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입력할 원고를 넘겨주고 돌아오는 길
서사라 길을 넘어오는데
문득 목련이 떠올랐다.
3월이면
제일 먼저 벙그는 곳인데
사나흘 전에 피웠는 듯
이렇게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벽에 거의 맞닿아 있어
사진 찍기에 알맞지 않은 장소였지만
전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려
몇 컷 찍어다 놓고 보완하여
‘우리詩’ 3월호의 맛깔나는 시와 같이 올린다.
♧ 어떤 사람을 찾으세요? - 임보
1.
어떤 여자를 찾으세요?
물론 젊은 여자겠지요
얼굴이 예쁜 여자를 원하시나요?
몸매가 늘씬한 여자를 바라시나요?
얼굴도 얼굴 나름
눈이 맑은 여자
코가 오똑한 여자
귓불이 도톰한 여자
입술과 이가 고운 여자
이목구비가 다 반듯한 그런 여자는 없습니다
몸매도 몸매 나름
목이 긴 여자
가슴이 풍만한 여자
허리가 가는 여자
다리가 곧은 여자
팔등신의 체격을 지닌 그런 여자는 드믑니다
설령 얼굴과 몸매를 다 갖춘
그런 여자가 세상에 있다 칩시다
어디 당신 차례가 되도록
지금껏 무사히 남아 있겠습니까?
2.
어떤 남자를 찾으시나요?
물론 건강한 젊은 남자겠지요
몸이 좋은 남자를 원하세요?
능력이 있는 남자를 바라세요?
몸도 몸 나름
키가 큰 남자?
얼굴이 잘 생긴 남자?
허리가 강한 남자?
손발이 큰 남자?
육신이 다 잘 빠진 그런 남자는 드믑니다
능력도 능력 나름
돈을 잘 버는 남자?
권력을 거머쥔 남자?
학식이 대단한 남자?
명성이 자자한 남자?
모든 걸 다 가진 그런 남자는 없습니다
설령 늘씬한 몸매의 능력 있는 남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그의 아내로 받아준다면
많이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날부터 당신은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 도촌에서 - 정순영
작은 개천이
물소리 위에
함박눈이
내리는
도촌에
들어서
산바람
산새와
노닐다 보니
외진 산길
가로등 곁에서
세월이
졸고 있구나.
♧ 난 - 이무원
하늘이 눈을 뜰 때가 있다
모든 잡것들 다 쳐낸
빈자리
검은 이파리 몇 개
집을 지을 때다
♧ 봄 - 성숙옥
찬 새벽을 건너온 하늘이
아침 햇살 앞에 구름 보따리를 펼치니
꽃 이불, 안개구름이 부풀어 오른다
자투리 복수초는 균일 가로 밀어놓고
새로 받아온 개나리를 풍성하게 진열한다
꽃망울이 덜 터진 진달래꽃을 찾는 손님에게는
동백꽃 한 가지를 더 얹어준다
병아리들 앞으로 고물고물 몰려드는 방과 후 아이들
닭들이 깃털을 고르며 팔려온 사연 찍어내는 곳에
강아지들도 따뜻한 햇발을 감고 잠들어 있다
매화주 한잔 걸친 아지랑이가
흥에 겨워 덩실 거리는 곳
얼큰한 노을이 지평선을 지고 다가오면
떨이로 산 산수유 스카프 두른 햇살이 발길을 돌리는데
하늘도 다음 장터로 떠날 채비를 한다
♧ 고목 - 채영선
봄바람이 이네
어디든 가고 싶어
손이라도 흔들고 싶네
이슬비에 머리를 감고
나뭇잎마다 모래알 소리
쓰르라미 소리
가려운 등 긁어주는
바람이야
반겨줄 팔조차 없네
한 구덩이에
어깨마저 어긋맞기고
연이 깊어 미워할 수도
떠나갈 수도 없네
바람이 이네
따라가고 싶어
침만 꿀꺽 삼키고 있네
♧ 슬픔의 무게 - 박승류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 한다.
70kg의 몸, 고작 70,000g의 0.03%라니
영혼이 가진
슬픔의 무게는 더 보잘 것 없다
칠정(七情) 중에서 차지하게 되는 몫
공평하게 나누어도
보잘것없는 무게에 짓눌려
몸을 가누지 못한 눈물을 기억한다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무게에 가위눌리듯
조정 당하는 몸통으로
밥 먹고 똥 누고 섹스 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바꾸어 가질 몸이 떠나버렸다고
바꾸었던 몸통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3g의 무게를 가누지 못하면서
♧ 이제 오느냐 - 문태준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 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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