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한림공원의 매화들

김창집 2013. 2. 13. 08:19

 

 

이제는 새로울 것이 없어진

제주 매화의 개화는

얼마 없어 뭍으로 건너 갈 것이다.

 

다만 그 시일이 언제냐 하는 것뿐

이제 2월도 중순

제주의 꽃들은 이미

가는 곳마다 활기를 찾았다.

 

‘겨울이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고 읊었던

셸리의 시구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 매화(梅花) - 강수정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 매화 - 우공 이문조

 

입춘도 지나

절기상 봄이라지만

날씨는 아직 봄이 아닌데

 

매화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려

화사한 봄을 선사한다

 

하늘하늘

엷은 꽃 이파리

꽃샘추위에 얼었구나

 

어서 봄을 맞고 싶은

마음

똑같은 데

누가

네 성급함을 탓하랴.     

 

 

 

♧ 매화 - 박인걸

 

서귀포 매화향이

영상을 타고 안방으로 퍼질 때

겨우내 차갑던 가슴에도

봄기운이 스민다.

 

눈발을 헤집으며

억척스럽게 피어나는

여리고 여린 꽃잎에서

숭고한 생명력을 읽는다.

 

海風부는 언덕에서

휘둘리며 견디어 온 세월

애태우며 기다린

은혜로운 봄이시여!

 

겨우내 닫아 둔 가슴

마음 문 열어 젖히고

더 이상 망설임도 없이

꽃 한 송이 피우리라.   

 

 

♧ 매화꽃 피다 -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육십 년 뿌리 내린 나무

여기저기 옹이 졌다

 

가슴에

촛불 하나 밝히고

번잡한 세파 속에

정좌된 마음 만으로

걸어온 길

 

동반자 없는 길

서럽다 하지 않고

추운 겨울바람

맨살로 견디고도

환하게 피어난 매화

정월 스무 이렛날

 

그믐달 어둠 속으로

흐르는

충만한 매화 향에

온몸이 젖어드는데

 

세상살이가

어디 외롭기만 하겠느냐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얀 애기동백꽃  (0) 2013.02.15
진 동백꽃을 모아서  (0) 2013.02.14
새해를 맞는 수선화  (0) 2013.02.1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2013.02.10
홍해리 선생의 시와 매화  (0) 20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