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와 시조

김창집 2013. 8. 10. 16:54

 

뜨거운 여름의 햇살은 오전과 오후를

구별하여 내려쪼이진 않는다.

 

그러나 바람도 통하지 않은

길섶 담벼락에 바짝 엎드려 피는

이 애기범부채야말로

온통 붉은 색으로 무장하고

그런 햇살을 즐기는 듯하다.

 

어디서 나서 자라다가

척박한 이 제주 땅에 들어와

가뭄까지 든 땅을 장식하고 있는고? 

 

 

♧ 꿈, 유혹 그리고 중독 - 김광렬

 

몸은 썩어도 꿈은 썩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노래를 위해 목청이 갈라지고 또 갈라졌을 사람과

하염없이 독을 깨고 또 깼을 사람과

원고지를 찢어내고 또 찢어냈을 사람과

꿈은 유혹이다

유혹은 중독이다

꿈에 중독된 사람들은 행복하다

꿈이 없다면

삶에 향기가 날까 

 

 

♧ 면이 말이야 - 김경훈

 

다소곳하게

착착 안겨야지

이건 말이야

까칠하고

뻣뻣하게 대들며

한 대 칠 기세니

미스 박이 아니고

그 집 짬뽕 말이야

다신 먹나 봐라

 

 

♧ 봄비 - 김영미

 

취하도록 흠뻑 젖었다

온힘을 다하여 꽃망울을 틔워야할

조팝나무가 된 것 마냥

 

 

♧ 파도는 봄날 - 김순선

 

파도는 봄날

삼단 드레스를 입고

플라맹고를 추며 다가온다

살랑살랑 하얀 레이스를 흔들며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흉흉한 마음에

달콤한 봄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삼고초려 하듯

겨울의 잔재를

마음의 갈등을

꽃샘추위조차 보내버려야 한다고

화해의 손 내민다 

 

 

♧ 남방큰돌고래· 2 - 현택훈

 

자전거를 타는 건

바람 속을 헤엄치는 것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건

음악 속을 헤엄치는 것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사진 찍는 건

시간 속을 헤엄치는 것

 

우리는 모두 바다 속을 유영하(겠)지

월정리 바닷가 고래가 될 카페 이름처럼

고래가 될, 아니 이미 고래가 된

사람들, 마을들, 슬리퍼들

너의 마음속에서 헤엄치던 날이 있었지

 

어린 마음은 낯선 공항의 검색대에서처럼 불안했지

이제 다시 만난 자유는

푸른빛 자전거 페달처럼 돌아가지

 

시간 속을 헤엄치는 건

구럼비 앞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

바람 속을 헤엄치는 건

태국 소녀의 발가락을 간질이는 것

음악 속을 헤엄치는 건

제주 바다를 한 바퀴 도는 것 

 

 

♧ 땅꽃 - 이애자

 

눈물 맺힌 날에도 맑게 웃어 보이더라

허리가 아플 때면 허리가 어디 있냐는……

한없이 저 작은 키 앞에 무릎을 꿇고 싶다

 

 

♧ 뉴스 한 컷 - 김진숙

 

쿵, 하니

아파트 바닥으로

몸을 던진

절망

절망

 

끝까지 살았어야지, 실시간 댓글 위로

 

외마디

신음도 없이

동백꽃은

지고 

 

 

♧ 능소화 지는 날에 - 김영란

 

슬며시 그림자가 행선지 바꾸는 오후

옛 사랑 입맞춤 같은 마파람 불어온다

시간의 간극을 따라

밀려오는

그리움

 

은갑사 꽃물 들여

옷 해 입은

저녁놀

열대야 수평선에

아롱아롱 피어서

한 뼘 더 늘어난 목을

살며시 와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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