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소설 지난 토요일

김창집 2013. 11. 23. 16:03

 

제주 지방은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어떤 때는 너무 이르게

어떤 때는 너무 빠르게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이 온다.

 

엊그제 갑자기 춥고 한라산에 눈 내려

오늘 많은 인원이 한라산에 가기 위해

성판악 입구 주변에 주차를 해놓았다.

 

그렇지만 이 튤립나무는 아직도

그 잎을 물들이지 못한 상태다.

 

오늘 서귀포에 있는 영천악에 올라

바라보는 한라산은 눈이 쌓여

분명히 소설(小雪) 기분이 나는데도

오름은 아직 따뜻한 가을이다.

 

 

♧ 마른잎 - 권경업

 

지쳐 누운 몸으로, 버석버석

조개골 골바람에

몇 마디 기별 전합니다

 

그대도 나처럼

어깨 시려 잠 못 이룰까요

소설(小雪) 전후 답신이나 받아볼지

혹 싸락눈 진눈깨비라 하더라도

초로(初老)의 근심처럼 깊어 가는 밤

밤새워 그 소식에 얼굴을 묻고

별빛이, 우리 추억의 먼 등불처럼

빛나기를 기대하며

그대의 평안을 빕니다, 부디

그럼 다시 뵈올 날까지 이만 총총  

 

 

 

♧ 소설(小雪) - 최재환

 

방문 굳게 걸어 잠그면

추위도 밖에서 주춤거릴까.

결 고운 조약돌 하나

햇볕 따스한 石床석상에 올려

찻물 끓기를 기다리다.

 

돌려받은 세월이

삶을 앞지르기 전에

빈손으로 돌앉아도

하늘을 거역치 않고

밀린 빚이나 지워얄 텐데.

 

온갖 시름이 물속을 어지럽힐 때 쯤

찻잔을 뎁히는 입김처럼

눈발이 가슴을 파고든다. 

 

 

♧ 소설 - 권오범

 

가문의 번창 명받고

소모품으로 태어나

무성하게 경쟁한 추억

제각기 갈무리한 이파리들

 

이별이라도 섭섭찮도록

성깔대로 하나하나 끌어안고

불콰하게 뭉그적거리던

가을이 갔다

 

태곳적 약속 앞세워

매섭게 식식거리며

칼같이 들이닥친

동장군 콧김 무서워서  

 

 

♧ 소설小雪 유감 - 임영준

 

걸맞지 않아서

사람 사는 세상인가

 

소설에 제대로 한번

눈가루 비친 적 있던가

들숨 크게 권한 적 있었나

 

그래도 사람들은 오가는데

기대하는 소식은 깜깜이고

음영만 짙게 깔린다

 

돌부리라도 차고 싶었는데

핑계가 생겼다  

 

 

 

♧ 햇볕 한 줌을 위하여 - 오창석

창밖으로 은근히 띄우는

시선 끝에는 늘

그리움이 서 있습니다.

 

소설 무렵,

가느다란 아침 햇발을 움켜쥐고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

 

있는 것 다 비우고

그저 홀쭉이 서 있는 초상

 

하지만 왜 이리도

넉넉하고 빛나 보이는지요.

 

“나무의 인생 같은 사람의 인생”

전라의 은행나무는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햇볕 한 줌 뿐인데

그렇게 얘기합니다.

 

따뜻한 사람의 나눔을 말합니다.

건네고 보태 주고 덮어 주고

그래도 남는 삶이 있다면,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노래 부르라고.

 

 

♧ 싸락눈 내리는 날 - 임수경

 

새벽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어제의 조각

동네 녀석들은 쌓이지도 않는 것들을

뭉치려 두손을 모두고 있는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펼치고

손위의 모든 온기를 거둬드리며

힘껏 장풍(掌風)을 흉내내 본다

살짝 피하며 손위로 착륙하는 조각 ; 방울

떠나버리면 이렇게 쉽게 녹아 없어지는 것일까

후 불어 날리지 못한다면

굳이 얼굴을 가리고 입을 가득 부풀어 올리며

찌뿌릴 필요가 없겠지

소설(小雪)의 날에 낯선 제비 울음소리가 시선을 당긴다

동변상련(同病相憐) ;

초가 지붕 처마 밑 미처 떠나지 못한 한 미련한 것이

이른 새끼를 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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