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무척 궁금해서 찾아간
절물오름과 민오름 사이
고로쇠 수액 세트 옆에
변산바람꽃과 함께
복수초가 피었다.
햇볕이 한 시간만이라도 더
내렸으면 더욱 환히 열렸을 꽃들
새해 복을 받고 오래 살라고 핀
복수초(福壽草).
한국작가회의 총회에 다녀와서
이제야 올린다.
♧ 복수초 마을에 들다 - 주용일
꽃들도 마을 이루고 사는구나
인적 드문 산기슭 부엽토에 뿌리 묻고
한겨울 쌓인 눈 체온으로 녹이며
복수초, 그들만의 사랑법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겨울을 나고 있다
우리네 얼굴 닮은 노란 꽃 피우고 있다
눈 울타리 친 복수초 마을에 들어서면
환하게 마중하는 작은 꽃망울 앞에
누군들 무릎 꺾어 경배하지 않으랴
그 평화로운 꽃마을에는 바람이 실어 나르는
다정한 몸짓 소곤대고 귀엣말이며
서로가 전하는 사랑의 소문들이 무성하다
두터운 겨울옷 벗고 키 낮추어
나도 풋풋한 소문 몇 송이 노랗게 터트리며
복수초 마을에 며칠쯤 묵고 싶었다
♧ 복수초 - 안수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 살자
2월의 태백산은
가난한 속내를 드러낸 가지마다
몽환의 산매화를 화사하게 피웠지만
고로쇠 수액 빼가듯
핏줄 쥐어짜고 떠난 사람 생각에
인연의 마디마디 시샘바람에 애인다
겨우내 참았든 신음을 눈 위에 쏟아내니
삭힌 진물은 노랗게 복수꽃으로 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눈은 내려
꽃잎 위에 소복이 쌓이고.
♧ 한라복수초 - 양전형
딱히,
겨우내 그 비바리 기다린 건 아니다
언뜻 그녀 생각
봄을 들입다 치올리는 그 생각에
몹쓸 것
냉가슴 앓으며 눌러삭힐 일이지
가만가만 기어나와
쪼르르 둘러앉아 피고 말았네
꽃말은 슬픈 추억 다른 이름 얼음새꽃
사람아,
난 모르겠네
동토에 핀 이 내 가슴
♧ 복수초 - 김정호
맑은 풍경 소리 들려오는
깊은 산사(山寺)언덕에
이른 봄 햇살을 헤치고
살얼음 깨고 나온 아지랑이
하루에도 몇번씩
잔설(殘雪) 위에 눕는다
꽃샘바람에 혼쭐나
사시나무 아래 숨어 버린 꽃잎은
마른 가지 끝에 슬며시 눈떠
끝내 버리지 못하는
증오의 불길처럼 타오르다
바람이 사랑이라 하기에
포근한 달빛으로 깨어나는
노란꽃 한 송이
용서의 꽃!
♧ 복수초 - 반기룡
눈과 얼음의 틈새에서
환한 웃음 보내고 있구나.
추위가 문제이고
북풍한설이 걸림돌이고
쑥덕공론이 대수더냐
청정한 땅에 뿌리내려
질정의 삽과
양심의 호미와
썩은 것을 갈아엎는 쟁기로
휘어진 생각과
굴절된 마음밭과
삐뚤어진 정신을
평평하게 다듬으며
올곧은 의지와 정신으로
노란 웃음
흐드러지게 뿌리면 그만이지
♧ 복수초 - 김승기
겨울을 지내는 동안
가슴 속에 지긋이 눌러 품고 있던
지구의 불덩이
그 솟구치는 힘을
천천히 얼음 녹이며
노랗게 꽃으로 피웠구나
봄을 제일 먼저 가져다주는
너는
해맑은 눈동자를 지닌
아가의 얼굴처럼
방긋 웃고 있구나
毒독을 가슴에 끌어안아
약으로 발효시킬 줄 아는
사랑 또한 가지고 있구나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달픈 내 영혼이 벌떡 일어나
두 팔 벌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불춤을 추게 하는구나
그래, 그렇지
우리 모두 누구든지
어깨를 함께하여
우주를 한 아름 끌어안고
이 땅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福복춤을 추자꾸나
너와 나
메마른 가슴밭을 파랗게 적시는
사랑춤을 추자꾸나
봄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인내를 깨물어 온
고독한 복수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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