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화 하면 보통 분홍색인데
정말 깨끗하고 흰 꽃잎이
강한 여름 햇빛을 받고 있는
부용을 보며 짜릿한 감동을 받았다.
거기다가 꽃 속 푸르스름한 빛을 띤
꽃술이 있어 신비를 더한다.
중국 원산으로 알려진 부용(芙蓉)은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아욱목 아욱과의 낙엽 관목이다.
요즘은 미국 등지에서 개발한 아주 작은 나무이면서
꽃이 크고 여러 가지 색을 띤 것들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 세월은 가는데 언제쯤이면 - 김용수
뒤뜰에 만발한 봉숭아꽃
벌써 어제이고
오늘 길섶 연못의
부용芙蓉은 화사하게 피었다네
회색하늘이 토해낸 달
구름 뒤에 숨었더니
오늘은 나를 내려보는구나
세월은 광음여류光陰如流 하건만
술잔 속에 비친 얼굴은
근심 없는 태평이고
내일로 가는 오늘의 삶속에
아직도 혼돈 속을 헤맨다.
가슴 저미는 몸부림을
술 몇 잔으로 달래놓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쓸쓸한 뒷모습에 달빛은
날 위로한답시고 가슴을 파고들고
한줄기 바람은 울면서 골목길 들어서는데
가로등 불빛은 가는 줄기
눈물 흘리며 아침을 기다리네
♧ 추억으로 가는 길 - 반기룡
가을이 묻어있는 비포장 따라 달려본다
세월의 잔해 묻은 먼지 풀풀 일으키며
누렇게 색 바랜 옛 추억 불러내어
깔깔거리기도 하고
센티에 젖어 살짝
그대의 입술에 포개져 보기도 한다
그 많던 추억과 그리움은
수증기처럼 증발되어 갈수기를 이루지만
그래도 풋풋한 흙 냄새가 스멀거리고
연둣빛 초록이 살랑거리면
그만 모든 상념을 망각한 채
둘만의 시간을 꼼꼼히 마름질 해 본다
추억으로 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깃발처럼 살랑거리고
부용화는 꽃잎을 닫은 채
이방인처럼 바라본다
지금은 닫혔지만, 다음 해를 위해
단단한 추억 피우겠다는 앙다문 자태로
추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추억을 한 무더기씩 생산해 낸다
♧ 운명의 고향 - 강신갑
어머니는
구석기 사람들 살았던
공주 장기가 고향이고
아버지는
천혜의 땅
연기 금남이 고향이라.
반짝이는 백사장 뛰어가
금강에 헤엄치고
대평리 들녘 무 깨물며 건너던
길고 긴 다리
외가 갈 때는 불티에서
부강 약물터 갈 때는 부용에서
나룻배 탔지.
아직도 생생한
푸른 꿈 그리며 걷던 둑길
오늘은 가슴에 꼭 담으며 돌아보네.
정다운 모습 사라질 운명의 고향아
♧ 부용묘 - 문효치
그녀가 묻히고
그녀의 시와 거문고도 묻히고
그리고 땅 위에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아침이면
상수리나무들은 가지를 내려
그녀를 흔들어 깨운다.
안개가 햇빛에 섞이고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고
때로는 붓꽃도 핀다.
이끼, 푸른 빛 하늘에 바르고
청설모도 꿈 속에 달 들여놓고
이렇게들 그녀를 일으킨다.
땅의 문을 열고
가야금을 퉁기며 그녀가 온다
천안 광덕사 뒤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
♧ 창덕궁의 나비 - 김정임
인정전 용마루에서
세월을 당겨 앉아 있다
흐르다 삭아버린 시간들
네 붉은 더듬이에 닿아
섬광처럼 되살아 나고 있다
부용지 밑바닥에 가라앉은 설화가
두레박 타며 오르고
상수리 나무 숲
오백년을 산 어둠이
부스스 먼지를 털고
후원의 숲길 건너오고 있다
♧ 얼마나 큰 그리움으로 묻어오는가 - 권복례
향을 올리고
제례를 끝낸 후
결국, 살아있는 사람의 몫으로
더운 밥과
잘 익은 음식은 돌아왔다
부용* 곁에서
제례에 올렸던 다식과 진달래 화전을 나누어 먹으며
작설차를 음복하면서
세월에 풍화되어 버린
부용 묘를 바라보았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을 떠 올리면 살아서
얼굴 한 번 못보았다 해도 그리움이다 눈물이다
하물며 시詩로 만난 부용은 얼마나 큰 그리움으로
내게 묻어 오겠는가
하산 길에 부용 곁에서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위에 손을 얹는다
그 온기가 너무나 따뜻해 오래도록 산벚꽃 향에 취했다
내가 부용을 그리워한들,
그의 어깨에 내 손을 얹고 싶은들 다
마음뿐이다 그는 이미 세월에 풍화되어 내 손을 얹을 수 없는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었다
더운밥과 잘 익은 음식과
따뜻한 체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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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초 김부용 : 조선시대(1820~1869)의 여류 시인 김부용의 묘가 천안시 광덕사 뒷산에 있어 매년 4월에 천안 문인들이 추모제를 지내고 있음
♧ 해남 가서 - 이기철
이곳이 땅끝인 줄을 보길도 가는 배를 한 시간만 기다려 보면 안다
소나기가 한줄금 퍼붓고 간 도로에는 대흥사 가는 길이 구부러져 있고
불볕더위는 사내들의 얇은 속옷마저 벗기는데
기다리는 보길도행 배는 오지 않는다
짜장면을 사 먹고 한 덩이 수박 곁에 밥상처럼 둘러앉아
송아지를 태우고 섬으로 가는 배를 보며 생각한다
사백 년 전 윤선도는 한양을 버리고 탐라를 찾는 뱃길에서
보길도 부용동을 발견했다는데
그는 여기가 좋아 수석송죽을 노래하고 지국총지국총 이 섬의
사시가경을 노래했다는데
해남은 내게는 낯선 땅이지만, 여기 피어 있는 물달개비와
며느리밥풀꽃과 장구채나물은 낯설지 않다
나는 그것들의 떡잎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 고장의 시인들을
떠올린다
기다림은 어느새 수박 한 덩이를 다 치워버렸는데
아직도 보길도 가는 배는 오지 않고
불볕더위는 아스팔트를 녹이고
그런데도 내 생각은, 윤선도는 만년에 한양을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시인들은 왜 이곳서 나서 모두 서울로만 가는걸까
가서는 왜 안 돌아오는걸까 왜 안 돌아오는걸까
끝내 그들은 안 돌아올까
기다리는 배는 오지 않고
♧ 부용묘 - 김영월
길을 막고선 호도나무 한 그루
광덕사 초입에 버티고 있다
좁은 길 따라
양지꽃 괴불주머니꽃
풀섶에 환생했다
절 후미진 뒤켠 묻힌
이름도 고운 부용
가슴 조이며 찾았다
여기 저기 뗏장마저 떨어져나가
상처난 봉분 하나 외롭고
그대, 소박맞아 사는 거리에
철없는 초등학생들 둘러앉아
도시락을 챙긴다
내 사랑 그대여
제발 무덤가에 찾아오는 이들 위해
풀꽃 한 그루라도 곱게 피어서
마음 전해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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