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중에도
잠깐 개인 들판에 나가보면
장마를 환히 밝히는 꽃이 있다.
둔덕에 공터에 빈 밭에
어떻게 속속들이 파고들어
아무 생각도 없이 피어나는지
저 추운 북아메리카에서 날아와
따뜻한 땅에 자리 잡으며
마음껏 번져버린 거친 풀.
농사를 망쳐 놓아 망초라 했다는 사람 있고
망한 나라에 들어와 번진 풀이라서 그랬다는데,
제주에서는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내려온 풀’이라는
뜻의 ‘천상쿨’로 불린다.
♧ 무서워라 개망초꽃 - 홍희표
꽃상여 달밤의 메밀꽃밭 같이
하얀 개망초꽃밭 밟고
섧게 밟고 지날 때
하늘 밖 저승길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천으로 밟고 다니는
개망초꽃밭 같은 것일까
무서워라 무서워라
천하디 천하게 자라다가
임자의 손길 잠시만 뜨면
슬며시 들어가 하늘 밖을
제 마당으로 삼아버리는가
무서워라 개망초꽃.
♧ 개망초 마을의 풍경 - 고정국
열을 불러모아도 한 몸 구실에 미치지 못할
산번지 미개발구역엔 무허가 꽃들이 밀려와 산다
순순히 몸을 비끼며 개망초도 피어 있다.
스스로 제 밥그릇은 제가 알아서 챙기는 것
여태 고기맛은 커녕 정부미 한 톨 받은 바 없지만
끝끝내 인가를 향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던...
개망초, 개망초라니 참말로 개 같은 세상에 와서
잡것들 잡소리 같은 사설시조나 읊조리다가
한심한 식솔들 앞에다 뿌려놓던 팝콘 한 홉.
갑자기 광란의 바람이 야생종 개떼를 풀어
먼 중지의 진정서가 여지없이 발겨진 후
수척한 사내 하나가 젖은 팝콘을 줍고 있었다.
♧ 개망초 꽃 - 박인걸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존귀한 위치에 있지 못해도
버리진 땅을 점령하며
소박하게 피는 꽃
존재에 대한 불평이나
모양에 대한 열등감도 없이
자기들 모습 그대로
종족의 영역을 넓혀가는
탁월한 색상을 뽐내거나
흥건한 향을 내 뿜어
벌 나비들 주목받지 못해도
유월 햇살에 밝게 웃으며
눈길 주는 이 없고
때로는 짓밟히고 꺾여도
처연하게 다시 일어서는
잡초다운 잡초 꽃이여
♧ 개망초 - 김귀녀
바람 물결 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묵정밭에 망초꽃
허망한 바람,
휘돌아 스쳐가는 인연이거니 생각하고
천연덕스럽게
서러움 뚝 뚝
손등으로 움쳐내며 소리없이 피워낸 노란 꽃물
가만히 들여다보니
해맑다
힐끗, 눈길만 스쳐 가도 샛노랗게 웃는.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이것 두 좋고
모든 게 다 좋으니
천하태평 기쁨이로다
개망초야!
이 세상이 말이야
비교하지도, 달아 볼 저울조차도 없다면
너처럼 허허롭게 살아가련만
몹쓸 자아가, 버려도 될 자존심의 끈 놔 주지를 않네
흔들리며 사는 것도
행복인데 말이야
♧ 개망초 - 김윤현
가뭄에도 몸을 낮추어 견디고
목이 타는 햇볕에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이제 삶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외진 곳이나 바로 서기에 불편한 곳에서도
말없이 아름답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
인생을 더 긍정하기로 했다
보아라, 비탈진 산하에서도
고개 끄덕이며 사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며
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편편한 들판이 아니라 해도
가지런한 논둑이 아니라 해도
다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 개망초 - 장은수
잡풀만 무성한 척박한 땅
피는 꽃마다 목만 길어져
더러는 언덕을
베개삼아 눕기도 하고
밭이랑 사이에
할아버지 담배 연기만 번져
외로움 덩어리만
군데군데 무성한데
모두 떠난 자리
노인의 고독이 떨어질 적마다
돌 틈에도 헤집고 나와
몹쓸 꽃이라 흉을 보고
낫을 든 농부에 허리가 잘려도
다시 피어나는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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