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화북포구 ‘시가 있는 등대길’

김창집 2014. 9. 3. 00:10

 

월요일

화북에 촬영 나갔다가

여름철 같지 않은 바다와

탐라순력도 '화북성조(禾北城操)'에 나오는 그대로의 풍경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방파제로 나갔을 때

2010년 제주문화예술 기획사업인

공공미술사업의 하나로

‘시가 있는 등대길’을 꾸민 걸 보았다.

그것도 바닷물에 젖지도 녹슬지도 않게

타일에 새겨 구운 다음

그림과 함께 방파제에 붙여 놓았다.

 

바다 쪽으로든

한라산 쪽으로든

시원히 트여 분위기가 그만이다.

   

 

♧ 화북진(禾北鎭) - 김정(金人+政)

 

劃然長嘯立城頭(획연장소입성두)  획연히 길게 숨을 쉬어 성머리에 올라보니

萬里滄溟闊不流(만리창명활불류)  만리의 푸른 바다 넓어서 흐르지 않고

北望長安何處是(북망장안하처시)  북쪽으로 바라보면 서울은 어디쯤인지

天涯從古逐臣愁(천애종고축신수)  예부터 이곳은 귀양온 이 시름짓던 곳

   

 

♧ 화북진(禾北鎭) - 박성형(朴成珩)

 

吹送長風動去橈(취송장풍동거요)  느린 바람 불어오면 노 저어 떠나는 배

海程千里政迢迢(해정천리정초초)  천리 바닷길이 아득하기만

由來此地膓堪斷(유래차지장감단)  예부터 이곳은 애간장 끊는 곳

故使鎭名又別刀(고사진명우별도)  그래서 진 이름이 이별시키는 칼이란다

   

 

♧ 삼다도三多島 - 정인수

 

1. 서序

 

바람은

돌을 품고 입술 깨무는 비바리의

치마폭에서 울고,

 

돌멩이 바람 맞으며

비바릴 지키는데,

 

비바린 바람 마시며

돌처럼 버텨 산다.

 

 

2. 바람

 

바람이 파도 끝에

파아란

기어올라,

 

소라 속

뒤틀린 세상

비비틀어 올리다가,

 

얽어맨

노오란 띠지붕 감돌아

밀감잎에 스민다.

 

 

3. 돌멩이

 

포구浦口로 돌아와 보면

고향은 언제나 타향인데,

 

반기는

어정쩡한 표정들 있어

아아, 굽어보면,

 

맨발로 짓무르던 유년幼年

피어나는

미소微笑들…

 

 

4. 비바리

 

情일랑 돌틈에 묻고

돌아서면 시퍼런

작살,

 

쌍돛대

하늘을 박차

태양을 밀어붙이며

 

망사리 두툼한 무게만큼

부풀어 오르는

가슴.

   

 

♧ 수평선과 나 - 이용상

 

바다에 다 버렸다

수평선도 탕진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가져간 제주바다

 

삼백년 귀양의 세월

그 안이 다 보인다

  

 

♧ 친정 바다 5 - 문순자

 

한 사흘 술 취한 바다

다 받아준 어머니

새벽부터 콩밭 머리 빈속으로 앉아서

호미 끝 바람 붙들고

너울너울 하소하네

 

아버진 아버지대로

그냥 있지 못해서

대소쿠리 든 숭 만 숭

바닷가로 나가시네

갯바위 굼벗처럼 붙어

굼벗을 캐내시네

 

또 한 차례 전쟁이듯

데치고 딱지 떼고

한 사발 화해의 양념

듬뿍 얹은 굼벗 냉국

어머님 밥상머리에

슬그머니 밀어놓네.

  

 

♧ 화북 포구 - 홍성운

 

취한 듯 삐뚜름히 별도봉을 에둘렀다

난바다 소식이야 물결 타고 온다 해도

갈 볕에 쏟아 붇는다

화복 포구 오지랖에

때론 선적하고 싶은 제주 섬의 역사여!

연륙의 물길마저 순명이던 유배의 바다

그 한 끝 아직 못 놓네

오늘도 출선을 하네

   

 

♧ 포구 화북 - 유향幽香

 

또 한 해의 턱

시월이 빨리도 와서

마음 한쪽이 허전할 때

화북포구에 한 번 가 봐요

외롭다.

주문도 하기 전에

바다는 속살 몇 점과

소금에 절인 달 한 조각

들고 나오지

방파제에 앉아서

짭잘한 속살을 씹는 맛

속풀이에 제격이지

가끔 삶이 유배지 같아서

목 놓아 울고 싶을 때

등대가 눈 찔끔 감아주는 사이에

살짝 울다가 와 봐

옆에 있어주는 바다는

영락없는 그대라니까?

한치 잡이 배들이

수평선에 금줄을 치기 시작할 때

딱,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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