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구절초와 우리詩 10월호의 시

김창집 2012. 10. 12. 01:18

 

 경기도 곳곳에서 분홍빛 구절초를 실컷 보고 왔더니, 우리詩 10월호가 와 있다. 칼럼은 이병금 시인의 ‘현실, 영화, 시’를 올리고, ‘신작시 30인선’으로 조병기 이무원 차영호 김인구 정숙 박영원 주경림 정숙 박영원 주경림 박정래 백영희 이가을 김선호 안명옥 정겸 정하해 민문자 장현우 조경진 한영채 조영심 허연숙 박동남 우기수 이주언 조삼현 김용길 유영옥 정운희 김현근 남대희 유안나의 시를 2편씩 실었다.

 

이어 2012년 여름 자연학교 특집을 냈는데, ‘시 창작 특강’으로 이은봉과 이대의의 강의안을, ‘백일장 수상작’은 도경희 이재부 우기수 박은우의 작품을, 참가기는 이환이 썼다. 서평은 추명희의 ‘봄비의 자장가’(책 만드는 집, 2012)를 이동훈이, 김두환 시집 ‘속소리는 더 절절하여’(고요아침, 2012)를 이경철이 썼다.

 

‘내가 읽은 시 한 편’으로 홍해리의 ‘산책’(이재부),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조수옥), 하린의 ‘귀가’(강동수), 황연진의 ‘엘리베이터 벨이 울린다’(장수철)가 실렸다. ‘신작 집중 조명’은 김지희의 시 5편을 싣고, 박몽구가 해설을 맡았다. ‘시안으로 읽는 우리 문화’는 박상미가, ‘이 달의 시들’은 박수빈이 썼다. 그 중 우선 시 8편을 골라 구절초와 함께 싣는다.  

 

 

♧ 소쩍새 - 조병기

 

달마저

사위어버린 적막

밤새껏 사무치는

피울음아

그리움도 한이 깊어

저승까지 안고 가려 하나

      

 

♧ 미소 차 - 이무원

 

한밤중

백도의 열 속에

부활한 눈, 코, 입, 귀

구절초 얼굴이

찻잔 속에서 생전의 모습으로 예쁘게 웃고 있다

외로운 들녘에서 바람에게 보낸 미소

호젓한 밤 눈물로 쓴 편지

대답 없는 그리움으로

차곡차곡 쌓인 향이

죽어서 더욱 진하구나

새벽이슬 구르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도 묻어 있구나

그대가 보낸

예쁜 미소

  

 

 

♧ 시詩는 - 박영원

 

시는

세파를 헤쳐 가는

아버지의 가슴앓이

독백이다

 

시는

가슴 태워 어둠 밝히는

어머니의 찡한

넋두리이다

 

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시시콜콜 용해된

삶의 애증이다

 

시는

가슴 따뜻이 스미는

꽃과 새들의 노래,

우주의 교향곡이다  

 

 

♧ 길 - 백영희

 

6․25 참전용사의 퇴직금이

밧줄에 묶여

육십 년 지나 여든의 아버지 몸에 닿았다

파도에 떠밀리고 젓고 젓어

꼬불꼬불한 길 용케도 찾아왔다

기억 저편 전선의 땅을

손으로 팠던 시간

허벅지 총상과 나라를 지킨 돈

몸에 맞는 생의 옷으로

함께 걸어온 아내의 몫으로

주름진 손에 안긴다

아픔의 먼지들이 떨어져 만든

넉넉한 쉼표가 가득한 길

아버지 얼굴에 환하게 쏟아진다  

 

 

♧ 고인돌 - 김선호

 

남자들이 운다

먹구름으로 떠도는 몸

정착하고 싶다고 펑 펑 운다

날 수도 터질 수도 없어

고여 있어야 하는 무게가

검은 풍선을 닮았다

 

한참 후에 가보았더니

반쯤 땅에 박고 굳어 있다

 

천년의 바람으로  

 

 

♧ 구직자 - 정하해

 

요양보호사 구함이라는 플래카드가 높다랗게 걸린 곳으로

나팔꽃 줄기 오르다

 

저 높은 곳을, 필사적이다

 

산다는 게 참혹함보다는 순명에 따르는 것처럼 잎들을 파랗게

먹히고 입혀 빛이 난다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꽃 한 송이 거기 집어넣고 내려오는 줄기와 맞닥뜨렸다

내 어딘가 뻐근한 무엇 지나간다

보라색 빛이 그의 자존심인지

징글맞게 짙다  

 

 

♧ 건망증 - 민문자

 

한여름 밤「그리운 바다 성산포」

영상음악의 홀림에

노시인 시낭송의 울림에

내 가슴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가

 

『은교』와『숨은 밤』의 소설 공연

어린 소녀와 황혼의 노교수 또 사춘기 소년소녀의

인생ㆍ시간ㆍ세월에 관한 이야기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보고

 

모두 일어서서 집으로 가야 할 시간

캄캄한 창밖은 밤비가 부슬부슬

나의 뇌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발이 제 맘대로 노시인에게 다가가

 

―선생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 차 있습니다.”

나 아니라도

노시인을 모실 제자는 많았다

 

우산을 펼쳐 들고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참! 차는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있지’

연이틀 새벽에 빨간 밥차 밥을 푸고

세미원 연꽃과 산귀래 백합 보고 오더니…   

 

 

♧ 달팽이 - 장현우

 

상추를 뜯는데 상춧잎에

달팽이 한 마리 달라붙어 기어간다

순천만 포구에서 조개 잡는 아낙들 같다

썰물로 뻘밭이 드러나면

나뭇잎 같은 펄배에 나뭇잎 같은 몸을 싣고

살아온 내력을 온몸으로

뻘밭에 적고 있던 아낙들

제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달팽이도

다 받아 적을 수 없는 상춧잎에

긴 문장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