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의 시와 소황금

김창집 2013. 9. 4. 10:26

  

다시 권경업 시집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을

집어들었습니다.

 

읽다가 몇 편을 옮겨 

 

어제 인터넷이 안 되는 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운동 겸 꽃소식을 물으러 갔던

한라수목원에,

더운 여름 한철 피워댔던 소황금,

 

원래 자생하던 백약이오름은 아니지만

박각시 부지런히 드나드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찍은 사진과 곁들입니다. 

 

 

♧ 한로(寒露)

 

세상이 다 애처로운 아침입니다

 

취밭목 길섶 제 혼자서 피어

끝내 한로 찬이슬이라고 우기는

저 가여운 들국화를, 누가

밤새 눈물 머금게 하였습니까 

 

 

♧ 봄바람

 

간지럽다며 강물은

여린 살결 뒤척입니다.

 

‘간질이지 마, 간질이지마.’

겨우네 꽁꽁 품어두었던

 

뾰얀 가슴, 키득키득

봄바람 앞에 간지럽습니다

 

 

 우수

 

언제부턴가

엄동의 조개골 비집고

실낱같은 물길 열더니만

 

보세요, 큰일났어요

 

그 물길 흘러 흘러

밤마다 가슴엔 막막한 홍수  

 

 

♧ 취밭목 1

 

누군들 없으랴

지친 삶의 쓸쓸한 모퉁이

떨군 고개 조용히

되뇌어 부를 이름 하나쯤

 

너는 나의 그런 그리움이다

하늘 아래 가장 따뜻한 

 

 

♧ 숫눈길 1

 

아무도 울어보지 않은 길

갈참나무도 힘겹게 서 있는

볕들지 않는 천태산* 북쪽 비탈

그대에 앞서, 뽀득 뽀드득

먼저 울고 싶었습니다, 울면서

그 작은 걸음으로 가지런히

나를 밟고 가기를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하얀

숫눈길이 되고 싶었습니다

 

---

*천태산 - 경남 양산군 원동면에 있는 산

 

 

♧ 숫눈길 2

 

그대에게 가는 길은 발 시립니다

지워버린 오솔길

 

다가오지 말라는 숫눈을 밟아

걷고 걷다보면, 또 눈은 내리고

 

언젠가는 산벚꽃 하얀 꽃눈도 내리고

그때는 시린 발을 잊을 겁니다.

 

 

♧ 가을에게

 

배경으로 한, 한없이 투명한

너 푸른 빛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발걸음에 내 귀는 시리고

소리 없이 전하는 바람결에

들끓던 가슴은 스산하여

나는 서성인다

 

뜨겁던 여름날, 먼빛으로

너를 예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 아침이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하여

나는 떨고 있다, 두려움은 아니라 말하지만

흔들리며 가야할 너와의 길이

저 쑥밭재 길섶 억새처럼, 밤마다

하얗게 울음으로 피어날 그 일이 걱정이구나

 

흔히들 쉽게 말하고 쉽게 지워버릴

그 무엇으로는, 정녕

너를 맞지 않으련다

 

 

♧ 순두부

 

돌콩 같은

야물고 단단한 나를 으깨어

거칠고 쓰잘데 없는 것

펄펄 끓여 거러내고, 다시

쓰리고 아린 간수로 정화시켜

여리고 하얀

순두부로 태어나고 싶다

 

후후 불어가며 즐겨먹을

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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