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와 꽃사과

김창집 2013. 11. 21. 08:25

 

♧ 무용총 수렵도 - 김성주 

 

겁 많은 내가

말을 탄다는 것

활을 쏜다는 것

엄두도 못내는

내가

그녀를 사랑은 하고

가진 것은 없고

 

목숨 걸고

멋진 사냥을 결심한 것인데

 

그녀를 모시고 만주벌판으로 갔네

폼 나게 머리에 깃털을 꽂고

말을 달리며

화살을 날렸네

사슴을 향하여

호랑이를 향하여

 

커피는 뜨겁고

음악의 선율은 부드러운데

말은 심하게 요동치고

화살이 나는 방향은 가늠 할 수 없었네

 

분연히 일어선 고구려의 왕녀

내게로

질주하는 말을 타고 화살을 날렸네

 

“남의 가슴에 독화살을 쏘고도 무사할 줄 알아!”

 

유빙을 붉게 물들이며, 늑대 한 마리

긴 울음을 우는 것이네

 

 

♧ 노을 - 김문택

 

한 끼니를 싣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몇 개의 골목이

하루치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길바닥에 엎드려

호흡을 가다듬는 폐지들

 

저들의 수명도

늙은 손아귀에 달려 있다

 

진통제 한 줌 먹고

밥벌이 나서는 손수레

 

횡단보도, 인도블럭에 주차한 자동차들 때문에

위태롭다

길 위의 할머니 

 

 

♧ 더불어 살아가자고 - 김순선

 

제비가 그늘집 티하우스로 날아왔다

까만 연미복 입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가더니

이번에는 두 마리가 찾아왔다

입에는 가는 지푸라기를 물고 있다

“여기는 안 돼!”

아가씨의 단호한 어조에

쫓기듯 날아갔다

잠시 후 또 날아왔다

티 하우스 앞에는 키 큰 푸른 나무들이 즐비한데도

도어 문 꼭대기에 앉아

……

말줄임표를 남긴다 

 

 

♧ 못다 쓴 시 - 현택훈

    - 정군칠 시인

 

오일장 할머니 장터에 가서

할머니 거친 손 들여다보고

철공소에서 튀는 불꽃을

또 가만히 들여다보고

봄꽃나무 즐비한 꽃집 앞에서

에쎄 클래식 한 대 피우고

삼덕빌라 202호로 들아와

봄동배추국으로 점심을 먹고

금성 오디오로 레너드 코헨 들으며

베란다 야고 분갈이를 하고

도서관 시창작교실 강의 자료를 만들고

필사노트에 좋은 시 한 편 옮겨쓰고

서울에서 교편을 잡는

외동딸에게 이메일로 안부를 묻고

지난 주말에 찍은 동백 낙화 사진을

블로그에 옮겨 놓고

에쎄 클래식 한 대 피우는데

시가 스멀스멀 신병(身病)으로 다가온다

어둠이 찻잔 속으로

침몰한다 

 

 

♧ 곤밥 - 강봉수

 

히영밥은 때 읏이 먹을 수 있던 게 아니엇주

식게나 멩질날 아니문 꼴 뵈리기 읏어부난

아으덜은 식게날광 멩질만 지들리멍 살아서

 

경 읏이 살멍도 식게 먹지 못 아이덜 찍시

곤 밥 사발에 돗궤기 두 점을 싸 보내고

올레질 치 쓰는 이웃광도 반을 테우멍 살아신디

 

요즘 싀상 곤밥광 돗궤기 흔전해 노난

궨당 식게날엔 집에 걸러졍 피자 파티

멩질날엔 출장가노렌 새벡이 등산복 입엉 나산덴 

 

 

♧ 소나기 - 현경희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신가요?

유리문에 남겨지지 않은 지문

 

두두두두

달리는 소리

도망이 시작되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요란한 도둑에

하늘도 땅도 땀에 젖어

슬슬 화가 날 때쯤

 

똑똑똑

다시 조용히 문 두드리는 소리

도망자가 스스로

백기를 들고 달아난다 

 

 

♧ 가을의 끝 - 홍경희

 

온 마음 물들여 놓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낙심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고 싶을 때

 

새처럼

날리는 문자,

흉곽 속의

긴 울음 

 

 

♧ 문득 - 한희정

 

세월이 가면 목탁소리도

 

절로 익는다는

 

상좌스님 말씀에도

 

눈 하나 꿈쩍 않던

 

행자승 서툰 염불에

 

그리움이

 

묻었다. 

 

 

♧ 코파카바나* - 김영란

 

남미의 바람은

람바다를 추며 온다

스페인 군대의

칼에 찔려 신음하듯

비틀어 몸 뒤척이는

하늘보다

짙은 바다

아즈텍

전설들이

밀물로 더듬어오면

감전되듯 무너지는

뜨거운 바람소리

황금빛 태양 안으로

날아간다

저 흰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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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카바나 : 브라질의 중심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