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소상호의 시와 계요등

김창집 2012. 11. 23. 00:34

 

후목 소상호 시인의 시집

‘달빛에 오르다’가 나왔다.

우리 모교 애월(涯月)중학교 동창들

권주(勸酒) 구호가 ‘달에 오르자’인데

이 시집은 벌써 달에 올랐다는 뜻이겠다.

이번에 세 번째로 3장 ‘새들의 꿈꾸는 도시’에서

몇 편을 뽑아 올린다.

 

계요등(鷄尿藤)은 꼭두서니과의 잎 지는 덩굴나무이다.

아시아 온대와 열대 전역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충청도이남 산록의 양지 및 골짜기에 산다.

길이 5-7m이며 냄새가 나는데, 줄기가 울타리나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가며 자라며,

윗부분이 겨울에 말라 죽어버린다.

열매는 핵과로 둥근 모양이며

황갈색으로 익고 약용으로 쓰인다.  

 

 

♧ 접대

 

이른 봄에

허리 굽은 삼동노인의 초대연

접대하는 젊은 춘장(春丈)

오셨습니까

조촐한 자리에

찬은 봄나물로

봄동나물에 달래무침 냉잇국이며

술은 해묵은 두견주입니다

자릿세로 드셔요

추량(秋凉)이 올 때 쯤

금실 좋은 술안주 더 보내겠습니다

젊은이 한번 키워주십시오  

 

 

♧ 용심

 

이브의 유혹에 취한

초록색 욕정이 땅 밑에서 솟구쳐

호미걸이에 지킬만한 파아란 싹

봄바람에 세수하고

아직 아물지 못한 딱지를 떼지 못한 채

군데군데 부치고

나는 봄의 욕정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눈이

너무 가슴을 찌른다

나이 먹은 까도남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

버릴려고 걷는 산책길에서

또 하나의 욕심을 줍고 말았다  

 

 

♧ 한 해를 보내며

 

뜬 구름을 잡으려는 세월이면 안된다

아지랑이 꿈을 먹으려 해도 안된다

묵상을 하는 산과 조용히 숨 쉬는 강

황금을 나누다 벗어버린 들

흐린 물을 흘러 보내고

파란 물을 나눠주는가

만지며 두드리며 흘러보낸다

넉넉한 이음을 보태주는 힘

성심을 다해 낚아야 한다

올해의 매듭은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저녁연기를 안고

넓은 기운을 잡으려는

땀 흘리는 지팡이가 되어야 한다  

 

 

♧ 낙엽의 얼굴

 

떨어진 낙엽에도 눈이 있다

나를 보는 눈이 있다

떨어진 낙엽이 숨을 쉰다

생생한 기운이 남아 숨을 쉰다

떨어진 낙엽에도 향이 있다

고향을 되새김하는 김이 난다

찬 바람도 찬 서리도 싫지 않다면

그대로 맞으면 받아드린다

오그라지며 고통을 느끼는지

사그락 사그락 소리내며 울다

뒹굴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염려하며 모진 바람과 싸운다  

 

 

♧ 산이 조용한 것은

 

우산을 준비한 여름날 산행

도봉산으로 끌리는 듯 다가 간다

산에 숨어있는 메아리 얻고자

땀을 선물로 드린다

말이 약이 되는 나이

지난날 잔상이 철학을 만들어

올라가는 힘도 그의 힘 일 것이다

산은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나와 긴 시간의 대비가

확대되어 두렵기도 하다

산은 높던 낮던

느끼지 못하는 곳이 아니라

대화하지 못하는 곳인가

 

 

♧ 나뭇잎

 

생글생글

연둣빛 자랑

꽃이 아닌 작은 나비들

꽃인 양 다니다

향기 없어 지친 듯

오는 자 홀림을 붙잡지 못하고

큰 소리 내지도 못한 채

살랑거린다

가을이 오면

누구를 유혹하려는지  

 

 

♧ 세월의 눈물

 

가물어 갈라진 논바닥을 보는 것같이

세월 속에 갈라진 기대의 늪에

멀어진 금을 보고 있구나,

눈물마저 말라버렸다면

너무나 크게 벌어진 틈새에

본디 몸뚱아리가 끼어버릴 것이

염려가 되는데

그래도 눈물이 아직 남아 있어

가끔은 벅차오르는 해오름이 다가올 때나

낮달이 저녁을 만났을 때

낙숫물처럼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흐르면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한다

아마 서러운 것은 그 떨림의 가슴이 아니라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지난 설움이

가시로 돋아나

눈물샘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  

 

 

♧ 추석 연휴는

 

소금을 치지 않는 덤덤하고 깊은 강물 같은 날

추석빔은 다 해버리고 올 사람은 와

할 것도 기다림도 없는 날

낙엽 만드는 소리조차 숨 죽여

눈을 치뜨고 나무숲으로 가

솔솔 피우는 가을 잔칫날

군불을 때는지 마는지 알 수 없어

따스한 갈색 깊이로는

휘영청 달빛 그슬리는 냄새가 너무 짙구나

그 새 못 잊어 다가온 선갈색

사그락 누르락 조금 조금씩 몰려오는 날

누런색을 감추고 어디서 튀어나온

가슴팍 진한 초록 얼굴로 쭈삣거리지 않고

살짝 손을 내미는 가냘픈 바람으로 물들인 여운 깊은 날

조개 줍는 연인의 달콤함처럼

버섯을 줍는 마흔다섯의 여인

자식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든든한 품에 안겨

느긋하게 잠자고 싶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