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새로울 것이 없어진
제주 매화의 개화는
얼마 없어 뭍으로 건너 갈 것이다.
다만 그 시일이 언제냐 하는 것뿐
이제 2월도 중순
제주의 꽃들은 이미
가는 곳마다 활기를 찾았다.
‘겨울이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고 읊었던
셸리의 시구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 매화(梅花) - 강수정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 매화 - 우공 이문조
입춘도 지나
절기상 봄이라지만
날씨는 아직 봄이 아닌데
매화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려
화사한 봄을 선사한다
하늘하늘
엷은 꽃 이파리
꽃샘추위에 얼었구나
어서 봄을 맞고 싶은
마음
똑같은 데
누가
네 성급함을 탓하랴.
♧ 매화 - 박인걸
서귀포 매화향이
영상을 타고 안방으로 퍼질 때
겨우내 차갑던 가슴에도
봄기운이 스민다.
눈발을 헤집으며
억척스럽게 피어나는
여리고 여린 꽃잎에서
숭고한 생명력을 읽는다.
海風부는 언덕에서
휘둘리며 견디어 온 세월
애태우며 기다린
은혜로운 봄이시여!
겨우내 닫아 둔 가슴
마음 문 열어 젖히고
더 이상 망설임도 없이
꽃 한 송이 피우리라.
♧ 매화꽃 피다 -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육십 년 뿌리 내린 나무
여기저기 옹이 졌다
가슴에
촛불 하나 밝히고
번잡한 세파 속에
정좌된 마음 만으로
걸어온 길
동반자 없는 길
서럽다 하지 않고
추운 겨울바람
맨살로 견디고도
환하게 피어난 매화
정월 스무 이렛날
그믐달 어둠 속으로
흐르는
충만한 매화 향에
온몸이 젖어드는데
세상살이가
어디 외롭기만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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