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오름 시와 누린내풀 꽃

김창집 2014. 8. 31. 17:35

 

지난주에 이어 두 주째 소분으로

오늘은 집안 벌초를 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동생 차를 타고 도착해보니

큰집 장손 동생이 먼저 와서 벌써 반 바퀴쯤 돌았다.

 

6대조 이하 할아버님부터 아버님, 어머님까지

줄을 지어 모셔 놓은 곳이다.

 

요즘 평장을 한다,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한다

여러 가지로 장묘문화가 바꿔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고집스레 그냥 한 군데 모셔 놓고

벌초를 한 다음에 묘제 지내는 셈치고

차례를 지내고 있다.

 

10시 50분에 꽤 넓은 묘역 안의 풀을 다 베고 치운 뒤

차례를 지내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음복하고

12시도 안 되었는데 귀가한다.

 

과거 교통이 불편하고 묘가 여러 군데 흩어져 있을 때는

벌초 한 차례 넘기기가 고역이더니,

한 군데 모아 가족 축제 개념으로 바꾸자고 하더니

이쯤이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름 시와

토요일 이승악 정상에서 찍은 누린내풀 사진을 같이 올린다.

   

 

△ 당산봉 - 김진숙

 

저물녘 산행에선

발소리 더 낮춰야한다

제 소리에 먼저 놀라는

날짐승 오래된 습성

풀숲의 장끼 두 마리

잠망경이 보인다.

절벽도 마다 않는다

들국 굳이 앉은 자리

바람이 잠시 멈춘

거북바위 서쪽을 향해

노을녘 확 피었다 지는

사랑이고 싶었다.

꿔겅꿔겅 꿩이 울 때

온 산 되레 울음이다

청춘의 화답 같은

저녁 은유로 남아

차귀도 삭은 외로움

메아리로 듣는 거다.

   

 

 오름 - 김정파

 

풍만이 출렁 출렁 둥 물려 웃는 하늘

포곡선 능선미 오름 파동 치는 초록함성

지평선 환장한 율동이 하늘 물고 달린다

성 난 꽃 봉에 멱살 잡힌 하늘도

끌려가는 발걸음이 오히려 빠르구나

당신의 손길로 빚던 그날까지 잊고서

사랑을 묶어 맺는 계절 환한 원앙에게

영산(靈山) 팔방의 눈이 점지(點指)하는 그 방향엔

수평선 둥근 평화가 오름처럼 피누나

   

 

△ 벌초를 하며 - 현상길

 

오늘만큼은

저 푸른 하늘 아래 무릎 꿇어

이 검은 땅 위에 머리 묻어

큰 소리로 울고 싶습니다.

 

날선 억새의 소매 끝으로

이 거친 들판 휘저으시는 당신은

손자들 눈물 부끄러워할까

뜨거운 땀 뿌려 감추어 주십니다.

 

옹근 바람의 손길로 스치며

저 거센 바다 휘감으시는 당신은

손녀들 마음 아파할까

한 줄기 소낙비로 쓰다듬어 주십니다.

 

이제 음덕으로 피우신

즈믄 해 나날이 평화에 몸 담그시고

못 다한 미움도 잊으시라

못 다한 사랑도 잊으시라

상석인 양 감옷 펼쳐 재배 드리옵니다.

 

오늘만큼은

질경이 닮은 세월 덮느라

엎어진 오름 반듯이 일으켜 세워

한 두레박 흰 파도 잔 가득 퍼 올려

당신께 올리고 또 올리옵니다.

 

다져진 봉분의 뼛속 깊이깊이

영주산도 취하고 또 취하시라

돌담 깨우는 무딘 낫질 박자 삼아

이어도까지 흐르고 퍼져 닿을

사무친 가락 섞어 뿌리옵니다.  

 

 

△ 오름 - 강덕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섬 둘레 돌아가며 이웃하여

봉긋이 터 하나씩 나누어 잡은

중산간 목 타는 비탈

울타리를 따로 두지 않아

네 것 내 것 다툴 게 없었고

남루한 살림이지만

먼 데서 찾아오면 대접할 줄 알았다

박토일망정 요부룩소부룩

질긴 뿌리 끌어안아 내통하는 사이

산을 낳고

바다를 길러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하필 모로 비껴 불었다. 불면서

늘상 노략질이었다

파헤치거나 걷어가는 데 열중이지만

그럴쑤는업따그럴쑤는업따

무자년 원혼은 안개비로 떠돌고

탯줄 사른 생존의 혈관을 묻어둔 터에

어깨 겯고 스크럼을 짜는

  

 

 노을녘 송악산을 오르다 - 이애자

 

올레길이 열리고 산은 올레가 되었다

산허리를 휘돌아 도사리고 있는 길

노을녘 허물을 벗는 산 그림자 속으로

산 아래 풍경들이 더 없이 평온하다

섬들은 수평선에 제 무게의 추를 달고

바다는 짝짓기를 위해 혼인색을 입었다

엎디어 등을 긁어달라는 시월 송악산

쑥부쟁이 욕창처럼 핀 등성이에 앉아

앉은 채 타버릴 것 같다, 핏빛 하늘 가을아!

엄마! 부르면 산은 엄마가 되었다

또 엄마! 부르면 엄마는 산이 되었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 우뚝하시다

   

 

△ 신(新)세한도 - 고영섭

 

  대정(大靜)향교 대성전 앞마당엔 소나무 한 그루가 겨울을 지키고 서 있었다 굽히되 꺾이지 않는 탄력이 붙은 늘푸른나무들, 마당 너머 섬돌 아래선 진사과 생원과 학동들의 기숙사 동재 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었다 수신 독행 박학 진심방에서는 공부자(孔夫子)의 후손들이 웅얼웅얼 몸을 닦았고 마루 아래서는 삽살개 한 마리가 또 그 소리를 웅얼웅얼 받아넘기고 있었다 구비구비 메아리를 넘겨받은 단산(簞山) 능선 위에서는 유배온 완당(阮堂) 김정희가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를 오락가락 넘나드는 정치판 철새들을 매운 회초리로 내려치며 세한도 한 폭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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