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주나무
지난 일요일,
일주일 내내 책상 위로 날아와 들끓었던 지열(地熱)이
나를 숲으로 내몰았다.
전날 내린 소나기로 인해
물소리까지 낭랑한
신례천을 따라 걷는 숲길
구실잣밤나무가 대종이고
붉가시나무, 모세나무, 참꽃나무가 뒤를 이어
나무에 대한 소개글까지 세워놓게 하였다.
숲은 말한다.
정직한 땀을 흘린 다음에라야
건강의 즐거움을 맞을 수 있다고,
꽃보다도 햇빛에 잎맥까지 내비치는
잎이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 청미래덩굴
♧ 녹음방초(綠陰芳草) - 반기룡
녹음 짙은 나무숲으로 들어가니
산새들 지저귀며 부리부리 반기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외로운 이 반기는 산새가 있어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고
무기력했던 의식이 쫑긋 눈을 뜨네
동행한 녹음기로
목질부 콸콸 흐르는 소릴 녹음하고
피톤치드 한 무더기 얼싸안고 하산하니
찌부둥한 머리가
안개비처럼 자분자분 날리고
안구건조증에 허덕이던 눈알이
화들짝 깊은 호흡을 몰아쉬네
녹음방초(綠陰芳草) 고샅고샅
푸르디푸른 총알 사정없이 발사하고 있었네
* 사스레피나무
♧ 녹음(綠陰) - 박희진(朴喜璡)
가슴의 흙에 뿌리를 박은 줄기는 뻗어 가지로 잎으로.
가지 위에 또 가지. 나뭇잎 위에 또 나뭇잎. 그늘 속에
빛. 빛 속에 그늘. 바람이 일면 무수히 고운 보석가루가
쏟아져 온다. 그것은 짙은 초록의 파라솔, 중천에 이글
이글 들끓는 태양의 빛살을 가리운, 때는 무르익은 한나
절인데 그 안 보이는 파라솔 꼭대기에 문득 한 마리 뻐꾸
기 우는가. 가슴의 흙에 핏줄인 양 샅샅이 뻗는 뿌리의
뿌리까지 불러일으키는 그 그지없이 맑고 신명난 소리에
소스라쳐 초록의 파라솔은 또 한바탕 고운 보석가루를 흩
뿌린다.
* 참꽃나무
♧ 숲에서 - 서연정
나무 위에 하늘이 내려와 앉는다 나무는 뜨거운 가슴을 식히고 있다
몇 마디 다정한 이야기도 없이 한낮의 정적을 무너뜨리며
덩굴손들이 돌진하고 있다
땅바닥에 배를 대었던 축축한 시간들을 문질러 지우며
문지를수록 더욱더 무거워지는 욕망 하나를 이고 치켜드는
수없는 모가지, 숲은 이미 눈이 멀었다
보이는 것은 푸르른 하늘뿐이다
* 붉가시나무
♧ 숲 해설가 - 이영식
깡마른 몸에서 生木의 향기가 난다
막걸리 한 잔에 누룩 냄새가 뜨고
방귀라도 뀌면 제대로 구린내를 풍긴다
사내는 수목원 푸나무 사이 걸으며
다람쥐와 청설모에게 도토리를 던져준다
가지가지 새들의 노래도 불러낸다
바람과 물소리 길라잡이로 세우고
숲 해설가는 숲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금식 수련중인 것일까, 꼬르륵―
뱃속에서 남생이 물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 서어나무
부전나비 꽃날개에 취해 있던 내가
김밥 한 덩이를 내밀자 사내는 웃는다
숲을 감싸고 있는 몸의 언어가 들리세요?
버즘나무 겨드랑이 긁어달라는 소리,
그루터기 버섯들 영차! 세간 내는 소리
나도 저들의 속내를 들여다본 적은 없어요
동글동글 뭉치는 이슬의 작은 몸짓
아기소나무 머리 위에서 혼자 벼락을 삼킨
저 老松의 사랑, 그런 마음들이 서로
둥글게 어우러 숲을 이루리라 믿는 것이지요
사내가 샘물로 목을 축이고 돌아본다
겹겹 주름길이 깊고 서늘하다
* 머귀나무
♧ 숲에서 생각함 - 김영준
죽음도 저 같이
풀벌레 울음소리이거나
작은 개울물 소리이거나
먼 데서 밀려오는 바람소리이거나
혹은 너무도 어두워 어둡지 않은 밤하늘이었으면
하는 생각 중에
비 내린다
죽음도 저 같이
고추나무 말채나무 국수나무 쉬나무 같은
이름으로만 남을 수 있다면
작살나무 층층나무 귀룽나무 같은
이름으로 떠돌아 일일이 기억되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 중에
어디선가 새 한 마리 할喝, 짖고 간다
* 굴거리나무
♧ 그대 가슴에도 감춰진 숲이 있다 - 최상호
그대 가슴에
그대가 모르는 숲이 있다
물방개 헤엄치는 정겨운 웅덩이와 오염 안 된
물줄기에 닿은 튼튼한 뿌리의 갈참나무가 서 있는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건강한 물풀들이 흔들리고
태고의 향기를 뿜으며 썩어 가는 도토리로
떡갈나무 아래가 그득하다
경외敬畏의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던 팽나무는
여전히 늙은 모습인 채,
가시 넝쿨 아래로 바람이 분다
휘파람 소리 같은,
빗소리 같은 이름 모를 새들의 웃음과
나무들의 합창을 들으며
이제는 지친 손발을 모으고 쉬어야 할 때다
교목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대의 잠을 깨울 때까지
이제는 누워 보라 안식하라
그대 가슴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숲으로 향할 때다
* 황칠나무
♧ 돌아가리라 그 숲 속으로 - 서경원
돌아가리라
새처럼 물처럼 노래하며
사방이 푸른 나무들로 도배된
살에 닿는 바람조차 푸르른 열락의 땅으로
축복같은 흰 화관 구름 쓰고 숲을 가르며
세상의 모든 절망의 가지 부러뜨리는
맑은 새소리 들으며 숲 속을 걷고 싶네
가슴 속 피어나는 푸른 그리움 같은 희망의 청솔방울
앞치마에 수북히 받으며
땀방울 훑으며 덤불 헤쳐오는 솔바람 들이키며
맨발에 부딪혀오는 흙의 숨소릴 듣고 싶네
영혼의 눈 새롭게 뜨는 햇살 등에 업고
골마다 하얀 이 드러내며 달려오는 물소리
내 붉은 피톨 속으로 안기어 들겠지
*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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