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성운의 시조와 흰부용

김창집 2013. 9. 5. 07:40

 

푸른사상 시선 31

홍성운 선생의

‘오래된 숯가마’를 폈다.

 

시조가 그렇게

감칠맛 나는 장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동향(同鄕)으로

나이 차이가 쬐끔 있지만

느낌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아침

다시 한 번 시심에 젖어본다. 

 

 

♧ 소나기

 

“무사 와렴시니?”*

포주의 입담처럼

 

보채던 열대야가

일순 후두두득

 

거미줄

퍼억 뚫렸다

오,

빗줄기의 힘!

 

---

* 무사 와렴시니? : 왜 서두르니? 

 

 

♧ 쇠기러기의 시간

 

기다리던 답신 오듯 층진 울음이 와

섬은 살풍경 놓아주며 소리에 젖어든다

단풍 숲 건너왔는지 정강이가 발갛다

 

지의류 선태류 덮인

툰드라 극지에서

제 깃털 떨어내 둥지 하나 만들고

북방의 습한 여름을

뜨겁게 껴안았을

 

빙점이 가까워지면 활강은 시작된다

기류에 잇대는 어린 새들의 편대

이념과 국경을 넘어 먼 기억의 섬으로

 

빛과 소리로 여는 늦가을 첫새벽

추수 끝난 밭에서 이삭 줍는 쇠기러기들

살갑게 대화 엮는다

아날로그 혈육의 사간 

 

 

♧ 할아버지의 명함

 

고백컨대 할아버지는 먼 기억의 무늬 같다

만장처럼 꽃잎 날리던 서너 살의 봄날

훈장의 호칭마저도 훌훌 털고 떠나셨다

 

세월은 흐른다 해도 아버지의 시간이 머문

작은 함에 간직해둔 오래된 명함 한 장

불현듯 의식을 넘어

일제 강점기 초상을 본다

 

단 한 줄 '濟州郡 新右面 洪如天'

누군가에게 여기 있다

말하고 싶었을까

온 면을 세내서까지

기다리는 분 있었을까

 

서울에서 바라보면 좌우로 갈리는 섬

지금이야 신우면은 애월읍으로 바뀌었지만

바람 든 섬 끝 하늘에 문패로나 뜨는 달 

 

 

♧ 어떤 문답

 

어느

 

문학평론가

 

‘하필 이 시대에 시조냐?’고

 

반세기 그리 우려도

 

더 짜낼 색소 남았는지

 

말 끝에

 

‘뚝’

 

지는 단풍잎 한 장

 

부동산이

 

동산 되는 

 

 

♧ 부록富祿 마을

 

1

폭우라야 갈증을 푸는 화산섬의 건천들도 제 터를 만나면 느릿느릿 에둘러 간다

한라산 먼발치에 앉은 댓잎 성성한 부록 마을

 

2

시골 아낙 분바르듯

눈발이 무겁던 날

 

도시의 유랑기질

묶어놓고 싶어서

 

초저녁 별무리 뜨는

농가에 짐을 부렸다

 

3

시골이 다 그렇듯

정낭 없는 올레가 있다

과원이 뿜어대는, 매화 향기, 귤꽃 향기

내 유년이 곰삭은 길목

겨울나고

여름을 나고 

 

 

 

♧ 북새통

 

말맛을

 

알고 나서

 

시어 한 개 꺼내려는데

 

북과 쇠들 사이, 베틀 북이 오가는 사이

 

내 사유 끝이 보일까

 

북적이는

 

언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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