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석교 시집 ‘카르마의 비’

김창집 2013. 1. 10. 10:43

                                                                                                                                 *피라칸타

 

♧ 카르마의 비

 

저 회색구름 슬프고

억울했던 이

저 노을구름 기쁘고

행복했던 이는 아닐까

먹구름은 머리 위에 낮게 깔리고

순백의 구름 이상처럼 까마득하다

 

삼업의 죄를 오늘도 짓고 있는

전생구름과 현생구름의

뜨겁고 어두운 이합

싸늘하고 거친 집산

 

생각여행자의 꿈뿐인 머릿속

나는 아직도 길을 내지 못한다

더는 시간이 없다고 벼락 치며

세차게 쏟아지는

카르마의 비

 

 

♧ 김석교 시인은

 

  1958년 제주도의 동쪽 끝 성산포에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1995년 〈월간문학〉 3월 호에 ‘마라도’ 연작을 발표,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등단하였으며, 제주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깨어있음의 시〉 동인, 계간 《제주작가》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시집 『넋 달래려다 그대는 넋 놓고』『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 등을 펴냈다.

 

 

□ 시인의 말

 

  당혹의 연속이었던 몇 년의 심상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전생은 내 알 바 아니로되 현생의 죄는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가냘프게 속죄의 시업을 붙들고 있지만 오히려 죄는 쌓여만 간다. 나의 카르마가 버거운 탓이다.

 

  물질이 분해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분해되어 최소단위로 돌아가면 순환의 법칙에 따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진정 날 위로한다. 어느 흐린 날 조용히 구름입자에나 끼어 떠도는 꿈을 꾼다.

     

                                                    2012년 초겨울

                                                                                                         김석교   

 

 

♧ 궁극의 여행

 

흐린 추녀 끝 낙숫물 소리

밤 들판을 흐르는 기차 불빛

어깨를 툭툭 치며

우르르 쓸려가는 낙엽떼

 

집 떠나 타박타박 시골길 걷다

아무 곳에서나 쓰러지면

이름 모를 행려자가 되는

여행의 끝을 기다린다

 

조문객은 풀벌레와

구름과

바람이면 족하지 않은가   

 

 

♧ 네가 날씨라면

 

사월이 와도

날씨가 얼었다 풀렸다 하네

 

눈비 오면 산을 보고

바람 불면 바다를 보고

볕 나는 날 사람을 보네

 

너는 너를 날씨라 하면

나는 나를 먼지라 하네  

 

 

♧ 재와 티끌과 먼지

 

우울의 재에서 시가 탄생하고

인연의 티끌에서 사랑이 탄생하고

먼지의 우주에서 별이 탄생한다

 

잿빛 우울로 태어나

티끌의 인연으로 사랑하다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

 

나의 시는 우울이다

나의 시는 인연이다

나의 시는 먼지다  

 

 

♧ 저문 산에 앉아

 

벌레는 태어나서 죽기까지

이파리 석 장이 필요할 뿐이다

한 잎에서 탄생, 한 잎에 성장, 한 잎에 번식

잎 위에 희미하게 빛나는 자국은

미련하도록 걸어간 필생의 족적이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사랑하거나 증오하던 사람도

가끔 그 흔적이 보일 때가 있다

저문 산에 캄캄히 앉아있노라면  

 

 

♧ 죄와 벌

 

그는 천상과 지상의 중간쯤

구름으로 머물다

눈이 되어 내려왔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주저 없이

낙하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내 죄 너무 크다고 고백했다

 

뺨에 붙자마자 녹아 흐르는

차가운 눈의 눈물

이제 용서한 것인가, 친구  

 

 

♧ 중력과 척력

 

끌어당김을 중력이라 하고

밀쳐냄을 척력이라 했던가

끝없이 밀고 당기는

그대와 나

이 몹쓸 무한대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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