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조 박사가 엮은 ‘제주말 큰사전’에 보면,
곶자왈은 ‘깊은 산골에 나무나 덩굴 따위가
마구 엉켜 있는 수풀’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는
곶자왈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
곶자왈은 화산이 터지고
점성이 높은(끈적끈적한) 용암이 흐르다가 굳어지면서
뒤에 흘러오는 용암에 밀려 깨어져 생긴 어수선한 공간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특히 가시덩굴류의 식물이 자라나
그렇다고 해서 자왈(가시덩굴 등이 엉켜 있는 것)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특이한 지형에서
색다른 식물이 자라나 독특한 환경을 이룬다.
지난 일요일 걸은 곶자왈 속은
온톤 백서향의 향기로 가득했다.
서향(瑞香)은 보통 중국쪽에서 들어와 화단이나 화분에 심고 홍자색 꽃이 피며
백서향(白瑞香)은 우리나라 제주도 지역이나 남해안에 자생하며 흰 꽃을 피우는데,
이 두 종류를 향기가 짙다고 천리향(千里香)이라 부르는 것이다.
♧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 공석진
당신은 봄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새벽안개 가라앉듯
미소가 꽃이슬 물고 나와
천리향보다 더욱 향그러운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보는
거울입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한쪽 구석에 애처로이
비켜서 있는 나의 자화상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이 아프면
내가 준 심장으로 인하여
더없이 고통스러워
까만 밤 하얗게 새우는
나의 분신인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의 미소가
때로는 슬프게 하고
당신의 눈물이
때로는 기쁘게 하는
그래서 더욱 행복한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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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 고재종
하늘의 정정한 것이 수면에 비친다. 네가 거기 흰구름
으로 환하다. 산제비가 찰랑, 수면을 깨뜨린다. 너는 내
쓸쓸한 지경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제 그렇게 너를 꿈꾸
겠다. 草露를 잊은 산봉우리로 서겠다. 미루나무가 길게
수면에 눕는다. 그건 내 기다림의 길이. 그 길이가 네게
닿을지 모르겠다. 꿩꿩 장닭꿩이 수면을 뒤흔든다. 너는
내 그리운 지경으로 다시 구불거린다. 나는 이제 너를 그
렇게 기다리겠다. 길은 외줄기, 飛潛 밖으로 멀어지듯 요
요하겠다. 나는 한가로이 거닌다. 방죽가를 거닌다. 거기
윤기 흐르는 까만 염소에게서 듣는다. 머리에 높은 뿔은
풀만 먹는 외골수의 단단함임을. 너는 하마 그렇게 드높
겠지. 日月 너머에서도 뿔은 뿔이듯 너를 향하여 단단하
겠다. 바람이 분다. 천리향 향기가 싱그럽다. 너는 그렇
게 향기부터 보내오리라. 하면 거기 굼뜬 황소마저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아득하겠다. 그 향
기 아득한 것으로 먼 곳을 보면, 삶에 대하여 무얼 더 바
래 부산해질까. 물결 잔잔해져 水心이 깊어진다. 나는 네
게로 자꾸 깊어진다.
