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산에서 만난 난(蘭)들

김창집 2013. 6. 30. 07:57

                                                                                                        * 은난초 

 

가령, 온실이나 거실에서 기품있게 자란

동양란이나 새우난초도 아름답지만

산 속에서 스스로 자란 여러 가지 난초는

더 풋풋한 맵시를 갖는다.

 

산 속을 헤매다

어디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에 끌려

따라가 만났을 때의 그 가슴 떨림,

게다가 대낮 햇볕을 만나지 못하면

도무지 열지 않는 굳게 다문 입

조금은 아쉬워하며 셔터만 누른다. 

 

                                                                          * 금새우란

 

♧ 난초 - 성백군

 

뒤란 돌담 밑 화단에

온종일 햇볕 좋아

봄날이 놀러 왔다 낮잠 자나 했더니

 

웬걸, 이리저리 뒤척일 때마다

땅이 부풀리고 막돌이 흔들리더니

 

알머리에

주둥이 노랗고 조막손 불끈 쥔 놈이, 옹알이며

옹골차게 햇살을 빨아먹는다

 

견디다 못해 녹아버린 봄

젖가슴 다 내놓고 늘어지는데

 

거머리 같기도 하고 진드기 같기도 하고

흡입에 취하여 만족한 입술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헤벌어진다  

 

                                                                 * 한라새우란

 

♧ 유령난초 - 김선우

 

 

 향기도 빛깔도 거두고 땅밑을 흐르는 바람을 홀로 매만져주고 있을 당신 가끔 햇빛이 톰방거리며 물 건너오는 소리 그리워지는 걸 보면 땅밑에서 잎 틔우는 당신의 아름다운 독, 내 속으로 흘러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젯밤 내 꿈 밖을 서성이다 돌아간 당신, 당신 삶은 땅밑으로 오고 내 삶은 땅 위로 오기에 뛰어나가 당신을 맞지 못했습니다 죽은 네 오빠가 흙을 헤치고 다시 나올 것만 같구나, 당신의 안부를 영영 잃을까 경계에서 피고 저무는 어머니는 올해 더욱 야위었습니다 땅밑 깊은 꽃대궁 속으로 어머니가 긴 숨을 몰아쉴 때 세계가 슬픔으로 멈칫하였습니다 몇년 만에 한번씩 당신은 땅밑에서 꽃을 피운다지요. 어머니 젖무덤에서 부화하던 바람은 언제쯤 당신의 어두운 방 앞에서 문 두드렸을까 애써 모르는 척 당신은 방문을 닫아걸고 아직 피지 않은 꽃잎 속 실핏줄을 후후 불어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태양을 등진 식물인 당신 햇빛과 물을 향해 나아가지 않도록 당신이 꿈 밖에서 어머니 맨발에 입맞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햇빛을 가리며 물밥을 던지고 나는 문 안쪽으로 숨죽였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독을 지녔으니 내 영혼의 음지로 흘러든 독을 모아 등잔을 띄웁니다 긴 독백을 이기고 환한 등 하나 당신의 기약 없는 꽃대궁에 가 맺힐 수 있을까요 당신이 두고 간 발자국 하나 하나 따뜻한 흙으로 덮어가는 어머니의 새벽 염불소리 멈추지 않습니다  

 

                                                                              * 금난초

 

♧ 나비난초 - 양전형

 

초름한 화분에 붉은 나비들 피었네

그대는 가뭇없고 봄날은 다시 오고

화경에 바짝 부풀다 동동 동동 피었네

날아도 날아봐도 날아지지 않네

접어도 접어봐도 접어지지 않네

모양이 내 그리움일세 불서럽게 생겼네

 

                                                                            * 갈매기난초

 

♧ 난초 향기 속에 - 명위식

 

은은히 풍겨 나와

방안 가득 배여 있는 너의 향기

수줍은 여인의 숨결인가

속살은 시리도록 눈이 부시다

 

창 틈 실바람 타고

진동하는 향기에 매혹되어

자꾸만 너에게 가까이 가고만 싶어진다

그윽한 향기로 다가오는

너를,

무엇으로 반겨야 하리

 

그대 향기 닮아 나의 사랑 키우고 싶다

감미로운 네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

 

                                                                              * 나리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