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31) 12시가 되어 날이 더 덥기 전에
공과금을 내고 온다고
집을 나서는데
지나가던 아가씨
휴대폰을 내놓고
하늘을 찍고 있다.
얼른 눈을 돌리니
모처럼만에 보는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둥둥 떠간다.
12호 태풍 나크리의 북상으로
하늘이 말갛게 씻긴 위로
저렇게 하얀 구름이 흐르는구나 싶어
얼른 집으로 돌아와
사진기를 집어들고 옥상에 올라
정신없이 찍어보았다.
♧ 흰구름 - 나태주
오, 너 참
오래도 거기 있었구나.
들판에 나가 구부려
풀을 뽑다 저린 허리
몸 일으켜 바라보아 줄 때까지
시장한 눈이 되어 바라보아 줄 때까지
나를 기다려.
구제 국립 공주사범학교
은행나무 줄지어 선 교문 앞길
이슬을 털며 등교하던
재잘재잘 초등학교 예비 여선생님들.
이름이 무어던가, 잊혀진
혀끝에 아물아물 난이, 숙이, 섭이,
남자 이름 같던 용이,
혹은 ‘헤르만 헷세’ 시집 속의
눈이 어글어글하던 ‘에리자베이트’.
그녀들의 깃 넓은 감색 교복만
빛나는 이마 하나로만 남아
오, 너 참
오래도 거기 기다려 있었구나.
나의 소녀, 흰구름아.
♧ 제주의 오름 - 박태강
끝없는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땅
맑고 푸른 하늘
금빛햇살
흰 구름 뭉개 뭉개 춤추고
물속에서 우뚝 솟은 산
너무나 청초하고 푸르르
평지 같은 오름에서
나무를 보면서
푸르름이 물결치는
오름에서 오름으로
여인의 젖가슴 마냥
흐르는 곡선이 너무나 아름다워
환상 속에서
하늘을 날고
바다를 타는
자연의 삶이 숨 쉬는 곳 제주
제주의 푸른 흐름이
물속에서 해가 솟아
물속으로 해가 지는
자연이 영글고 꽃피는 환상의 섬
♧ 바람 부는 날에는 - 전상훈
바람 부는 날에는
빨래이고 싶다
살수록 무거워지는
때 낀 마음자락
고즈넉한 강가에 한나절쯤 풀어 놓고
흰구름 흐르는 물에
가슴의 핏자욱 씻어내고 싶다.
바람 부는 날에는
너울이고 싶다
어둠에 붙박힌
욕망의 뿌리 향해 칼을 던지고
무념의 기슭으로 헤엄쳐 가서
별빛 먹고 자라는
이끼의 푸른 숨결 입맞추고 싶다.
바람 부는 날에는
눈발이고 싶다
이승의 거친 산맥
슬픔의 벼랑 끝에
떠돌다 쓰러져 잠들지라도
목숨과 맞바꿀 사랑 찾아서
훠어이 훠어이 떠나고 싶다.
♧ 숲이 타이르는 소리 - 이시연
―구암사 일기·5
물을 내려 바위를 씻고
바람을 데려와 잠든 가지를 깨운다
잔설을 이고 선 산의 가슴께
그렇지만
봄기운은 마른 가지 끝까지도
촉촉하게 입맞춤한다
햇살 한 줌 골짜기에 내려와
맑은 물 위에서 춤추고
산새들 무어라는지
얇은 구름 몇 송이 띄우고 노래한다
참 밝은 목청이다
어둡고 음습한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려 한
그리하여 번뇌망상의 덫에 갇힌
속마음이 부끄럽다.
씻어내라
놓아버려라
비워버려라
햇살 두른 바람이
산새들과 노니는 흰구름이
귀엣말로 간곡하게 타이른다.
♧ 푸른 하늘 - 김영환
그리움은 푸른 하늘 너머에 있다고
내가 없는 그곳에서 네가 말했지
얼마만큼 시간 흐른 후에야
사랑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나
나를 버린 시간의 大地 위에서
돌아갈 수 없는 이곳에 내가 서니
그곳에는 비 내리고
바람 불어온다고
이제나저제나
다 주고픈 나는 여기에 눕고
내가 없는 그곳에서 네가 말했지
흰구름 뒤에 이제서야 그리움 흘러간다고
♧ 제주에서(V) - 정영자
풀잎이 풀잎으로 만나는
제주도 넓은 벌판에
바람구멍 돌담따라
풋보리도 쓰러진다.
흰구름
푸른 하늘
따뜻한 오월 한 나절,
외로움으로 남아
검은 땅 종일을 적셔주는
바다 끝
하늘 아래
바라봄에 바라봄에
풀잎이 풀잎으로 만나는
바람구멍 돌담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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