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마음 내킬 때 마음대로 오름에 오르고
휭 하니 바람 쐬러 들판으로 나가
찍고 싶은 꽃 골라 찍는 줄 알겠지만,
이것저것 밀린 글들과 씨름 하느라
컴퓨터에 퍼질러 앉다보니
좌골신경통인지 뭔지
생전 있는 줄도 모르던 생병을 얻었다.
그래, 아무리 바빠도
자연은 가까이 해야 할 것 같아
어제는 한라수목원 가보니
이제야 산철쭉이 이렇게 피어 있어
그걸 고이 모셔다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와 함께 올린다.
♧ 섬 동백 - 오영호
춘설에 얼어붙은
별도봉 장수로에
날이 선 칼바람을
가슴으로 받아치는
섬 동백
붉은 꽃들이
나의 시린 마음을 대핀다.
♧ 제줏것들 - 고정국
- 時調, 일만 계단 내려 걷기
1301. 제줏것들-1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나의 시들은 짜디짜다
바람 불면 다짜고짜 갈기 세워 덤비는 파도
벼랑에 바람이 자도 으렁 으렁 거리는
1305. 제줏것들-5
‘닭새끼’? 어쨌단 말이냐, 그래 나는 ‘똥돼지’다.
오는 말 좆같아서 가는 말도 참 좆같지?
‘육짓놈’ ‘서울년’하며 막말하며 사는 맛!
1308. 제줏것들-8
미안하다 특별자치도, 자치도가 아니잖나
말만 번드르르… 벌써 타치(他治)당하잖아
내 사랑 강정바다가 망가지고 있잖아.
♧ 시간 - 장영춘
일 년은 빠른 우편물처럼 도착하고 말았다
부도난 시간들을 쓸어담을 새도 없이
발신지 주소지마저 말끔히 지워져있다
♧ 11월의 숲 - 한희정
모두 다 떠나고서야 빈자리를 알았다.
몸뚱이 혼자 될 때까지 아픈 줄도 몰랐던,
요양원 맞대어 앉아 마른 다리 긁고 있다.
경고등 반짝여도 비켜설 줄 몰랐다.
파킨슨 약봉지 들고 제 그리자 앞에 두고
그 봄날, 아지랑이 속을 주춤주춤 걷고 있다.
♧ 붉은가슴딱새* - 김영란
바람이란 애시당초 뿌리를 부정하지
아열대 지친 바람 섬에 닿던 어느 봄날
퇴락한 제국의 후손 길에서 길을 잃어
강 끝이 바다인줄 난생 처음 알았지
행복지수 가늠했던 삼모작 환한 미소
아침상 물리고 나면 남은 하루 또, 짐일 뿐
흙 묻은 바람 그립다 메콩강 그 언저리
넘어든 경계 지나 탈출구도 아득한
기록이 삭제된 파일 제 이름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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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열대와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새로, 국내 미기록종.
2010년 제주도 마라도에서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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