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꽃사과 꽃 빛나던 날

김창집 2013. 4. 18. 00:18

 

아무래도 움직여야 하겠기에

점심을 먹고 한라수목원엘 갔다.

카메라를 들고 숲을 지나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하얀 꽃무리.

 

혹자는 ‘애기사과’라 하고

더러는 ‘애기능금’이라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식물도감에는

‘꽃사과’로 나와 있다.

 

너무 만개해서

분홍빛의 거의 사라져

하얀 빛이 너무 강하고

꽃이 커져버려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바탕은 잃지 않아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 꽃사과 - 안경희   

 

하루를 더 못견디고 잎들이

하르륵、하르륵、 바람에 져 내렸다.

지상의 목숨들 하나 둘 꺼져가는 소리도

이와 짐짓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들은 울음을 남기지 않고서도 사뿐사뿐 잘도 지는데

떠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남겼다.

꽃들이야 햇살 만나 그나무에 다시 피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번도 그리운 사람의 환생을 목격한 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품안으로 은밀히 싹을 내리나 보다.

꽃을 만나 잎처럼、

잎을 만나 꽃처럼、

오늘 나의 뜨락에 올망졸망 과실들이 열고

잠든 아기 손 어느샌가 꼭 쥐고 놓지 않는

꽃사과 한 알. 언제주웠을까

자박 자박 걸음마 하며 꿈결엔듯 다녀왔을까

너무 쪼끔해서 구슬인양 아롱 아롱

잠결에도 놓지 못하는 내 아기 손안에 꼭 잡힌

바알갛게 태열앓는

애기꽃사과.

   

 

 

♧ 꽃사과가 익을 무렵 - 김영자

     

해마다 꽃사과가 익을 무렵

아파트 경비원들은 잔디를 깎았다.

작은 사과 알 사이

빠알간 빛 사이사이

한 움큼씩 바람을 집어넣으며

잔디를 깎았다.

 

깊은 그리움을 깎아내고

몇 개의 산을 내려오면

 

봄날 잔디에 새순이 돋듯

그리움 그 자리

환한 꽃사과 꽃 피면서

침묵의 바람 불겠다.

 

 

 

♧ 늙은 라일락을 위하여 - 김정희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한 스물 두어 해 전이다

나도 그녀도 파랗던 시절이었다

꽃사과나무 곁에 늘 수줍은 듯 서 있어 온 그녀

이제는 등도 굽고 다리도 휘어져 어느 땐 내가

나의 등으로 그녀의 등을

가만히 받쳐보기도 하는데

그녀가 엽서 같은 푸른 잎들을 매달고 보란 듯이

꽃향기 뿜어낼 때면

그녀의 봄밤은

여전히 황홀하기만 하여

그 밑에서 취하고 또 취하고

그러면

그녀는 달보다 더 환한 얼굴로 걸어와

내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것이다

숨이 하얘지도록

하얘지도록   

 

 

 

♧ 슬픔의 무게 - 서연정

 

비 오는 날 꽃밭에 선다

석달열흘하고 또 하루 내리는 비

피할 수 없는 그 빗물을 나무들이 맞고 있다

동백 모란 맥문동 애기능금 철쭉 칸나

이미 꽃철 지난 어떤 것은

흔적을 오롯이 핏줄 속에 갈무리하고

또 어떤 것은 몇 날 뒤 피어날 설렘으로

탱탱하게 볼이 부어오르는 중이다

아무 상관 않겠다는 듯 비는 계속 내리고

나무는 그 날비를 마냥 맞는데

유난히 비의 날은 칸나에게 날카로운가

곧 찢어질 듯 아프다고 잎새가 운다

동백도 비를 맞지만 또 다른 나무도 비를 맞지만

칸나처럼 쉬지 않고 울지는 않는다

 

더러는 동백처럼 어쩌면 칸나처럼

비를 맞는 너와 나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우에 보는 천남성  (0) 2013.04.20
완두콩 흰꽃의 4월  (0) 2013.04.19
4월의 흰괴불주머니  (0) 2013.04.12
꽃샘추위와 한란  (0) 2013.04.11
꽃샘추위를 넘은 말들  (0) 201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