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철쭉과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

김창집 2013. 4. 26. 10:41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마음 내킬 때 마음대로 오름에 오르고

휭 하니 바람 쐬러 들판으로 나가

찍고 싶은 꽃 골라 찍는 줄 알겠지만,

이것저것 밀린 글들과 씨름 하느라

컴퓨터에 퍼질러 앉다보니

좌골신경통인지 뭔지

생전 있는 줄도 모르던 생병을 얻었다.

 

그래, 아무리 바빠도

자연은 가까이 해야 할 것 같아

어제는 한라수목원 가보니

이제야 산철쭉이 이렇게 피어 있어

그걸 고이 모셔다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와 함께 올린다.  

 

 

♧ 섬 동백 - 오영호

 

춘설에 얼어붙은

별도봉 장수로에

 

날이 선 칼바람을

가슴으로 받아치는

섬 동백

붉은 꽃들이

나의 시린 마음을 대핀다. 

 

 

 

♧ 제줏것들 - 고정국

    - 時調, 일만 계단 내려 걷기

 

1301. 제줏것들-1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나의 시들은 짜디짜다

바람 불면 다짜고짜 갈기 세워 덤비는 파도

벼랑에 바람이 자도 으렁 으렁 거리는

 

1305. 제줏것들-5

‘닭새끼’? 어쨌단 말이냐, 그래 나는 ‘똥돼지’다.

오는 말 좆같아서 가는 말도 참 좆같지?

‘육짓놈’ ‘서울년’하며 막말하며 사는 맛!

 

1308. 제줏것들-8

미안하다 특별자치도, 자치도가 아니잖나

말만 번드르르… 벌써 타치(他治)당하잖아

내 사랑 강정바다가 망가지고 있잖아.  

 

 

 

♧ 시간 - 장영춘

 

일 년은 빠른 우편물처럼 도착하고 말았다

 

부도난 시간들을 쓸어담을 새도 없이

 

발신지 주소지마저 말끔히 지워져있다  

 

 

♧ 11월의 숲 - 한희정

 

모두 다 떠나고서야 빈자리를 알았다.

 

몸뚱이 혼자 될 때까지 아픈 줄도 몰랐던,

 

요양원 맞대어 앉아 마른 다리 긁고 있다.

 

경고등 반짝여도 비켜설 줄 몰랐다.

 

파킨슨 약봉지 들고 제 그리자 앞에 두고

 

그 봄날, 아지랑이 속을 주춤주춤 걷고 있다.  

 

 

 

♧ 붉은가슴딱새* - 김영란

 

바람이란 애시당초 뿌리를 부정하지

아열대 지친 바람 섬에 닿던 어느 봄날

퇴락한 제국의 후손 길에서 길을 잃어

 

강 끝이 바다인줄 난생 처음 알았지

행복지수 가늠했던 삼모작 환한 미소

아침상 물리고 나면 남은 하루 또, 짐일 뿐

흙 묻은 바람 그립다 메콩강 그 언저리

넘어든 경계 지나 탈출구도 아득한

기록이 삭제된 파일 제 이름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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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열대와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새로, 국내 미기록종.

2010년 제주도 마라도에서 발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