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라는 이름을 단 풀이
어디서 와서 이렇게
꽃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꽃괭이밥을 닮았다 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초’인지 몰랐듯이,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그 '사랑'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 사랑초꽃 - 이창숙
이 아침
연보라빛 어머니가 오셨네
가는 목을 가누고
미소로 앉아 계신 모습
흰 죽 한 숟갈 떠 넣고
몇 날을 더딘 걸음으로 오셨을 당신
살짝 화분 덮은 당신의 주름치마가 보입니다
늦은 겨울 당신을 앞세우고
찬 빗물로 흩뿌려 지워지는 길을
밤새 슬퍼하며 흘리던 눈물을
사랑초는 알고 있었을까
가끔 어둠 속에서 마주하면 내게
슬픔도 푸른 마디가 된다고
잎이 된다고
기다림의 환한 눈빛을 주더니
피고 또 피고 지고 또 피고
당신의 사랑이 이 봄 내내
그립고 눈물 난다는 것을...
이 아침 당신 앞에 오래
서 있습니다.
♧ 사랑초 - 강은령
나비 세 마리 얼굴을 맞 대고 있다
삼각관계가 아니다
주둥이 끝만 마주대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꽃의 마음을 학습 중이다
꺾어 바람에 날려 주기 전엔
날지 못하는 나비들이
밤이면 날개 접고서
마늘을 먹는다
해 뜨면 절로 꽃이련만
밤새워 꽃 되기 수련 중이다
꽃답기 위한 것이
저리 힘든 것이다
♧ 사랑초 - 우공 이문조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 했지요
사랑초 하나
심어놓고
애지중지 물 주고
관심 주고 사랑 주었더니
한 마리 나비처럼
하늘하늘
예쁜 잎 피웠어요
살갑기도 하군요
내 사랑이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기를
널 위한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 자줏빛 사랑초 - 권오범
조상이 일러준 매무새
삼각 등고선 따라
어긋남 없이 만난 세쌍둥이
사마귀마저 헷갈리게 태어나
야들야들하게 보낸
나비춤 한평생
같이 늙어 일그러졌을지언정
짧은 이승의 연
죽어도 놓을 수 없어
아슬아슬한 바늘 끝
꼭지점 입맞춤
이대로 영원히
♧ 사랑초 가족 - 유소례
물 한 모금 마시고
풋풋하게 허리 펴서 생글생글
뼈 없는 몸통 하나, 사랑표 얼굴 하나
창틀에 엉긴 바람, 숨 한번 마시고
불끈 철 들어
쭉 쭉 온 몸 진저리 친다
유리알 뚫고 들어온 햇살에
맘 뜨거워져
새치름 낮춘 아미, 사랑표가 청순하다
이제 막
흙을 들어 올린 부리,
놀라는 눈망울이 ‘아 - 꿈인가!’
갈매 빛 말을 한다
화분이 미어지도록
빈 공간을 메우는 우리 집 사랑초 가족.
♧ 비밀은 그림자를 남긴다 - 목필균
사랑초는 발도 없이
이곳저곳에 새끼를 친다
어느 새
이편저편 화분마다
말을 걸었는지
사랑초 잎새가
주인보다 먼저 고개를 내민다
화분마다 자줏빛 하트가
고개를 내민 베란다에는
숨겨놓은 비밀이 그림자를 남긴다
사랑이 뿌려지는데
흔적이 없을까
비밀이 밀봉되었던 자리에
그림자만으로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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