었다
가슴이 다 타도록 잠 못들었다
♧ 낮술 - 송인철
야망에 저당 잡힌 부도
되찾을 수 없는 계절,
길에게 길을 묻고 시간에게 시간을 묻는다
그리고 나에게 나를 묻는다
오래전 잃어버린 야망,
낮술 속에서 나를 찾는다
낮술에 취한 고추잠자리가 빨간 코 벌름거리며 어지러워 비틀거린다
탁주사발을 비워낸 석양도 얼굴이 벌겋다
세상이 돈다
태양이 돈다
♧ 이팝나무 꽃 - 조병기
꿈보다 흰밥이 먹고 싶었다
어머니는 청보리 밭 매다가
쑥 뜯으러 가시고
혼자 집 보던 진종일
뻐꾸기도 그렇게 흰밥이 먹고 싶었나 보다
방천뚝 청보리는 어제 익을랑가
접시꽃처럼 목 빠지게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이팝나무가 되셨나 보다
흰밥을 김에 싸서 입이 터지도록
먹고 싶었던 그 해 초여름
이팝나무 곁에 앉아 먼 산을 본다
♧ 가위 - 이송희
오려진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청계천을 물들이며 촛불로 타오르던
무참히 잘린 혀들이
비명마저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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