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흰 부용꽃 여름을 장식

김창집 2012. 8. 13. 00:30

 

부용화 하면 보통 분홍색인데

정말 깨끗하고 흰 꽃잎이

강한 여름 햇빛을 받고 있는

부용을 보며 짜릿한 감동을 받았다.

거기다가 꽃 속 푸르스름한 빛을 띤

꽃술이 있어 신비를 더한다.

 

중국 원산으로 알려진 부용(芙蓉)은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아욱목 아욱과의 낙엽 관목이다.

요즘은 미국 등지에서 개발한 아주 작은 나무이면서

꽃이 크고 여러 가지 색을 띤 것들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 세월은 가는데 언제쯤이면 - 김용수

 

뒤뜰에 만발한 봉숭아꽃

벌써 어제이고

오늘 길섶 연못의

부용芙蓉은 화사하게 피었다네

 

회색하늘이 토해낸 달

구름 뒤에 숨었더니

오늘은 나를 내려보는구나

세월은 광음여류光陰如流 하건만

 

술잔 속에 비친 얼굴은

근심 없는 태평이고

내일로 가는 오늘의 삶속에

아직도 혼돈 속을 헤맨다.

 

가슴 저미는 몸부림을

술 몇 잔으로 달래놓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쓸쓸한 뒷모습에 달빛은

날 위로한답시고 가슴을 파고들고

한줄기 바람은 울면서 골목길 들어서는데

가로등 불빛은 가는 줄기

눈물 흘리며 아침을 기다리네   

 

 

♧ 추억으로 가는 길 - 반기룡

 

가을이 묻어있는 비포장 따라 달려본다

 

세월의 잔해 묻은 먼지 풀풀 일으키며

누렇게 색 바랜 옛 추억 불러내어

깔깔거리기도 하고

센티에 젖어 살짝

그대의 입술에 포개져 보기도 한다

 

그 많던 추억과 그리움은

수증기처럼 증발되어 갈수기를 이루지만

그래도 풋풋한 흙 냄새가 스멀거리고

연둣빛 초록이 살랑거리면

그만 모든 상념을 망각한 채

둘만의 시간을 꼼꼼히 마름질 해 본다

 

추억으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깃발처럼 살랑거리고

부용화는 꽃잎을 닫은 채

이방인처럼 바라본다

 

지금은 닫혔지만, 다음 해를 위해

단단한 추억 피우겠다는 앙다문 자태로

 

추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추억을 한 무더기씩 생산해 낸다   

 

 

♧ 운명의 고향 - 강신갑

 

어머니는

구석기 사람들 살았던

공주 장기가 고향이고

 

아버지는

천혜의 땅

연기 금남이 고향이라.

 

반짝이는 백사장 뛰어가

금강에 헤엄치고

대평리 들녘 무 깨물며 건너던

길고 긴 다리

 

외가 갈 때는 불티에서

부강 약물터 갈 때는 부용에서

나룻배 탔지.

 

아직도 생생한

푸른 꿈 그리며 걷던 둑길

오늘은 가슴에 꼭 담으며 돌아보네.

정다운 모습 사라질 운명의 고향아   

 

 

♧ 부용묘 - 문효치

 

녀가 묻히고

그녀의 시와 거문고도 묻히고

그리고 땅 위에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아침이면

상수리나무들은 가지를 내려

그녀를 흔들어 깨운다.

 

안개가 햇빛에 섞이고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고

때로는 붓꽃도 핀다.

 

이끼, 푸른 빛 하늘에 바르고

청설모도 꿈 속에 달 들여놓고

이렇게들 그녀를 일으킨다.

 

땅의 문을 열고

가야금을 퉁기며 그녀가 온다

 

천안 광덕사 뒤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  

 

 

♧ 창덕궁의 나비 - 김정임

 

인정전 용마루에서

세월을 당겨 앉아 있다

 

흐르다 삭아버린 시간들

네 붉은 더듬이에 닿아

섬광처럼 되살아 나고 있다

 

부용지 밑바닥에 가라앉은 설화가

두레박 타며 오르고

 

상수리 나무 숲

오백년을 산 어둠이

부스스 먼지를 털고

후원의 숲길 건너오고 있다   

 

 

♧ 얼마나 큰 그리움으로 묻어오는가 - 권복례

 

향을 올리고

제례를 끝낸 후

결국, 살아있는 사람의 몫으로

더운 밥과

잘 익은 음식은 돌아왔다

 

부용* 곁에서

제례에 올렸던 다식과 진달래 화전을 나누어 먹으며

작설차를 음복하면서

세월에 풍화되어 버린

부용 묘를 바라보았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을 떠 올리면 살아서

얼굴 한 번 못보았다 해도 그리움이다 눈물이다

하물며 시詩로 만난 부용은 얼마나 큰 그리움으로

내게 묻어 오겠는가

 

하산 길에 부용 곁에서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위에 손을 얹는다

그 온기가 너무나 따뜻해 오래도록 산벚꽃 향에 취했다

 

내가 부용을 그리워한들,

그의 어깨에 내 손을 얹고 싶은들 다

마음뿐이다 그는 이미 세월에 풍화되어 내 손을 얹을 수 없는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었다

더운밥과 잘 익은 음식과

따뜻한 체온까지도

 

---

*운초 김부용 : 조선시대(1820~1869)의 여류 시인 김부용의 묘가 천안시 광덕사 뒷산에 있어 매년 4월에 천안 문인들이 추모제를 지내고 있음   

 

 

♧ 해남 가서 - 이기철

 

이곳이 땅끝인 줄을 보길도 가는 배를 한 시간만 기다려 보면 안다

소나기가 한줄금 퍼붓고 간 도로에는 대흥사 가는 길이 구부러져 있고

불볕더위는 사내들의 얇은 속옷마저 벗기는데

기다리는 보길도행 배는 오지 않는다

짜장면을 사 먹고 한 덩이 수박 곁에 밥상처럼 둘러앉아

송아지를 태우고 섬으로 가는 배를 보며 생각한다

 

사백 년 전 윤선도는 한양을 버리고 탐라를 찾는 뱃길에서

보길도 부용동을 발견했다는데

그는 여기가 좋아 수석송죽을 노래하고 지국총지국총 이 섬의

사시가경을 노래했다는데

 

해남은 내게는 낯선 땅이지만, 여기 피어 있는 물달개비와

며느리밥풀꽃과 장구채나물은 낯설지 않다

나는 그것들의 떡잎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 고장의 시인들을

떠올린다

 

기다림은 어느새 수박 한 덩이를 다 치워버렸는데

아직도 보길도 가는 배는 오지 않고

불볕더위는 아스팔트를 녹이고

 

그런데도 내 생각은, 윤선도는 만년에 한양을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시인들은 왜 이곳서 나서 모두 서울로만 가는걸까

가서는 왜 안 돌아오는걸까 왜 안 돌아오는걸까

끝내 그들은 안 돌아올까

기다리는 배는 오지 않고   

 

 

♧ 부용묘 - 김영월

 

길을 막고선 호도나무 한 그루

광덕사 초입에 버티고 있다

 

좁은 길 따라

양지꽃 괴불주머니꽃

풀섶에 환생했다

 

절 후미진 뒤켠 묻힌

이름도 고운 부용

가슴 조이며 찾았다

 

여기 저기 뗏장마저 떨어져나가

상처난 봉분 하나 외롭고

그대, 소박맞아 사는 거리에

철없는 초등학생들 둘러앉아

도시락을 챙긴다

 

내 사랑 그대여

제발 무덤가에 찾아오는 이들 위해

풀꽃 한 그루라도 곱게 피어서

마음 전해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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