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현충일에 올리는 산골무꽃

김창집 2013. 6. 6. 07:19

 

어제 제민일보 김 국장과 함께

취재차 찾은 봉개 민오름,

능선으로 오르는 등산길에서 만난 산골무꽃.

 

꿀풀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15~30cm 정도이고,

잎은 마주나며 줄기에는 흰 털이 있다.

산지의 숲속에서 자라며,

5~6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오늘은 현충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태극기를 달고 들어와 이 글을 올리며,

오늘날 이 날의 의미가

단순 휴일 정도로 퇴색된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해본다.  

 

 

♧ 현충일 아침 - 손병흥

 

전란속에서도 굳건하게

국난극복 등불 훤히 밝혀주신

님이시여 호국영령들이시여,

여기 새롭게 태동하는 넋 달래어

험난한 가시밭길 온 몸바쳐 구해주신

구국 희생정신 떠 받들고자

비록 수려하지 못한 문체일지언정

끊임없이 시퍼렇게 출렁이면서도

그냥 수평 잡아 나가는 저 물처럼

진정코 무궁한 영광 더 깊은 영혼

가장 긍정적인 직관 깨달음으로

존경심 감사함 가득 보내노나니

고귀하신 그 눈물 슬픔 가시도록

수만가지 각양각색 영혼담아

언제까지나 잘 기억하기 위해

가슴 소리쳐 눈물 흘리나니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피마저도

단 한 번뿐인 의미없는 인생

처음 가졌던 소중한 마음자세

곱 씹어 우러나는 삶 살아가고파

세상 향해 큰 소리로 외쳐보던

태양이 온통 환하게 빛나던

바로 그런 오늘 현충일 아침.   

 

 

♧ 늙은 소대장 - 정웅

 

혜화역 4호선에 올라

여유 있게 군인 옆을 차지했다

갑자기 오른 쪽 어깨가 묵직해 온다

일등병이 취기와 함께 머리를 맡긴다

 

그래, 어깨만 재던 소대장이었지

오늘은 늙은 소대장이 보초를 서주마!

-무엇이 낮술을 들게 히였는가?

-어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는가?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짧은 첫 휴가가 아쉬운가?

벗겨지는 모자를 이불 덮듯 얼굴을 가려준다

 

-귀대병이겠지.

-수유리에서 전방행 버스를 타야하지 않겠는가?

전철이 서는가 싶어 어깨를 빼어볼까 하는데

땜 물 쏟듯 열린 문으로 그리움도 빨려 나간다

빈자리에 아들 냄새가 뭉클하다   

 

 

♧ 충혼탑 앞에서 - 최홍윤

 

올 유월 볕은 유달리 따가워서

돌탑에 낀 이끼를 걷어내고

뜨거운 바람이 내 어깨를 툭툭 칩니다

 

해마다

아카시아 꽃잎은

탑 언저리 산자락에 흩날리는데

흐르는 강물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유복자였던 형제가 환갑나인데

두만강 물을 마시고

고향 찾으려다 散華산화한 임의 조국,

두 동 간난 조국은,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입니다

 

환갑나이에

기억에도 없는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해마다 판에 박은 인사,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부끄럽습니다

현충일이라서 더욱 막막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 유월 아침 - 박인걸

 

해맑은 나뭇잎들이

지난밤 소나기에 목욕을 감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로

가벼운 마사지를 한다.

 

넝쿨장미꽃 농염(濃艶)한

곱게 다듬은 공원길

후각을 자극하는 꽃 향에

나도 한 송이 장미가 된다.

 

열흘도 못 가는 짧은 삶에

용암(鎔巖)같은 에너지를

핏빛 보다 더 진하게

생명에 쏟아 붓는 꽃이여!

 

초록 빛 유월에

사랑하는 그대를 위해서라면

이 목숨 흙이 될 지라도

기꺼이 바치리이다.   

 

 

 

♧ 유월의 빗길 - (宵火)고은영

 

가게 문을 활짝 열어 젖힌 채

도심의 어둠 속 아스팔트에

격정적 의문으로 꽂히는 빗물을 바라본다

서글픈 자동차 경적이 빗물에 아스라이 묻혀 간다

구멍 난 가슴으로 뭉클 차오르는 그리운 것들의 부재

 

피와 주검을 부르는 광폭한 정사(政事)여

원망과 조롱, 희망없는 시대를 부르짖는 울음이

유월의 섬세한 가슴을 핏빛 혼돈으로 물들이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며 그리고 너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나의 이력이 비루한 가난이라 너의 기쁨이 될 수 없다면

세상이 무슨 소용이냐

 

저 초록의 살랑거리는 실루엣

넓이와 깊이를 헤아려 걷는 사랑의 보폭마다

믿음과 신뢰로 안부 하는 유월의 중심에

푸른 녹음을 어우르는 비가 내린다

초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해갈의 긴 울음처럼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치닫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

저 굽이치는 빗물이 흐르는 소리에

내 영혼을 씻을 수 있다면

지금에 와서 나는 못 견디는 슬픔을 묻지 않으리

좌초된 현실에 삭아 지분거리는 기억들

이미 부식해 간 청춘의 후회스럽더라도

치근대는 눈물을 묻지 않으리   

 

 

♧ 유월의 소리 - 박종영

 

초여름 논둑에서 웅성거리며

풀꽃 향기 일어서는 소리

물 논 써레질 하는

황소 목에 달린 구릿빛 요령 소리

살구 노랗게 익어가는 그늘에 누워

복동이 불어대는 버들피리 가락에

투닥투닥 풋살구 떨어지는 소리

빨갛게 불티 나는 들꽃에 안기고 싶어

꽃방석 끼고 보채는 순이의 아양 소리

그렇게 분주한 소리 멀어지면

슬그머니 더운 바람 불러들이며

청보리 꺼끌꺼끌하게 익어가는 소리

뒷산 뻐꾸기 한낮 둥글게 말아가며

어지럽게 우는소리에

적막한 가슴 졸이며 유월의 들녘에 서면,

모두의 생명에

훈훈한 성장을 보태고 있다는

싱싱한 유월의 소리,

그 유월의 소리에 나무랄 데 없이

겸손해 지고 있다는

우리, 세월의 귀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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