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봄호의 시와 이팝나무

김창집 2014. 5. 2. 08:29

 

제주작가 봄호를 받고나서

바로 방송국에 녹음 다녀오는데

연북로 연동쪽 가운데 화단에 핀

이팝나무꽃이 눈을 의심하게 한다.

 

육지부에서는 흔한 나무지만

제주에는 그리 흔한 나무가 아니어서

누가 묘목을 구해다 그곳에다

이 나무들을 심어놓았는지 모르지만

 

옛날 늦은 봄 이 시기에

보릿고개를 넘기던 가난한 사람들의

눈을 환장하게 했을

하얀 쌀밥 덩어리.  

 

 

♧ 예감 - 김수열

 

출근길

허리가 잘린 어린 국화

박카스병에 담아 책상에 놓으니

보라색 향기 교무실에 그윽하다

 

오늘 하루

아이들이 착할 것 같다 

 

 

♧ 꿔다 놓은 보릿자루 - 양영길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넘느라 고생하면서 자란 내가

어느 날 내가 지어놓은 텃밭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나의 텃밭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 몰래 호박씨를 까더니

처치 곤란한 짐짝 취급을 하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세상사에 맡겨두고 움켜쥐려는

초라한 겨울나무처럼

비우지 못할 보릿자루

오리알은 어디까지 흘러가야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걸까

 

보릿자루는 꿔다 놓아야 하고

낙동강 오리알은 강물 따라 잘 흘러야 하고

저녁노을은 한 잔 술에 얼굴 붉혀야 하고 

 

 

♧ 칠흑 같은 밤 - 김광렬

 

그림자에게 저의 반을 내어주고도

저벅저벅

먼 길 걷는 반달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지금껏 나는

그의 반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동안 내 마음은 칠흑 같은 밤

 

이제야 꽃 한 아름 안고

붉게 물들어

너의 반이 되러 간다 

 

 

♧ 발견 - 김규중

 

오십 중반을 넘어

 

조금만 더가 아닌

조금만 덜

 

가장 어렵다 

 

 

♧ 법과 원칙 2 -김경훈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기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밥 잘 챙겨 먹고 산다

준법(遵法)은

법을 가진 이들에겐 아사(餓死)다

 

원칙은

따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깨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술 잘 얻어먹고 산다

정도(正道)는

규정을 가진 이들에겐 기아(飢餓)다

 

법과 원칙은

강제적 흡혈(吸血)의 창(槍)이다

전방위적 압살(壓殺)의 착유기(窄油機)이다

 

이래야 국가가 산다

이래야 국가가 굶어죽지 않는다

이것이 국가의 원래 개념이다 

 

 

♧ 채석장 - 김세홍

 

부리지 못한 말을 쪼개

낮은 소리를 모아

큰 소리를 만드는 기침이

 

한없는 낭하로 더듬어 내려가는 손이

캄캄한 등고선을 오르내리는

큰 말을 부리는 작은 소리들이

 

봉두난발 산야에

가슴속의 벙어리가

수화를 하는 기침이

 

해그림자에 갇혀

남아 있는 날을 채굴하여 연명하는

숨 한 덩이 쿨럭이는 여기 

 

 

♧ 정방폭포 - 김문택

 

곧게 뻗은 물줄기는

정갈하게 빗어 넘긴 생머리

 

열두 계곡

줄줄이 달고 와서

바다에 풀어놓은 노랫가락

 

끼륵끼륵

갈매기 한 소절씩 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