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어서
해야 할 일과
그리고 마쳐줘야 할 일들 때문에
'별도봉에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꽃이 피었다고'
산불감시초소 아저씨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월, 화, 수요일은 너무 바빠
목요일에야 다리병 치료하는 마음으로
쉬엄쉬엄 어렵게 올라갔더니
자주괴불주머니 무리 중에
이 흰괴불주머니 11개체가
이미 만개(滿開)가 지나있었다.
나는 평소 꽃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번째 본 일이 있어
조용히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이녀석들은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것 같은데
몇 년 지나며 차차 교배되다보면
색이 점점 자줏빛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요즘은 제초제나 풀베기로 사라지기도 하고….
4월,
제주4.3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여 피어난
흰괴불주머니 꽃들이지 싶다.
♧ 4월의 슬픔 - (宵火)고은영
개 같은 시간
잔인한 사월을 밟고
떠날 자들이여 떠나라
천근 같은 가슴에
옹이진 슬픔을 데리고
나의 아픔을 대신하여 떠나라
긴 사랑에
맹독으로 달려드는
중독된 슬픔엔
내게는 치유될 약이 없다
가면 되돌아 오는 아픔
형체도 없이 죽어버려라
♧ 4월의 그리움 - (宵火)고은영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상처마다 햇살이 든다
가장 정직한 슬픔이여
그대의 영혼에 스민
햇살의 질량은 얼마나 되나
오늘 우리에게 저 바다는
절망과 온전한 아픔의 백서가 아니냐
그 아름다운 열정에
사랑은 봄의 말을 잃고 청춘은 사랑을 잃고
바다 위에 도화가 되어 떠돈다
사월의 꽃들은 피고
봄의 여울은 깊어가는데
나긋한 너의 속삭임
우리 영혼의 고향은 봄
가만 손을 내밀어 꽃잎에 가슴을 대면
무구(無垢) 한 사랑 앞에
미움을 묻는 자가 어디 있으랴
믿었던 사랑에 영혼을 도륙당한
삼월의 꽃들은 이 봄 흔적이 없어도
영원히 간직할 사랑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우리 뜨겁던 사랑이
영원한 이별로 돌아앉아 있어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 부끄러운 4월 - 임영준
4월은 이따금
젊음의 피를 먹고 자라는가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서러운 영혼들이 통한으로 견인해간다
♧ 4월, 라보엠 - 임영준
꽃불티가 바람을 타고 광야를 달려가는 사이
솔바람에 지친 나그네들은 마차 곁에서 담담히
굴곡 없는 여백과 한가로운 영면을 꿈꾼다
허공을 떠도는 행운은 가슴을 부여안고 내내
고대하고 있던 그들에겐 겨우 볕뉘 한점 떼 주고
온 누리엔 골고루 베풀고 으늑히 스며들어 간다
애초에 큰 것을 바라고 찬란히 뜰 것도 아니었다
감미로운 선율을 두르고 넉넉한 꽃잎에 둘러싸여
가분히 춤추고 노래하고 마음껏 떠돌 수만 있다면
자존을 품은 박제가 되어 오롯이 떠나가도 좋으리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두콩 흰꽃의 4월 (0) | 2013.04.19 |
---|---|
꽃사과 꽃 빛나던 날 (0) | 2013.04.18 |
꽃샘추위와 한란 (0) | 2013.04.11 |
꽃샘추위를 넘은 말들 (0) | 2013.04.08 |
벚꽃 - 다시 4월은 오는데 (0) | 201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