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에서 발간하는
‘강원작가’ 16호를 보내왔다.
‘흑백사진이 있는 글’의 ‘오베르 기행’
윤병주의 ‘특집 시’가 눈에 띄고
그밖에 회원 시, 장시, 회원 산문,
회원 소설, 회원 평론,
‘시비를 찾아서’ 등 다양하다.
그 중 시 몇 편을 골라
나무에 매달린 채 겨울을 나는
푸른 ‘일엽초’와 함께 올린다.
♧ 주문진 항구 - 윤병주
- k 아줌마
고단한 양식을 미행했던 배들이
지나온 미열을 붙들고 있다.
아침 햇살에 걸린 여자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뭔가 체한 듯,
바다와 그녀는 서로 끔찍이 닮아서 고단해 보인다.
매일같이 쌓이는 생선들의 산더미를 줄이는 사이
세월이 갔고 청춘이 금지되었다
어깨로 쌓이는 내항의 잔물결을 삭이는 사이
파도 너머 집어등*의 웅크린 시간 속에
그을려 왔다
잘게 썬 취기와 취기 사이
낯선 행인의 이야기 속에서
봄은 무시로 누군가의 소문이 되어 사라졌지만
조금도 줄지 않는 세월의 주름들
오늘 그녀가 또 몇 무리의 사연들 속에서
하루치의 고단한 양식을 좌판 위에 펼치고 있다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 전대 속의 은빛 무게를
낡은 지폐로 환산하며 저녁이 되어 가는 일몰의 어귀를
싸늘하게 뎁히고 있다
누군가 칠석의 밤이 가까운지
견우와 직녀를 한 잔의 술로 건네어주는 한 때
주문진 k아줌마, 오래 전 땅에 묻은 한 사내의
칠성판이라도 떠오른 듯
지상의 긴 한숨을 저녁노을 속에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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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등 :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밝히는 등불.
♧ 월광욕 - 고진하
늦여름 저녁 산밭에서 돌아와
등목을 하는데
달빛이 등을 쓱쓱 밀어주네
세상 물정 어두운
산밭에서 묻어온
도라지 꽃향 비누 삼아
속진(俗塵)의 때 쓱쓱 밀어버리네
쏟아지는
물의 소란
빛의 고요
휘묻이한 포즈로
네 발 짐승의 포즈로
소란과 고요에 온몸을 맡기네
♧ 환청 - 권혁소
딸에게 흙굽는 법을 알려준
동갑내기 화백 민중기 선생이 스러졌다는
딸애의 문자를 받은 날의 새벽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환청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했으나
지독하게 살지 못한 사람
퍼주는 것 좋아해
자기 것을 두지 않던 사람
끝내는 아내도 없던 사람
그가 빚은 주발에
나 아직 밥을 말고 술을 만다
벌떡,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무주로 가야겠다
♧ 가자미 - 김영희
지붕들이 낮은 가진항을 지나다
횟집 지붕 위 지느러미 말리는 가자미들을 본다
노조에서도 밀려난 계약직처럼, 수족관에서도 퇴출된,
횟감조차 될 수 없는 물 간 생.
낮은 지붕 위 납작 엎드려 옆 눈으로 하늘이나 흘기며
멀쩡한 해풍에 지느러미나 앙칼지게 세워본다.
♧ 바람도 체에 걸러져 들어가는 곳 - 박금란
초록집 개미방 이어 짓느라
껍질 안에서
햇살 받아 삼키며
해오라기 노래에 콩콩
살가슴 눈뜨고 태우던 망울들
말똥말똥 밤 숨결 낮 이야기
토끼귀 쫑긋 묶어 씨앗 하나 하나
열리네 싹들
땅에서 하늘까지 가 닿는 곳
문풍지로 받아낸 연두물
하늘붓끝으로 뚝뚝
무지개 꽃 피는 곳
싹 눈 뜨자마자 눈 떠 부시어
한 가운데 우러러 꽃들
골골 낭낭 차랑차랑
가슴이 다네 가밋가밋
한겁 두겁 아홉겁 목련송이 꽃칼에
하늘 열리고
그 먼 옛날 고르고 반듯했던
가르마길 따른
어미니때 지나면서 마른 피가
햇빛 닿아 꽃칼에 번져 물드는 곳
바람도 체에 걸러져 들어가는 곳
해 눈 뜬 곳 씨앗 하나에서
온누리 짝짝짝 아침으로 왔네
해 빗살로
온누리 밤을 쓸어내는 곳
♧ 물텀벙에 대하여 - 이상국
그전에 어물전 가면
꼼치나 아귀 같은 것들은 좌판 위에 못 앉고
땅 바닥에 엎드려 주인 눈치를 보았다
대가리가 몸의 절반은 차지하는데다
외모도 전혀 볼품없다 보니
어부들은 그들이 그물에 걸리면
꼴 보기 싫다고 바로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그때 텀벙 소리가 난다하여
물텀벙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어부들은 어딘가 낭만적이다
물텀벙 하면 어쩐지 허전하고
또 뭔가 도와주고도 싶지만
텀벙 텀벙 살아 돌아가며
그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지금은 그들도 다 귀한 몸이 되었지만
혹 우리가 어디서 만나더라도
그들의 과거에 대하여 아는 체 하지 말고
잘 안 들리게 별명이나 불러주자
물텀벙 물텀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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