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목련과 '우리詩'의 시들

김창집 2014. 3. 7. 15:14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입력할 원고를 넘겨주고 돌아오는 길

 

서사라 길을 넘어오는데

문득 목련이 떠올랐다.

 

3월이면

제일 먼저 벙그는 곳인데

사나흘 전에 피웠는 듯

이렇게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벽에 거의 맞닿아 있어

사진 찍기에 알맞지 않은 장소였지만

전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려

몇 컷 찍어다 놓고 보완하여

‘우리詩’ 3월호의 맛깔나는 시와 같이 올린다.  

 

 

♧ 어떤 사람을 찾으세요? - 임보

 

   1.

 

어떤 여자를 찾으세요?

물론 젊은 여자겠지요

얼굴이 예쁜 여자를 원하시나요?

몸매가 늘씬한 여자를 바라시나요?

 

얼굴도 얼굴 나름

눈이 맑은 여자

코가 오똑한 여자

귓불이 도톰한 여자

입술과 이가 고운 여자

이목구비가 다 반듯한 그런 여자는 없습니다

 

몸매도 몸매 나름

목이 긴 여자

가슴이 풍만한 여자

허리가 가는 여자

다리가 곧은 여자

팔등신의 체격을 지닌 그런 여자는 드믑니다

 

설령 얼굴과 몸매를 다 갖춘

그런 여자가 세상에 있다 칩시다

어디 당신 차례가 되도록

지금껏 무사히 남아 있겠습니까?

 

   2.

 

어떤 남자를 찾으시나요?

물론 건강한 젊은 남자겠지요

몸이 좋은 남자를 원하세요?

능력이 있는 남자를 바라세요?

 

몸도 몸 나름

키가 큰 남자?

얼굴이 잘 생긴 남자?

허리가 강한 남자?

손발이 큰 남자?

육신이 다 잘 빠진 그런 남자는 드믑니다

 

능력도 능력 나름

돈을 잘 버는 남자?

권력을 거머쥔 남자?

학식이 대단한 남자?

명성이 자자한 남자?

모든 걸 다 가진 그런 남자는 없습니다

 

설령 늘씬한 몸매의 능력 있는 남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그의 아내로 받아준다면

많이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날부터 당신은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 도촌에서 - 정순영

 

작은 개천이

물소리 위에

 

함박눈이

내리는

 

도촌에

들어서

 

산바람

산새와

노닐다 보니

 

외진 산길

가로등 곁에서

세월이

졸고 있구나. 

 

 

♧ 난 - 이무원

 

하늘이 눈을 뜰 때가 있다

모든 잡것들 다 쳐낸

빈자리

검은 이파리 몇 개

집을 지을 때다

 

 

 

♧ 봄 - 성숙옥

 

찬 새벽을 건너온 하늘이

아침 햇살 앞에 구름 보따리를 펼치니

꽃 이불, 안개구름이 부풀어 오른다

자투리 복수초는 균일 가로 밀어놓고

새로 받아온 개나리를 풍성하게 진열한다

꽃망울이 덜 터진 진달래꽃을 찾는 손님에게는

동백꽃 한 가지를 더 얹어준다

병아리들 앞으로 고물고물 몰려드는 방과 후 아이들

닭들이 깃털을 고르며 팔려온 사연 찍어내는 곳에

강아지들도 따뜻한 햇발을 감고 잠들어 있다

매화주 한잔 걸친 아지랑이가

흥에 겨워 덩실 거리는 곳

얼큰한 노을이 지평선을 지고 다가오면

떨이로 산 산수유 스카프 두른 햇살이 발길을 돌리는데

하늘도 다음 장터로 떠날 채비를 한다 

 

 

♧ 고목 - 채영선

 

봄바람이 이네

어디든 가고 싶어

손이라도 흔들고 싶네

 

이슬비에 머리를 감고

나뭇잎마다 모래알 소리

쓰르라미 소리

 

가려운 등 긁어주는

바람이야

반겨줄 팔조차 없네

 

한 구덩이에

어깨마저 어긋맞기고

연이 깊어 미워할 수도

떠나갈 수도 없네

 

바람이 이네

따라가고 싶어

침만 꿀꺽 삼키고 있네

 

 

♧ 슬픔의 무게 - 박승류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 한다.

70kg의 몸, 고작 70,000g의 0.03%라니

영혼이 가진

슬픔의 무게는 더 보잘 것 없다

칠정(七情) 중에서 차지하게 되는 몫

공평하게 나누어도

 

보잘것없는 무게에 짓눌려

몸을 가누지 못한 눈물을 기억한다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무게에 가위눌리듯

조정 당하는 몸통으로

 

밥 먹고 똥 누고 섹스 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바꾸어 가질 몸이 떠나버렸다고

바꾸었던 몸통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3g의 무게를 가누지 못하면서 

 

 

♧ 이제 오느냐 - 문태준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 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 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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