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광렬 시집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

김창집 2013. 5. 15. 14:41

 

김광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가 나왔다.

 

시평에서는 ‘시인은 시집에서 원초적 고향 같은 쑥부쟁이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그리움'은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잃어가는 인간 정신과 생명성에 대한 것이다. 결국 생명 회복이 사람의 희망임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광렬은 1954년 제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 복간호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집으로 ‘가을의 詩’, ‘희미한 등불만 있으면 좋으리’,

‘풀잎들의 부리’가 있다.

2013년 현재 제주 신성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시집 앞에서 일곱 편을 골라

요즘 한창인 참꽃나무 꽃과 같이 올린다.  

 

 

♧ 시인의 말

 

  세상 소리에 귀 모은다.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귀에는 커다랗게 슬픈 딱지가 앉았나 보다.

 

  나의 내면을 끄집어내는 일도 그렇다. 그리 깊고 풍성하고 융숭하지 못하다.

 

  늘 벽에 부딪힌다. 생각한 것들을 이리저리 주물럭거려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허나, 낙담할 수만 없다.

  작고 여린 뭇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은 한없이 굼뜬 촉수지만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다.

 

  더듬더듬, 네 번째 시집을 몪어낸다.

 

  시집을 내는데 도움을 주신 맹문재 주간과 푸른사상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말씀 드린다.

 

                                                                                                2013년 봄

                                                                                                     김광렬 

 

 

♧ 행원(杏原)

 

  기계풍차가 공룡 같다 둔중한 무게로 덜컹덜컹 돌아간다 그 밑을 지나다 보면 날개가 파편처럼 튀며 내 목을 통조림 따듯 따버릴 것 같다

  행원(杏原)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마을 끝에 쇳덩이들은 살고 있다 살구꽃이나 복사꽃이 만화방창할 것 같은 그곳은 이제 끝없는 겨울의 시작이다

  표정 없는 저 거대한 물체들, 차가운 손가락들이 허공을 휘저을 때면 싹둑싹둑 허리 잘리는 바람소리 소름 돋는다

  그래도 아래발치 풀밭엔 오종종 핀 쑥부쟁이들이 그나마 입김 따뜻하다  

 

 

♧ 소금

 

살아온 날들 다듬어지지 않아서

모나고 짜디짠

소금은 그녀의 전부다

보석 같은 그것은 보석이 아니다

보석이 아니어서

단단한 유리 장치가 없다

뜨거운 땡볕이거나 혹한 속에서

왜 자꾸 슬픔은 솟아나는지,

하찮아보일수록

하찮아져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

각지고 짠 결정체를 빚어냈다

 

 

♧ 가파도에서

 

외롭지 않으면 목이 길지 않다

목이 길어서 섬이다

제주 사람들이 뭍을 그리워하듯

가파도 사람들은 제주 섬 쪽으로 긴 목을 뺀다

어디를 가나 파도가 울고 있어서

가슴에 늘 외로운 새 한 마리 산다

칵, 가래침 긁어 올려 파도에 섞는다

내일도 모레도 고달픈 오늘이다  

 

 

♧ 아프리카

 

헐벗은 것들은 깡마르다

젖에서 젖이 나오지 않는다

그 너머로 태양이 핏빛이다

 

석양이,

핏빛인 이유가 있었다 

 

 

♧ 손톱 - 김광렬

 

죽, 이, 고 싶었다고 했다

 

너는 내 유전자가 아냐

술에 취해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가시 박혀 빠지지 않았다

몰래 손톱을 키웠다

 

날마다 벽을 긁었다

드디어 단단해졌을 때

 

거꾸로 아버지는

병색 짙은 숨 헐떡거렸다

 

아버지 손톱은 어디 갔나요

아버지, 그 손톱 드러내세요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나지막이 고백했다

 

손톱 빠진 아버지가

이제 가엾어 못 견디겠다고 

 

 

♧ 막걸리 양은주전자를 바라보며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그야말로 벌집처럼 패인 저 양은주전자도

상처 드러낸 채로 살아가잖은가

 

우리가 세상 경륜을 두루 거친 인생 선배를 존경하듯

찌그러지고 헐벗어서 더 손님들이 사랑한다는

막걸리 양은주전자를 바라보며

그래, 상처투성이로 살아간다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너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결코 너를 위무하는 말만은 아니다

떨어져 비에 젖은 나뭇잎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이 다 추지다고 여기지는 않듯이

 

세상 한 모퉁이에는 아픈 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스러움으로 본다면 저 양은주전자도 남 못지않다

 

그러나 도전적으로 묵묵히

그래, 더 부딪치며 살아가자

그 순간순간들이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미라는 듯

상처를 빛내며 사람들에게로 간다

상처가 상처를 어루만지러 간다  

 

 

♧ 고기국숫집에서

 

세 부자가 고기국숫집에 깃들었다

아비는 늙은 노새를 닮았다

어디서든 권위가 안 설 것 같은,

머리털이 몽당비자루 같은,

밑바닥 세월 견뎌가는 듯한,

왜소한 아비와 함께 온 두 남매가

쑥부쟁이처럼 고왔다

아비가 자식들의 그릇에

말없이 돼지고기 한 점씩 얹어주었다

나는 소싯적 찌든 아비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는가

가슴에 아리게 면도날이 서는데

서럽긴 해도

저들은 덜 아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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