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입동 무렵의 첨찰산 산행

김창집 2013. 11. 8. 00:12

  

진도에서 제일 높다는 해발 485m의 첨찰산(尖察山)

쌍계사에서 올라 진도아리랑비로 내리는 코스를 택했다.

제주도처럼 겨울이 따뜻하여

봄똥배추가 겨울을 나고

전국 겨울 대파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는 곳이어서인지

아직도 단풍이 절정에 오르지 않았다.

 

짠한 홍주부터 시작하여

구기자막걸리와 울금막걸리가 흥을 돋우고

대게찜과 뜸북국이 입맛을 자극한다.

국화축제도 보고, 진도 인간문화재 공연도 보았던

1박2일의 진도 여행 

올 11월을 맞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 입동 - 김귀녀

 

한낮은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다

부푼 가슴 다독이며

속으로 갈무리하는

하루는 그녀의 몸 위에 가만히 눕는다

겨울 속으로 가기위해

재충전하는 아름다운 날

백담사를 오르는 길목엔

수런거리는 가을빛

따뜻하게 달궈진

단풍잎들은 반짝이는 손을 흔든다

어수선하던 마음도

쉴 틈 없이 바쁘던 시간도

아픈 영혼도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

늦가을의 한 낮으로

그녀는 빨려 들어간다 

 

 

♧ 입동(立冬) - 박금숙

 

살얼음을 타고

잘도 왔구나, 겨울은

상강霜降을 맨발로 지나온

아직은 얇은 외투차림인데

 

어젯밤 된서리에

꽃잎처럼 찍어놓은 까치 발자국

아침을 물어 나르는

발끝이 시렸나보다

 

바지랑대 타고 오르다

수척해진 나팔꽃 줄기

가는 허리를 단단히 졸라매고

못 다한 말처럼

여문 씨앗을 뱉어내는데

 

먼 길 떠나온

벌판 같은 마당 한 편에

싸늘한 아침빛이

계절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 입동 부근 - 송종찬

 

입동이 눈앞인데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밤나무 잎이 떠가는 냇가에 앉아

협곡을 막 빠져 나온 물살을 바라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잘게 드러난 주름살 창백해진 손과 발

주술사처럼 강기슭마다 물안개를 피워

사람들이 어찌어찌 살고 있는지 저지대의 안부를 물으며

낮은 목소리로 갈대를 흔들고 지나간다

언제 영어의 몸이 될지 내년 봄까지

어디서 얼음의 제단이 될지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절로 막막해지는 늦가을 그림자 속에서  

 

 

♧ 입동 - 이명기

 

바람이 몹시 불어 코끝이 어는데,

빈손 쫙 펴 들고 먼 곳을 배경으로 섰습니다.

다 쓰러진 세상엔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거울처럼 잘 닦여진 풍경 속으로 자꾸 얼굴 감추는

길을 갑니다. 이 길 끝에는 드문드문 까치밥이 어는

몇 채의 집과 샛강 건너 돌담을 쌓고,

저물 무렵엔 낮은 지붕 위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입니다. 몇 남은 잎에 내려온 햇살같이,

기다림이 끓고 있는 곳으로, 이제 한동안

당신을 만날 수 없음을 압니다.

  

 

♧ 立冬입동 무렵 - 최진연

 

그대 목소리는 山色산색처럼 또 한번

변질할 것이다.

나날의 오랜 경작 끝에

뿔이 빠진 암소의 시간,

죽음이 비질해버린 가지 위에서

삐-, 삐-, 울다 간 새의 둥지를

몇 오리 맴도는 햇살을 볼 때

그대 폐부를 울리는 딱한 기침은

먼 산의 늑골을 휘젓는 風雪풍설처럼

재발할 것이다.

銀錢은전을 흔드는 잎새들의 해안에서

律動율동하던 능선들이 발을 뻗고

그 위를 기어 넘는

검은 그림자

생애의 논밭을 건너오는 저녁

그대 건강한 목울대도

부어오를 것이다.

야망의 새떼들이 날아간 가지 끝에

위태롭게 밀려와 걸리는

만삭의 구름,

저들이 우리 정원에 뿌리는 비는

니나노집 장단과는 다른 노래를 부르면서

현재의 꽃잎에도 젖어들 것이고,

간밤에 진 꽃잎에 묻혀

비에 젖는 곤충의

죽은 촉각이

또 한 번 그대를

찔러 죽일 것이다.

욕망의 꿈틀대는 이랑을 갈다가

뿔 빠진 암소처럼

늙어버린 시간에.

 

 

 

♧ 立冬 - 허형만

 

아파트 뒷산 오르는 길

찬 바람기가 코끝을 때린다

새들의 푸드덕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운동복 차림의 낯익은 얼굴들도 줄어들었다

굴참나무 마른 잎 하나 참 먼길을 왔는지

내 발 아래에 와서 소리없이 눕는다

그 이파리 일으켜 세워 손을 꼬옥 쥐고

생각한다 시간이란 참으로 신이 거느리시는 거라고

나보다 앞서 걷는 사람들

등짝으로 눈부신 한 생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는 바짝 다가붙지 못하고

이만큼 떨어져 걸으며 한기로 몸을 떤다

나처럼 떨리는 시간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