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새우초, 새우 닮아서

김창집 2012. 7. 25. 07:03

 

밖에 나가 길을 걸으면

데워진 아스콘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깨나 흘리게 되는 요즘이다.

 

오죽해야 삼복더위라 했을까마는

초복과 중복 사이인 요즘

밤에도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바다 속에 풍덩 빠졌으면 싶게 만든다.

 

아프리카 원산이라는 루티아를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새우초라 이름 붙였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 새우 - 강석화

 

한 병의 소주를 위해

새우 몇 마리를 놓고

펴지지 않는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사업과

실직 3년차의 쓴 웃음이

잠시 담배연기였다가 흩어지고

우리는 새우와 숨 가쁜 기침을 나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었나

여인의 살결 같은 그리움 깎아내며

낯선 땅으로 밀려다니다가 이 구석에서

우리 마주보고 있구나 눈물 한 방울 없이

비틀리고 껍질 벗겨져

창백한 처녀의 속살로 떨고 있구나

입 안에 안겨오는 오도독한 생살의 향기로움

먼 첫날밤, 움추리던 그녀의 젖가슴만 같아

어뢰처럼 물살을 가르던 힘찬 등줄기도

이제 탄력을 잃었구나

굽은 등 다시 펴지는 날

세상을 질주하리라 수염 긴 늙은 새우여

서러움도 안주가 되는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아직은 끄떡없다며 소주 몇 병을 더 비우고

물 좋은 새우였다가 이제는 껍질만 남은 사람들과

바다를 찾아 떠난다

떠들수록 외롭고

등이 휘어지는 밤에 

 

 

♧ 새우잠 - 김경윤

     --아버지

 

아버지 잠든 아버지의 등은 새우를 닮았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바닷일을 배워

평생을 갯바람 속에서 살았다

 

그의 생애는 이제 낡은 폐선처럼 기울고

등댓불도 없는 밤바다를 헤매듯 목숨 걸고 살아온

청태靑苔같은 젊은 날이 바다 속에 썩었지만

그는 아직도 돋보기 너머로 낡은 그물코를 깁고 있다

 

언제나 등 따순 세상을 만나 허리 펴고 잠들 수 있을까

오늘도 웅크린 아버지의 잠 속에는

콜록콜록 밤기침 소리만 높다   

 

 

♧ 물새우 - 백우선

 

  새우를 보면 안다. 물새우를 보면 안다. 물에도 눈이 있다는 것을, 물에도

수염이 있고 물에도 입이 있고 물에도 가슴이 있고 물에도 밸이 있고 물에

도 집게가 있고 물에도 알집이 있다는 것을

  물새우를 보면 보인다. 낮아지는 물의 몸, 무리짓는 물의 몸, 춤추는 물의 몸   

 

 

♧ 왕새우 소금구이 - 임동윤

 

햇살 좋은 가을날 안면도에 가서

순도 99% 곰소항 소금으로

양은냄비 바닥을 알맞게 채우고

예민한 더듬이와 갑옷으로 무장한

새우들을 소금냄비에 처넣는다

 

팔딱팔딱 뛰는 급한 성질이

이대로는 그냥 눈감을 수 없다고

나만 죽을 수는 없다고 발버둥친다

황망히 냄비 밖으로 뛰쳐나오려 한다

 

어,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봤구먼!

나는 재빨리 냄비 뚜껑을 누른다

천 근 무게의 뚜껑의 압력

가늘고 긴 더듬이가 발갛게 익으며

새우 입에서는 바글바글 거품이 인다

 

고무공처럼 퉁겨 오르던 허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빳빳하게 굳어간다

갑옷으로 무장한 놈들이 벌겋게 익는다

단단한 투구의 머리를 벗겨낸다

이 머릿속에 납덩이가 있다고?

단번에 수천억 원을 꿀꺽할 수 있다고?

 

소금이 탁탁 튀며 큰 소리를 낼수록

얼굴 붉히는 놈들이 자꾸자꾸 늘어난다

허리 구부리며 눈물 질질 흘리던

새우들이, 마침내 하늘에다 고하고 있다

 

못 먹는 놈이 바보라고

눈 지그시 감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 새우잠 - 나태주

 

누가 자고 갔을까?

얼룩진 이불

누가 울고 갔을까?

붉은 전등 불빛 아래

꾸부려 지새는 등허리

시리운 어깨

 

나 오늘도 살아있어

한 마리 서러운 벌레다.   

 

 

♧ 새우잠 - 정호승

 

너를 기다리다가 해골이 되어

동해안 백사장에 버려져 있으리라

너를 사랑하다가 백골이 되어

어린 게들의 놀이터가 되리라

햇살이 지나간 다랑이논 같은 나는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너의 운명이 되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오가는 사람은 없어

동해안 바닷물을 다 들이켜리라

게들을 따라 봄날이 올 때까지

개펄 속에 들어가 새우잠을 자리라  

 

 

♧ 새우탕 - 안시아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그 부분까지 끓는물을 붓는다

오랜 기간 썰물이던 바다, 말라붙은 해초가 머리를

풀어헤친다 건조된 시간이 다시 출렁거린다 새우는

오랜만에 휜 허리를 편다 윤기가 흐른다 순식간에

만조가 되면 삼분만에 펼쳐지는 즉석바다, 분말스프

가 노을빛으로 퍼진다 그 날도 그랬지 끓는점에 도

달하던 마지막 1°는 네가 이유였다 주의사항을 무

시한 채 추억의 수위는 수평선을 넘나들고 앗, 끓

는 바다를 맨 입술로 그 날의 너처럼 빨아들인다 그

날도 노을빛이 퍼졌다 그 흔적, 바다가 몰래 훔쳐보

았다 그 바다에 추억을 데이고, 입안이 까실하다

  텅 빈 용기 안, 수평선이 그을려 있다   

 

 

 새우잠을 자는 도시 - 유소례

 

도시의 밤은

잠시 이기를 누이고

행여 깊이 잠들까

가로등을 세워놓고 새우잠을 잔다

 

21세기 푸르른 나무들은

컴퓨터에 들어앉아

밤새워 로봇을 조작하며

인정을 한사코 지우려 한다

 

언제부터인가

고랑을 쳐놓은 신구시대의 갈림길

누가 파놓은 골짝인가

순위가 바뀐 너와 나

낮과 밤의 경계가 지워진 어지럼증

 

인성의 축대가 와르르 무너졌을까

놀라운 발전이라 찬사를 보낼까

 

하루를 땀 흘린 태양의 정제된 빛,

꿈을 발하는 오렌지 빛깔이

회색구름 속에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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