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장마를 밝히는 개망초 꽃

김창집 2013. 6. 28. 08:48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중에도

잠깐 개인 들판에 나가보면

장마를 환히 밝히는 꽃이 있다.

 

둔덕에 공터에 빈 밭에

어떻게 속속들이 파고들어

아무 생각도 없이 피어나는지

 

저 추운 북아메리카에서 날아와

따뜻한 땅에 자리 잡으며

마음껏 번져버린 거친 풀.

 

농사를 망쳐 놓아 망초라 했다는 사람 있고

망한 나라에 들어와 번진 풀이라서 그랬다는데,

제주에서는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내려온 풀’이라는

뜻의 ‘천상쿨’로 불린다. 

 

 

♧ 무서워라 개망초꽃 - 홍희표

 

꽃상여 달밤의 메밀꽃밭 같이

하얀 개망초꽃밭 밟고

섧게 밟고 지날 때

하늘 밖 저승길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천으로 밟고 다니는

개망초꽃밭 같은 것일까

무서워라 무서워라

천하디 천하게 자라다가

임자의 손길 잠시만 뜨면

슬며시 들어가 하늘 밖을

제 마당으로 삼아버리는가

무서워라 개망초꽃.   

 

 

♧ 개망초 마을의 풍경 - 고정국

 

열을 불러모아도 한 몸 구실에 미치지 못할

산번지 미개발구역엔 무허가 꽃들이 밀려와 산다

순순히 몸을 비끼며 개망초도 피어 있다.

 

스스로 제 밥그릇은 제가 알아서 챙기는 것

여태 고기맛은 커녕 정부미 한 톨 받은 바 없지만

끝끝내 인가를 향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던...

 

개망초, 개망초라니 참말로 개 같은 세상에 와서

잡것들 잡소리 같은 사설시조나 읊조리다가

한심한 식솔들 앞에다 뿌려놓던 팝콘 한 홉.

 

갑자기 광란의 바람이 야생종 개떼를 풀어

먼 중지의 진정서가 여지없이 발겨진 후

수척한 사내 하나가 젖은 팝콘을 줍고 있었다.   

 

 

 

♧ 개망초 꽃 - 박인걸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존귀한 위치에 있지 못해도

버리진 땅을 점령하며

소박하게 피는 꽃

 

존재에 대한 불평이나

모양에 대한 열등감도 없이

자기들 모습 그대로

종족의 영역을 넓혀가는

 

탁월한 색상을 뽐내거나

흥건한 향을 내 뿜어

벌 나비들 주목받지 못해도

유월 햇살에 밝게 웃으며

 

눈길 주는 이 없고

때로는 짓밟히고 꺾여도

처연하게 다시 일어서는

잡초다운 잡초 꽃이여  

 

 

♧ 개망초 - 김귀녀

 

바람 물결 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묵정밭에 망초꽃

허망한 바람,

휘돌아 스쳐가는 인연이거니 생각하고

천연덕스럽게

 

서러움 뚝 뚝

손등으로 움쳐내며 소리없이 피워낸 노란 꽃물

가만히 들여다보니

해맑다

 

힐끗, 눈길만 스쳐 가도 샛노랗게 웃는.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이것 두 좋고

모든 게 다 좋으니

천하태평 기쁨이로다

 

개망초야!

이 세상이 말이야

비교하지도, 달아 볼 저울조차도 없다면

너처럼 허허롭게 살아가련만

몹쓸 자아가, 버려도 될 자존심의 끈 놔 주지를 않네

흔들리며 사는 것도

행복인데 말이야   

 

 

♧ 개망초 - 김윤현

 

가뭄에도 몸을 낮추어 견디고

목이 타는 햇볕에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이제 삶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외진 곳이나 바로 서기에 불편한 곳에서도

말없이 아름답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

인생을 더 긍정하기로 했다

보아라, 비탈진 산하에서도

고개 끄덕이며 사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며

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편편한 들판이 아니라 해도

가지런한 논둑이 아니라 해도

다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 개망초 - 장은수

 

잡풀만 무성한 척박한 땅

피는 꽃마다 목만 길어져

더러는 언덕을

베개삼아 눕기도 하고

밭이랑 사이에

할아버지 담배 연기만 번져

외로움 덩어리만

군데군데 무성한데

모두 떠난 자리

노인의 고독이 떨어질 적마다

돌 틈에도 헤집고 나와

몹쓸 꽃이라 흉을 보고

낫을 든 농부에 허리가 잘려도

다시 피어나는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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