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동네 친척 장례를 치르노라
며칠간 하귀농협장례예식장 출입을 하였다.
촌수를 따지면 조카뻘이지만,
10여 살 차이가 나는 삼촌 같은 분이다.
젊은 시절 노래를 좋아해서 축음기를 들여 놓았는데
어렸을 적 한 번은 노래를 들으러 가서
축음기판을 만져보다가 그만 깨뜨린 적도 있었다.
장례식장이 중산간에 있어 애조로(애월-조천간 도로)를
이용해 오갔는데, 길섶에 맨 찔레꽃이었다.
장례식장 식당에 고인이 살았을 적 모습을
사진으로 편집해서 돌려주었는데
그 중에 고인이 하모니카를 멋들어지게 부는
동영상이 끼어 있어 애잔한 정이 묻어났다.
간이 좋지 않아 한 20년 전부터 복수가 찼지만
낙천적 성격을 갖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게이트볼도 열심히 치고
노래방 기기를 들여놔 동네사람들과
같이 즐기기도 하고
마음 내키면 곧잘 약주도 들면서
거의 여든에 가깝게 살았고
자식 복도 좋아 2남 3녀를
제대로 키워냈다.
장지는 고향 위쪽에 있는 가족묘지여서
일요일 장례 치르는데도 맑은 하늘 아래
이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고인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 찔레꽃 - 나종영
손 한번 잡아보지 않고
마음으로 사랑했던 여자
헤어지던 날 하얀 찔레꽃 울타리
달빛이 터지고
시린 손목이 서러웠지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이 내 젊은 날 품었던 생가시였음을
살아가는 동안
뒤돌아 손조차 흔들 수 없는, 수많은 이별이
새떼처럼 몰려왔다는 것을
찔레꽃 울타리 저문 돌무더기,
누군가 밟고 지나간 풀섶
애기돌무덤 까맣게 몰랐다는 것을.
♧ 찔레꽃 - 목필균
넘지 못할 담도 있었던가. 가시로 받쳐든 잎새로 길을 열고, 설레이는 마음은 꽃잎으로 가린다.
출렁이는 가슴 안에 담을 쌓고, 찔레꽃 한아름 피워 올려 다가갈 수 없는 세상 속으로 찌르르 향기 뿜어낸다.
네 안에 내가 가시로 박혀, 내 안에 네 향기가 가득하다.
♧ 찔레꽃 - 류종호
이 땅의 외지고 외진
산비탈 돌 틈을 비집고
하얀 소복차림으로
눈 익어 오는 것들
벌 나비 짝해 데불고
다디단 입맞춤으로 젖으며
보잘 것 없는 사랑의 시대
맑게 깨우치는 것들
세상엔 아직도
한무리의 사랑이 저렇게 펄펄 살아서
짬도 없이 허리 굽힌 하루를
선들바람으로 토닥이는구나
사람아
사랑은 이렇게 가난한 자의 땅에도
한점 부끄러움없이 오나니
내 사랑을 익히지 않고는
저렇게 펄펄 살아보지 않고는
떠나지 못하겠구나, 죽지 못하겠구나.
♧ 찔레꽃 - 권경업
그 날, 처음으로
처음으로 내가 본 것은
한없이 투명한 가을하늘
가을하늘에 핀 찔레꽃이었습니다
아니 아니, 지금 피어서 어떻게
어떻게 겨울을 나려고
깔딱고개로 깔딱고개로
무서리는 넘어 와
아픔 몇 없다면 어찌 세상일일까
보시오, 땅 위는 다 아픔이라오
도선사 대웅전 부연 끝
뎅그렁, 풍경(風磬)을 울리며
가을하늘 날아오는 물고기 한 마리
아! 윤회(輪廻)의 이 봄날
내 안에, 내 안에 가득한 만다라
하얀 찔레꽃 덤불
♧ 찔레꽃 - (宵火)고은영
보아주는 이 없는
깊은 산,
그래서
물빛 서러움일레라
하이얀 미소
순결의 서약으로 떠도는
슬픈 입맞춤
외로운 몸짓일레라
우수수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깊은 언어의 침묵
아, 고독한 사랑일레라
천년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다
이는 바람에 포물선 그리는
너의 하얀 비망록
♧ 찔레꽃 필 무렵 - 박인걸
어머니 찢어진 삼베적삼이
가시나무에 가지에 걸려
쏟아지는 유월 햇살에
하얗게 바래고 있다.
보리 고개 넘어가느라
눈물마저 말라버린
감자밭에 앉은 어머니 얼굴이
찔레꽃처럼 창백하고
코흘리개 딸린 애들은
감자 한 톨에 눈이 빠지고
윤기 없는 얼굴 위로
찔레꽃 버짐이 번져갔다.
꿈마저 시들어버린
가난했던 유년의 추억이
찔레꽃 필 무렵이면
가시에 긁힌 듯 아려온다.
♧ 찔레꽃의 전설 - 최영희
봄이면 산과 들에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
고려시대 몽고족에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네
십 여년 만에 고향 찾은 찔레 소녀
흩어진 가족을 찾아
산이며 들이며 헤매다
죽고 말았다네
그 자리에 피어난 하얀 꽃
그리움은 가시가 되고
마음은 하얀 꽃잎, 눈물은 빨간 열매
그리고 애타던 음성은
향기가 되었네
내 고향 산천 곳곳에 피어나는
슬프도록 하얀 꽃
지금도 봄이면
가시 덤불 속
우리의 언니 같은 찔레의 넋은
꽃으로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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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전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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