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봄비가 내리더니
길가 양지녘에
개불알풀이 곱게 피어났다.
개불알풀은 현삼과에 속한 두해살이풀로
높이는 5~15cm쯤 되고
줄기에는 부드러운 잔털이 많이 나 있으며
밑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져 옆으로 자라거나 비스듬히 선다.
5~6월에 가는 꽃대 끝에 엷은 홍자색 꽃이 한 개씩 달린다.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제주 등지에 분포한다.
♧ 개불알풀 - 김승기
흉악망측하다고 손가락질 말게나
복주머니에 씨앗을 갈무리 하였느니라
짧게 사는 목숨이라고
한 때의 아름다운 시절 없었겠느냐
지금은 흉한 몰골로 서 있지만,
신록으로 빛나는 산천에서
보라빛 웃음이 꽃으로 피어오르던
젊은 때가 있었느니라
앨범 속에서 빛이 바랜
화려했던 세월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니라
청춘으로 지내는 시간보다
살아야 하는 삶이 긴 것뿐이니라
행복하게 외로운 몸이
그런 소릴 듣는다고 얼굴 찌푸리겠느냐
늙는다는 것,
누구나 맞을 운명인데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눈이 가여워
가슴 아파하는 것이니라
내일의 희망이 품 속에 들었는데
흉측스런 겉모습이야 아랑곳 있겠느냐
♧ 개불알풀 - 최정희(崔貞姬)
햇빛 눈부신 날 길을 가는데
톡!
누군가 우주 여는 소릴 내는 거야, 글쎄.
가만가만 다가가 들여다보자
지름 1cm 보랏빛 소우주가
쌍안경을 확 끌어당기는 거야, 글쎄.
넌 아무리 예뻐도
큰 꽃의 들러리다 했더니
쬐끄만 꽃으로 풀숲에 묻혀 살아도
오늘 하루도 당당히 남자로 산다며
불알 두 쪽을 척 내미는 거야, 글쎄.
♧ 개불알과 털요강 - 김내식
시골의 밭둑가에 피어있는
파아란 개불알풀꽃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나
어렵게 살아오신 할머니들은 다 아신다
내 자식이 귀하면 귀할수록
천박하게 불러주어
둥근 모습으로 존재하여
원만하기를 기대한다
백두대간의 외동 딸
복주머니란에게
털요강꽃이란 이름 지어
다산과 무병 기원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노란 개나리꽃 울타리 밑에
복실 강아지가 불알에 꽃 달고
혀 바닥 쏙 내밀고
뒹굴며 논다
♧ 개불알풀꽃 - 김종구
개불알풀꽃이 피었습니다
두런두런
모의하듯 피었습니다
금시에 무슨 일 낼 것 같습니다
가난한 겨울 집에 빌어먹고 살았다고
불경스럽게 개 불알이라니!
성질대로 만만찮게 피었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시펄시펄 피었습니다
조그만 입들이 모여 깍깍깍
제법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불알 두 쪽
대그락 대그락
이래 뵈두요
봄, 까치, 꽃이랍니다
♧ 과객(過客) - 서연정
가난한 자의 등처럼
늦봄토록 꺼지지 않는 철쭉 들판을 지나
승주읍 서평리 삼백 년 된 느티목 아래서
차를 기다려 보십시오
1번이나 100번 버스는 반시간 넘게 기다려야
덜컹이는 엔진 소리 먼저 고개를 돌아
달려올 테니 늙마의 나귀처럼 헐떡이며
서둘 것 없었어요 누가 쓸었는지 정갈한 골목
우거져 붉은보라 꽃담을 친 개불알풀 맘껏 바라보다가
마을의 공지사항 뜬금없이 듣게도 되었지요
주민 여러분, 구 김복돌 씨네 집에 이사온
젊은 부부가 어르신들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겠답니다
식사들 하지 마시고 구 김복돌 씨네 집으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국수를 삶았을까 찰밥을 쪘을까
거품 일듯 살림 일라고 수퍼타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은근히 한 잔 얻어먹고 싶어지대요
지나가던 길이면 어서 지나가자는 듯
때마침 택시 한 대가 문을 열지만 않았다면...
선암사에 가시렵니까?
무엇에 쫒겨 가는 듯
그리 가지 마십시오
당산나무 그늘 아래 의자가 있습니다
♧ 부작용 - 조말선
투병 중인 친구가 전화를 했다 주사 한 대에 부작용이 한 바닥이다 곧 입 안이 다 헐어버린대 친구의 느린 말들이 끊어질 듯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창 밖 벚나무 가지마다 꽃반점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저 환한 입 속도 헐겠지 헐어지고 문드러지겠지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얼마나 많은 무통의 웃음을 흘렸던가 친구는 늦기 전에 술을 사 달란다 저기 봐, 누가 지나가는지 땅바닥이 어질어질 간질을 앓는다 못 견디겠다고 아아아 민들레가 개불알풀이 점점 멀리 발악을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 예쁜 목젖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부작용은 작용을 안하는 거다 저기 저 독 오른 꽃반점들 좀 봐 곧 네 입 안이 다 헌다고? 헐린 자리마다 들어서는 새 집을 보게 된다고? 너 봄 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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