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에서 날아온
먼지도 말끔히 가셔버린 토요일
한라산 서남쪽에 자리한
우보악에 올랐습니다.
달력에는 대설(大雪)로
눈이 많이 오는 절기로 되어 있지만
한라산 정상만 희고
맑고 포근한 날이었습니다.
탁 트이고
포근한 풀밭이 있는
고향 뒷산 같이 나지막한 오름을
웅장한 한라산이 멀리서 지켜봅니다.
♧ 겨울 추억 - 배종대
겨울 햇살 받쳐 들고
옛 추억 안아본다
누덕누덕 기운 검정바지
구멍이 난
‘보생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 신고
담장아래 옹기종기 모여
연 날리던 아득한 날
얼어 터져 피가 나는
내 까만 손을
쇠죽 끓인 물로 씻겨주시던
늙어버린 누님 얼굴
지난날 들녘에서
갈 곳 찾다가 모여 있는
가랑잎을 태워 보아야지
타버리는
추억의 냄새를 맡으며
먼 하늘을 쳐다보아야지
겨울 속 봄 오기 전
언 손 호호 불며
어디 숨어버린 옛 추억 찾아-
♧ 겨울산 - 김윤자
그렇게 등이 휘신 줄 몰랐습니다.
거칠어진 잔등에
그렇게 골이 깊게 패이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봄 언덕 오르내리듯 마냥 좋아라
삼백 예순 날 질겅질겅
밟고 다닌 것 죄스럽습니다.
따스한 피가 흐르던 시절에
품안에 파고들던 산꿩도 산다람쥐도
제 둥지 틀어 떠나 가버린 동지섣달
서릿발같이 서걱이는 한숨만 스미는데
허연 달빛마저 은가마 타고 내려와
성긴 머리에 귀빈인 양
상석에 자리하시오면
초로의 설운 가슴, 어이하시란 말입니까.
가을이 으스러진 자리
다 찢긴 베적삼, 잠방이 구겨 깔으시고
등걸잠으로 누우시니
낙조에 걸린 산그늘이
허리를 휘휘 감아
쓰러져 굳어진 장승인 듯 보입니다.
매화 꽃송이 같은 노래 깔아드리면 일어나실까
언 입 옹알이며 종일 속삭여드려도
복숭아 속살 같은 옛 얘기 펼쳐드리면 웃으실까
언 손 내저으며 종일 재롱을 떨어도
쩍쩍 갈라진 살점 사이로 아픔만 토해내실 뿐
바위보다 무거운 표정 그대로이십니다.
♧ 또 다시 겨울이 오다 - 남민옥
떠나지 못한 잎새 하나
지난 계절의 추억처럼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스산한 마음 닮은 바람 한 점
허공에 집을 짓는다
푸드득 겨울새 한 마리 날아든다
새들의 안부를 묻는다
세상 모든 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움츠린 사람들의 모습
짧아진 햇빛도 위태롭다
꿈속에선 꽃들이 피고 지는데
첫서리 내린 뜨락에
꽃들의 그림자 짙다
겨울엔 존재하는 것 모두 메마른 소리를 낸다
너, 나, 우리 모두
따뜻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 중년의 겨울 - 최홍윤
한세상 살아오면서
가슴 아픈 일, 눈물 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든가
목숨을 깊은 흙 속에 묻어두고
바람의 입맛에 나부끼다
발가벗은 나목처럼
흔들리며 말없이 사는 거다
소리 없이 뜨거운 불길로
내 가슴을 태우던 빛 고운 단풍잎도
까칠하게 바삭이는데,
얼어붙은 겨울이라고
나무들처럼 올곧게 왜 못살겠는가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 겨울연가(戀歌) - 이혜정
침묵을 깨고
환한 웃음으로 달음질하던 햇살이
야윈 나뭇가지마다
긴 그림자로 남겨질 즈음엔
그 어떤 하루의 일상일지라도
커피한잔 나눌 수 있는 고즈넉한 풍경이 된다
가녀린 너의 손 끝
빗장 걸려 닫힌 생각 열어주고
가슴 설레게 뛰는 심장소리는
외로운 고독을 일깨우며
명치 끝 툭툭 치며 누군가 부르는 손짓은
수없이 당금질하던 그리움 꺼내는 손끝이 된다
어두움을 벗 삼아 누워버린 하루는
굽은 등 훑고 지나는 바람소리 되어
지난 가을이야기 흔드는 마른기침으로 찾아들고
남몰래 간직한 사랑이야기는
별빛에 걸어도 좋을 연가(戀歌)되어
그대 이름 부르고픈 길고 긴 기다림 되리라.
♧ 겨울의 길목에서 - (宵火)고은영
싸늘한 기후와 애환이 겹친
계절은 나보다 더 우울하네
뭉턱뭉턱 무너져 내리네
바람이 희롱 하는 대로 휩쓸리거나
아래로 하강하는 것들의 서러움
모든 인연은 눈물나게 야속하구나
속 끊이는 시간에도 계절은
겨울 행 열차를 타고 멈추거나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질주하는 암울
쨍쨍한 햇살이 비치든가 바람이 불던가
아무래도 가을은
그 뜨거웠던 사랑의 비음을 쏟아내는 소각장 같다
어쩌면 낙엽들은 눈을 감고
마지막 고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확 불을 당기면 형체도 남지 않고 타올라
사라질 것 같은 메마르고 미약한 숨소리로
지상을 덮고 있다
재가 되어 낱낱이 까발려 질 청춘의 연애 사가
이별로 가볍게 날아오를 이 가을의 정거장에는
젊은 애인들이 멀어져 갔고
늙은 애인도 은근한 아듀 속에 멀어지려 한다
저만치 아쉽게도 멀어져 가려 한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자수가 있는 겨울 풍경 (0) | 2013.12.19 |
---|---|
산책길에서 본 돌탑 (0) | 2013.12.09 |
우석헌집의 한시들 (0) | 2013.12.02 |
12월을 맞는 억새 (0) | 2013.12.01 |
늦가을 단풍을 만나다 (0)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