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조(2)

김창집 2013. 8. 7. 08:03

 

장마가 끝났는데 어정쩡한 소나기

사람 약 올리긴가 빨래만 수난 겪네

올 테면 제대로 오지, 목축이다 마는가.

 

중산간 일부 지역 제한 급수 소식에

한밝 저수지 물이 다 동난다는구나

이러다 다른 지역도 그리될 건 아닌지.

 

조그만 연못 위를 다 덮은 물양귀비

저 녀석은 도대체 가뭄 걱정 않네그려

당태종 위세를 믿어 도도하게 구는가.

   

 

♧ 맑은 날 - 김영란

 

연초록 아이라인

곱게 바른 갯바위

두루미 한 마리

서성이다

날개 펴는

 

맑은 날

비양도 앞바다

갸우뚱한

한 척 

 

 

♧ 오토매틱 시대 - 김진숙

 

신도시 주유소들이 맞춤형 걸레를 든다

한사코 따라붙은 백미러 구름까지

 

세상에 긁힌 상처들

무료 세차합니다!

 

사각 기계 속에서 나도 때를 벗기리라

쌍방향 대형닦이가 좁혀오는 기억 저편

처음 탄 자동세차기 눈이 질끈 감긴다

 

언제였나, 순순히 어깨를 내어준 적이

눈썹 짙은 큰스님 죽비도 아닌 것이

내 삶의 군더더기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순간, 다녀가시는 공중목욕탕 그 손길

물꽃으로 잔뜩 핀 어린 나를 찰싹인다

방울진 눈물 밀어내 다시 켜는 초록 불 

 

 

♧ 봄을 사다 - 김영숙

 

이천 원 주고 샀네

할망장터 돌미나리

 

도도하다 공주보다

살짝 데친

빛과 향

 

보아라,

내가 봄이다.

저녁밥상

나물접시 

 

 

♧ 그냥 - 홍경희

 

싱겁게

거슬리지 않게

두 음절로 뭉뚱그려

 

속없이

숫기 없이

부챗살처럼 접어버린 말

 

몸살 뒤

노오란 군침

민들레가 피었다. 

 

 

♧ 꽃물 - 이애자

 

멀미난 버스가 학생들을 욱~ 뱉자

우르르 몰려와 예쁜 하트 은밀히 꺼내고 간 공중화장실

변기통 아랫입술을 누가 또 깨물었니? 

 

 

♧ 새별오름의 봄 - 장영춘

 

까맣게 사리로 남은

그 겨울의 흔적 같은

 

새별 오름 불꽃축전 검불 다 태운 자리

양지쪽 손을 내미는 아기 손의 고사리

 

뿌리로 힘을 모아

이 들녘을 지켰구나!

 

뜨겁던 이마 위에 물수건을 얹히던

황사 낀 계절의 경계 새순 돋듯 아문다 

 

 

♧ 떠돌이 달 - 고정국

  - 시조로 쓰는 스토리텔링

 

의처증 중증처럼 매달 초순에 내려와서

솔숲 뒤에 숨어 동네 거동을 살피는 달

파란 눈 파란 손톱이 예전 같지 않더니

 

오늘은 벤치에다 초승달을 불러 앉혀

뒷모습 훔쳐보는 그 연유를 물었더니

지구로 전학 왔다는 제 반쪽을 찾는단다.

 

학교 가기 싫어 공부가 너-무 싫어

하늘나라 아이들도 무단가출이 유행이라며

떠돌이 그별 모두가 땅에 내려 왔단다.

 

해마다 이 땅 위에 낯선 꽃들이 피는 까닭

겨울엔 별꽃이고 여름이면 수국 꽃잎

야생종 달맞이꽃도 저들 중에 하나래.

 

하늘나라 교과 과목이 몇이냐고 물었더니

이제 캐캐 묵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은

배워도 쓸 데가 없어 폐기처분 했단다.

 

“돈 돈 돈이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시험 점수라면 양잿물도 마실 거라는

파다한 한국의 실정을 벌써 들어 안단다.

 

홀쭉한 허리춤에 늘 배가 고픈 초승

그래서 떠돌이 달은 낮은 골목에 내려와서

이 땅에 배고픈 아이들 벗이 되고 싶단다.

 

한국행 예정이던 아홉 명의 탈북어린이

라오스 하늘에서 강제송환의 소식을 듣고

덩달아 눈이 붓도록 혼자 엉엉 울었단다.

 

하늘엔 떠돌이 별 땅 위엔 떠돌이 아이

떠돌다 지친 것들이 꽃이 되고 별이 되는…

며칠째 우리 동네인 달이 오지 않았다.

  

 

♧ 눈 온 아침 - 오영호

 

밤새

하느님이

펼쳐 놓은 화선지에

 

날아온

비둘기 한 쌍

낙관을 찍고 있다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

온 마을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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