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하룻날 한라산엘 다녀왔다.
해마다 철쭉이 활짝 피는 5월에
오름나그네 선생님을 추모하는 행사인데,
올해는 철쭉이 늦게 피는 바람에
6월 초하루에 가서야 만났다.
사실 전에는 철쭉이 한꺼번에 왕창 피어나
5월에 철쭉제를 열고
꽃을 보러 모여들곤 했는데,
요즘은 이상난동이 있어서인지
시기를 맞추지 않아
제각각 피어나다 보니
옛날의 그 장관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보니, 철쭉은 져버린 것도 있고
이제 피어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핀 나무꽃은
붉은병꽃, 섬매발톱, 산개버찌, 마가목,
노린재나무 등이었고,
풀꽃은 설앵초를 비롯해
이 금강애기나리, 구름미나리아재비, 흰그늘용담,
민백미꽃, 민눈양지꽃, 세잎바람꽃 등이었다.
♧ 6월엔 - 임영준
싱그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채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분분히 늘어지는 햇살 속에서
바람만 헤아리고 있다는 것은 사치다
게다가 그대는 왜 손 놓고 멍하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으려고만 하는가
후련하게 들부셔 갈 소낙비를 기대하며
차분하게 챙기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맹목의 그리움을 떨쳐버릴 절호의 날들을
미리미리 펼쳐놓아야 하지 않겠나
♧ 쇼팽의 선율과 6월의 오르가슴 - (宵火)고은영
6월의 골을 거쳐 바람은 푸른 잎새 들을 아우른다네
오디오에서 들리는 쇼팽의 황홀한 선율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태양은 내 지붕 위에 그리고 미지의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수리에 작열하고
자연도 무형의 꿈을 꾸는 푸르름 만 깊어진 6월
세상은 하나같이 초록 물결이라네
한적한 오후의 가슴에 가만히 누워 고요를 즐기고
나는 내 방에서도 이름없는 작은 풀꽃들을 그려 보노 라네
스치는 바람결이 차가울수록 밑변 없이 젖어드는 선율
아, 비애를 다스리는 음표 들이여
견딜 수 없는 사랑들이여
최고조의 행복의 밀물 위에 맨발로 섰나니
공명하는 벅찬 감흥의 덩어리여
알몸으로 나를 벗어 던졌나니
올림포스 신전의 웅장함도
세상을 통치하던 제우스의 신전에
재물로 뛰놀던 성욕과 바람도
지금은 외로운 그루터기만 남아 시간을 연명하나니
감성으로 불거지는 몽환의 가지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 인적 없는 숲의 심장에
물푸레나무로 살랑이나니 엎딘 가슴으로 살랑이나니
뜨거운 입맞춤에 젖어 황홀한 선율 속에
6월의 오르가슴이 시방은 가슴에 가득 피어오른다네
♧ 6월의 詩 - 최홍윤
뻐꾹새는
하루 종일 산기슭에서 울고
내 그리움도 바람 같이
짙은 나뭇잎 사이로
선선히 불어옵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인지 알 길이 없지만
고단했던 회색 들녘도 눈부시고
이제는 허리 피고 살아갈
검푸른 유월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짙은 잎 새에 하얀 달빛 내리고
초저녁부터 소쩍새가 울어대면
내겐 새하얀 밤이 되고 맙니다
해마다
유월이오면 창가에 턱을 괴고
내가 잠 못 이루는 것은
당신 때문에 도진 상처가
때로는 그리움이 되어
내가 죽어야만
잊히기 때문입니다.
♧ 6월의 숲 - 최진연
썰물 진 개펄같이 이 도시가 적막하고
나 갯벌에 주저앉은 목선(木船) 같은 날은
송화 가루 날리는 숲으로나 가 봤으면.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햇살
능선이 넘실거리도록 쌓이는 골짝
지난겨울 솔새들의 언 울음 조각
떡살 무늬처럼 찍힌 발자국들
눈 속에 망개들이 익고 있던 골짝
첫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황토빛 송화 가루 날리는 숲,
내 집안 학기 아재나 처삼촌 김성년 씨
숱한 님들의 청춘 첫여름이 묻힌 골짝
철모와 탄창과 군화와 비명
살과 뼈가 썩어 거름이 되어
무성하게 우거진 6월의 숲,
그 날에 비길 데 없이 풍성한 식탁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짝이는 잎새들
그 위를 굴러다니는 꾀꼬리 노래 소리
그 속을 진혼곡처럼 흐르는 물도 보러
개펄에 주저앉은 목선 같은
나를 둥둥 띄워 줄 밀물 같은
송화 가루 날리는 숲으로나 가 봤으면.
활어들 떼죽음 부른 남해안 적조처럼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는 매연 구름에
속이 메스껍고 골머리 지끈거리는 날은.
♧ 6월의 풀밭 - 박진용
꼭 접어 마음 깊은 곳에 덮어 두고
잊혀진 옛 일이라 다짐 했는데
어느새 6월의 풀밭에 나를 눕히고
푸른 하늘에 그의 모습 그려준다
그리움
이제는 메마른 서러움
허공에 떠도는 민들레씨의 외로운 흔들림
그리움
아직도 빈 마음 설레임
바람에 날리는 쌍 나비의 못 다한 사랑유희
잊혀진 옛 일이라 다짐 또 다짐 하여도
6월의 풀밭에 남겨진 흔적
잊히지 않으려니, 잊지 못 하려니
다시 접어 두고, 내내 마음 앓으려니
♧ 6월 풀밭을 걷노라면 - 이향아
6월 풀밭을 걷노라면
예서 졔서 휘파람 소리가 난다
휘파람도 이겨 먹을 피리 소리가 난다
파, 파파
피피, 피
푸, 푸, 푸
6월 풀밭을 걷노라면 향기로운 말들
푸나물, 푸새질, 푸르고 푸른
풋사랑, 풋콩, 풋내 풋풋한
6월 소리들은 퍼런 물줄기
풀피리, 풀각시, 풀망태, 풀섶,
풀무질, 풀무치, 풀싸움까지
지난 밤 흘린 하나님의 눈물이
천지사방
‘푸’자 ‘풀’자 말씀에 내려
아직 먼 가을 무명밭까지
모두들 거기 가서 목화꽃이 피려는지
6월도 한복판 휘휘 둘러보면
챙챙 부서지는 놋쇠 징소리
너도 나도 잠기려고 야단들이다.
숫제 꽹과리가 되려는지 난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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