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노루귀 꽃을 보며

김창집 2014. 2. 25. 08:17

 

지난 토요일은 대천이오름 입구에서

일요일은 대병악에서

솜털이 뽀얀 노루귀 꽃들을

무더기로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2월 마지막 주를 맞는 제주의 오름엔

온갖 봄 들꽃으로 즐겁다.

그러기에 이미 봄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 노루귀 - 김윤현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아,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 잊지 말아요 - 최원정

 

강물이 풀리고 나면

곧, 피어 날

얼음새꽃이나 노루귀를

남한산성 칠부능선 쯤에서

찾아보고 난 뒤

 

재너머 주막집에 들러

도토리묵과 파전을 안주로

좁쌀막걸리 한 동이 나누다보면

세상도 취하여

발치에서 흔들리겠지만

 

당신 곁에서

늘 함께 웃어 줄 사람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지금처럼 밖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갈피, 사이사이에도

따뜻한 햇살이 스며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 꽃이 피면 바람 분다 - 홍해리

 

꽃이 필 때 날씨가 따뜻한 것은

널 빨리 보고 싶은 내 마음 탓이고,

 

꽃 피면 어김없이 바람 부는 까닭은

산통으로 흘린 땀 식혀주려는 뜻이다.

 

꽃이 피고 나서 추워지는 것은

오래 곁에 있고 싶은 내 생각 때문이려니,

 

춥다고 탓하겠느냐,

바람 분다 욕하겠느냐.

   

 

♧ 도시의 밤 - 최진연

 

은하수 부서진 물방울 같은 아기별들이 내려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풀꽃들의 이마에

입 맞추는 밤

하늘땅보다 더 큰 이도 가장 작은 풀꽃이 되는

그래서 이 세상은 밤입니다.

바람이 잠들고

잠든 아기의 대지에 내리는 봄비 소리 또는

유리 바다 같은 하늘을 거니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별들이 환장하게 보고 싶은 날은

지심地心에서 끓어오르는 화산의 가슴으로

도시 밖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밤은 아픔입니다.

모든 등불들이 눈을 감으면

환하게 열리는 꿈속 같은 이 세상 어디선가

아기별들이 입 맞추는

노루귀 따위 작은 풀꽃들의 이마가 반짝이는

산천어들이 지느러미를 접고 잠든 소沼 같은 밤

밤낮 없이 흔들리는 쪽방들의 수잠과

까만 먼지가 내려앉는 둔덕 위의

잎싹들의 수잠, 속에 떠오르는

몽유병자처럼 빌딩의 숲을 종일 헤매다가

쓰러져 잠들어도 비닐 신문지 속으로 오그라드는 발

떠돌이들의 도시의 밤은 송곳 바람입니다.  

 

 

♧ 봄이 올 때면 - 강희창

 

봄이 올때면 그랬지

모두가 같은 주파수에 안테나를 뽑아

노루귀를 한채 미동에도 눈을 껌벅이지

알아 들을 수 있어, 나직한 바람소리 조차

강은 산가까이 산은 하늘 가까이 귀를 빌려주고

일찍 깨어난 숲이 후우 불어낸 입김 속에는

살짝 붓을 댄 듯 연초록 수런거림이 들려

 

봄이 올 때면 그랬지

일제히 내 몸의 촉수들 들고 일어나

가슴속 우체통을 열어놓고 기다렸어

한 때 내 몸을 사용했던 열락의 귀환 소식을,

벙글어 오르는 망울들 쓰다듬어 달래야 해

그쯤에서 얼었던 마음밭에 쟁기를 대야 해

한동안 만지작거렸던 꿈 씨앗들 끄집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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