♧ 헌화가 - 임동확
저 꽃을 내 기꺼이 그대에게 꺾어 바치리 미처 뒤돌아볼 새 없이 앞만 보고 과속해도 끝없이 추월당하는 잘못 든 생의 고속도로를 비웃듯 순식간에 늙음도, 흐르는 시간도 멈춰버린 수로여 어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거나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변명 삼아 맨주먹으로 땅바닥이나 내리치며 탄식하고 있으리 어찌 즐겨, 한때 내 비록 자랑스럽지는 않았으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청춘의 붉고 흰 추억의 꽃타래 한 묶음쯤 그대에게 엮어 바치지 않으리 귀신도, 물짐승도, 공중을 나는 수컷의 새 한 마리도 육향에 취해 그저 부끄럼도 잊은 채 앞다투어 발정하며 길을 막는데,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할 마로니에 공원 미끄럼틀 아래 매달린 쇠줄그네를 약속 장소로 택한 그대 위해, 내 어찌 꽉 쥔 생의 핸들을 놓치지 않으려 머뭇거리리
- 지금 불로 익힌 지상의 어떤 음식보다 달고 향기로운 제 몸 속의 훈향에 제가 먼저 감동해, 어딘론가 서둘러 닿으려는 모든 발길을 멈추게 하며 홀연 가는 곳마다 황홀한 천리향으로 타오르는 수로여 -
살아서 닿을 수 없는 저 그리움의 절벽을 발판 삼아 그 찬란하고 뜨거운 열반의 정화수에 내 아픈 한 몸 누이리 차라리 육탈해 멈추지 않는 노래의 향기로 둥글게 퍼져오는 그대 위해, 어찌 저 죽음의 파도 일렁거리는 천길 낭떠러지인들 마다하리
♧ 새 - 김정미
그 집에는 대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정원이 있다
정원과 맞붙은 베란다에는
한 뼘 간격의 가느다란 창살들이 쳐져 있고
공기 숲 나무 하늘 바람의 유혹을 막아줄
창문도 칸막이도 없다
창살 중앙의 고리에는 초록색을 칠한 작은 세상이 걸겨 있고
새장 안에는
갓 솟은 태양보다 맑은 손금빛의 노랑새가
자작나무로 만든 횃대에 올라앉아
여린 음성으로 지저귀며 눈망울을 반짝인다
숲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을 참나무 소리보다 요란하다
여기서의 정적은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와
바람이 투명한 몸짓으로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싱그런 풀잎을 반대편으로 쓸어 누일 때
견디다 못한 정원 귀퉁이 천리향이 바람을 쫓아
뛰쳐나가 아찔한 향기를 숲으로 풀어놓는 순간
가볍게 스쳐가는 하늘의 옷자락과
그들의 귀에만 들려오는 아득한 우주
지구 회전하는 소리
꽃들이 봉오리 틈 사이로 주름을 피며 화관을 만드는 소리
아침이 가라앉을 시각
정오의 우유빛 마취가 그 작은 두뇌 속에
차오르는 눈망울이 가라앉을 때
달려가던 바람이 하얀 풀잎을 세우며
돌아오는 그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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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메리카 - 강위덕
전체와 부분이 구비 치는 소리
미래가 시간의 벽을 넘는 소리다
겨우내 흙 이불 덮고 자던 새싹도 멋쟁이처럼
비스듬 모자를 쓰고 얼굴을 내밀 것이다
더 이상 겸손해 질수 없을 만치 고개를 숙이고
방금 얼굴을 내민 떡잎을 자세히 보니
더 할 나위 없이 위중해진 슬픔을 안고 있었던 듯
목구멍을 막고 있다
모자를 벗기자 윗입술 아랫입술 꽉 다문 틈새기의 저 힘이
마음같이 따뜻한 봄을 뿅긋 피워 올리고
햇살이 간지러운 듯 낙타 입처럼 오물오물 아지랑이를 씹고 있다
건넛집 나무에도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소녀의 방에 들어가는 아저씨처럼 따뜻한 입기운을 풍긴다
하늘 창문에 부서지는 빗소리,
강물에 흘러가는 물줄기소리
천리향 만 리 향 피워 올리며
숲 속에 수많은 길들이 발목을 휘어감을 것이다
지름길 찾아가는 삶의 전령들이 왁자지껄 봄을 역고 있다
아직도 송아지 죽은 귀신처럼 군데군데 얼음덩이가
겨울을 움켜잡고 있다
발톱이 아리다
얼음과 얼음사이 아지랑이가 바쁘다
봄 숲은 갈수록 키가 자랄것이고 강물은 넘실거리며 정오의 따스한 바람 살며시 밀어 올리면 예비된 시간이 다가와서 우리가 믿어 왔던 보다
그 소리
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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