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연미 시집 - 바다 쪽으로 피는 꽃

김창집 2014. 10. 30. 00:19

 

김연미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이 나왔다.

 

김연미 시조시인은

서귀포 토산 출생으로

2009년 <연인> 등단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 수상

젊은시조문학회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

제주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조 몇 편을 골라

잠자리난초와 함께 올린다.

 

 

♧ 시인의 말

 

가을 초입에 와서야 뒷모습이 보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저 낯설음.

 

봄 여름 골라내도 자갈 가득한 밭입니다.

서툰 호미질도 때론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휘어진 생각을 딛고

가여운 풀씨 하나 부끄럽게 내밉니다.

 

-2014년 가을 초입에

   

 

♧ 마흔 살의 방정식

 

갈 데까지 가는 거야 원초적 미지수 찾아

제가 가진 양만큼씩 할 일 끝낸 이름들이

손 털며 돌아가버릴 맨 끝의 그 길까지

 

더하거나 빼거나 결국엔 똑같다는

나눈 만큼 곱절이 되는 삶의 공식들이

굳건히 참이라는 게 형제처럼 믿으며

 

마음을 주다보면 얼굴마저 닮아질 거야

몸 비비며 산다는 동류항 저들끼리

어느새 길도 같아져 보폭마저 같아져

 

먼 길 돌아 돌아 결국엔 제 속에 드는

홀로 남은 x의 값이 나와 마주 설 때

거기에 정답이 있을까 바다 되어 눕는 날

 

 

♧ 아주 작은 파장을 위하여

 

낡은 책갈피에 반듯한 클로버 한 잎

 

이십 년 터널 속을 말없이 건너와서

 

잊었던 행운의 시간 내 앞으로 내민다

 

어제 같은 오늘이 직선으로 흘러가는

 

일상의 작은 파장, 그 떨림으로 다가온

 

간절한 구절 하나를 두 손으로 받는다

 

   

 

♧ 동화 속으로

 

손가락 바늘로 찔러 핏방울 떨궈볼까

백설 공주 피부 같은 함박눈 내리는 밤

도심지 불면을 덮고 꿈이 가득 부푼다

 

접촉 불량 기억을 직렬로 연결하면

반짝반짝 켜지는 동화 속 이야기들

순백의 영혼을 가진 눈동자도 빛나고

 

지워진 그 발자국 어디쯤에 있을까

숲 속의 일곱 난쟁이 만날 것만 같은 밤

고화질 꿈을 켜들고 날개 다시 펼친다

   

 

♧ 자목련

 

벙글벙글 피었네

입꼬리 활짝 올리고

성공의 팔십 프로 눈치에 달렸다는

처세술 하얀 속살의 백목련이 빛날 때

 

1,2,3 순위 안에 들어본 적 없었다

시간의 뒤를 따라 우직하게 걸어가는

마흔 넷 뒤늦은 나이 연륜이라 믿으며

 

늦게라도 꼭 올 거야, 대기만성 꽃 피울 날

초저녁 끝나버린 꽃 잔치 그늘 건너

보라색 등불을 켜고

가만 가만

그가

왔다

   

 

♧ 노을

 

바람의 끝자락마다 하고픈 말 저리 많아

바다도 가끔은 꽃이 되고 싶은 거다

그리움 넘칠 때마다 접었다가 풀었다가

 

저 혼자 번지는 게 노을일까 상념일까

끝나지 않는 무한소수 그 길을 따라가다

갈림길 이르러서야 또 다른 나를 본다.

 

지나온 오르막엔 무엇을 두고 왔나

미련 잡힌 손바닥 선선히 펴지도 못해

사랑을 버릴까 말까 이 길이 너무 힘겨웠지

 

받은 만큼 내준다는 세월의 계산법 따라

저렇게 꽃 피우는 바다가 참 고마워

본색을 다 내주고서 노을 앞에 나와 선다

 

   

 

♧ 수평선을 지우다

 

오목렌즈 속으로 섶섬이 들어왔다

바다와 하늘조차 이분법 선을 긋는

자존심 꼿꼿이 세우며 등 돌리고 선 날

 

초보자 붓칠 같은 보목리 포구에 서면

도화지 어느 한 쪽 작은 섬이 되고 싶다

돌아온 하얀 꽃들을 다독이며 재우는

 

무너지고 나서야 다가설 수 있다 했지

이름과 이름 사이 수편선 지우고 나면

배경도 속셈도 없이 다가오는 작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