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났는데 어정쩡한 소나기
사람 약 올리긴가 빨래만 수난 겪네
올 테면 제대로 오지, 목축이다 마는가.
중산간 일부 지역 제한 급수 소식에
한밝 저수지 물이 다 동난다는구나
이러다 다른 지역도 그리될 건 아닌지.
조그만 연못 위를 다 덮은 물양귀비
저 녀석은 도대체 가뭄 걱정 않네그려
당태종 위세를 믿어 도도하게 구는가.
♧ 맑은 날 - 김영란
연초록 아이라인
곱게 바른 갯바위
두루미 한 마리
서성이다
날개 펴는
맑은 날
비양도 앞바다
갸우뚱한
배
한 척
♧ 오토매틱 시대 - 김진숙
신도시 주유소들이 맞춤형 걸레를 든다
한사코 따라붙은 백미러 구름까지
세상에 긁힌 상처들
무료 세차합니다!
사각 기계 속에서 나도 때를 벗기리라
쌍방향 대형닦이가 좁혀오는 기억 저편
처음 탄 자동세차기 눈이 질끈 감긴다
언제였나, 순순히 어깨를 내어준 적이
눈썹 짙은 큰스님 죽비도 아닌 것이
내 삶의 군더더기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순간, 다녀가시는 공중목욕탕 그 손길
물꽃으로 잔뜩 핀 어린 나를 찰싹인다
방울진 눈물 밀어내 다시 켜는 초록 불
♧ 봄을 사다 - 김영숙
이천 원 주고 샀네
할망장터 돌미나리
도도하다 공주보다
살짝 데친
빛과 향
보아라,
내가 봄이다.
저녁밥상
나물접시
♧ 그냥 - 홍경희
싱겁게
거슬리지 않게
두 음절로 뭉뚱그려
속없이
숫기 없이
부챗살처럼 접어버린 말
몸살 뒤
노오란 군침
민들레가 피었다.
♧ 꽃물 - 이애자
멀미난 버스가 학생들을 욱~ 뱉자
우르르 몰려와 예쁜 하트 은밀히 꺼내고 간 공중화장실
변기통 아랫입술을 누가 또 깨물었니?
♧ 새별오름의 봄 - 장영춘
까맣게 사리로 남은
그 겨울의 흔적 같은
새별 오름 불꽃축전 검불 다 태운 자리
양지쪽 손을 내미는 아기 손의 고사리
뿌리로 힘을 모아
이 들녘을 지켰구나!
뜨겁던 이마 위에 물수건을 얹히던
황사 낀 계절의 경계 새순 돋듯 아문다
♧ 떠돌이 달 - 고정국
- 시조로 쓰는 스토리텔링
의처증 중증처럼 매달 초순에 내려와서
솔숲 뒤에 숨어 동네 거동을 살피는 달
파란 눈 파란 손톱이 예전 같지 않더니
오늘은 벤치에다 초승달을 불러 앉혀
뒷모습 훔쳐보는 그 연유를 물었더니
지구로 전학 왔다는 제 반쪽을 찾는단다.
학교 가기 싫어 공부가 너-무 싫어
하늘나라 아이들도 무단가출이 유행이라며
떠돌이 그별 모두가 땅에 내려 왔단다.
해마다 이 땅 위에 낯선 꽃들이 피는 까닭
겨울엔 별꽃이고 여름이면 수국 꽃잎
야생종 달맞이꽃도 저들 중에 하나래.
하늘나라 교과 과목이 몇이냐고 물었더니
이제 캐캐 묵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은
배워도 쓸 데가 없어 폐기처분 했단다.
“돈 돈 돈이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시험 점수라면 양잿물도 마실 거라는
파다한 한국의 실정을 벌써 들어 안단다.
홀쭉한 허리춤에 늘 배가 고픈 초승
그래서 떠돌이 달은 낮은 골목에 내려와서
이 땅에 배고픈 아이들 벗이 되고 싶단다.
한국행 예정이던 아홉 명의 탈북어린이
라오스 하늘에서 강제송환의 소식을 듣고
덩달아 눈이 붓도록 혼자 엉엉 울었단다.
하늘엔 떠돌이 별 땅 위엔 떠돌이 아이
떠돌다 지친 것들이 꽃이 되고 별이 되는…
며칠째 우리 동네인 달이 오지 않았다.
♧ 눈 온 아침 - 오영호
밤새
하느님이
펼쳐 놓은 화선지에
날아온
비둘기 한 쌍
낙관을 찍고 있다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
온 마을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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