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기 동창생 녀석들이
주중인 금요일에 야유회를 간다고
버스를 대여해 야외로 빠져나가는 중에
가만히 손가락 셈을 해보니,
졸업한지 꼭 50년이 흘렀다.
덧없이 흘러버린 반세기가
너무 덧없어 숲길을 걷다
잠시 오름 하나 오르고 와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난리다.
그런데 배가 불러 마시는 술이 너무 버거워
카메라 들고 밖으로 들락거리다가
더 심한 술잔 공격을 받았다.
시내에 돌아오고 나서도
질긴 놈들끼리 뒤풀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하늘에서 이렇게 나를 부른다.
얼얼한 김에
안전 시설도 없이
사다리만 매달려 있는 옥상
그냥 3층 지붕으로 올라 마구 찍었다.
아무튼 우리도 이런 노을처럼
끝에 가서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였으면.
♧ 노을에 대하여 - 구재기
두 팔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로
쓸쓸히 슬픔을 그리고 있을 때
하늘이 먼저 그것을 알고
이렇게 창을 흔들며 불꽃을 일어주었구나
어깨를 툭 치며 반기는 이웃들도
거리를 활개하는 낯선 사람들도
제각기 제 길에 부지런할 때
나의 시야에서 차츰 멀어져 갈 때
거슬러 오르다가 터져버린 눈물
무어라 내일을 읽을 수 없는 어둠
차츰 허물어져 가는 이 시간에
홀로 되어 집에 들었는데
너와 내가 하나로 만나서
이토록 엄청난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환한 대낮에도 보이지 않던 너의 얼굴이
이토록 붉어져 고백해 줄 수 있을 줄이야
내가 너를 안다는 것도 이쯤이면
결국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겠구나
슬픔도, 아픔일 수도 없이
다가오는 나의 이름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저녁놀 - 한광구
하루 종일 허기로 피어오르다가
저녁답
마지막은 보다 충만하기 위하여
맨몸에 불을 질러
마침내 절망에도 꽃이 핀다.
마지막은 절망도 이렇게 아름다워야지.
유리창마다 붉은 비늘이 쏟아지고
돌아가는 새떼들의 재잘거림에도 불이 붙어
나무마다 타오르는
서쪽.
♧ 저녁놀 - 이진흥
벼랑 위로
새털 하나 날려버린다
골짜기엔 어둠이 내리고
부러진 날개 퍼덕이며
그는 갔다
숨죽인 매혹이 능선에 걸린다
고통을 드러내는 눈부신 살갗!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 속의
굳건한 성채 하나
♧ 저녁놀 - 권오범
구름이 하늘에 그려놓은
에베레스트 산맥 끌어당겨
유리창에 걸쳐놓고
아까부터 커피 향에 취해 있는 시간
일순간 계곡에서 살아난 불씨가
수채화물감처럼 번지더니
비만해진 불덩이들이
앞산 너머 뒷산으로 건너뛰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대형 화재
고스란히 방치하다보니
뭉게뭉게 타올라
망막에 담는 파노라마가 평화스럽다
화마가 휩쓸어버린 검은 에베레스트
회오리봉에 호사스런 불씨 하나 남긴 채
두리둥실 떠다니는 불덩이들
커피마저 식어버린 한갓진 바람벽안
♧ 저녁노을 - 박기원
거침없이 저녁을 향해 달려가다
지친 숨을 걸치어 놓고
태양은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내 마음만 산 위를 방황하다
못 다 그린 그림 걸어 놓고 왔다
♧ 노을을 그리다 - 강효수
우주
살아 있는 태양
뫼비우스의 길 떠나다
울컥, 여운을 토하다
흐름으로 붓칠하다
별과 달로 지워버린
생과 몰의
찰나
♧ 노을 속에서 - 윤인환
언제나 어둠 걷힌 아침이 장엄하듯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은 고요하다
불 타오르다,
불 타오르다,
서녘으로 되도는 금빛 살 앞에 서면
사그랑이 다 되어도 언제나 떨림으로 다가오는
그리움에 할 말을 잃는다
삶의 끝까지 내 사랑도
저렇듯 아름다이 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으련만
네 가슴에 아린 회상을 동여매 묻는다.
♧ 노을을 이고 서서 - 한분순
그윽히
숨 고르며
빌딩숲 굽어보는
깊고 먼
침묵의 강
달려와 품에 안긴다
아픔도
흐르다 보면
무지개로 곱게 뜰까.
곁에 선
낯익은 모습
하나 둘 저물어 가고
뒤안길
마주 선 자리
노을을 이고 서면
덧없는
세월의 갈피
바람일 듯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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