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미 시조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펼친다.
오종문 시인의 해설이
흥미롭다.
…처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하다.
그렇구나.
몇 편 옮겨
석류와 곁들여 본다.
♧ 등을 기대고
엄마 등에 제 등을 대고 책을 펴든 우리 아이
귀찮다 하면서도 가만히 힘을 빼면
오, 제법 무게 받드는 일곱 살 된 뼈마디
그래 그래 그렇게 언덕이 되어야지
살갗의 촉을 세워 등뼈를 더듬으면
7볼트 전류로 답하는 이 작은 떨림이여
산맥으로 자라거라 힘살 고루 배이도록
반듯하게 힘을 맞춘 아이 등과 내 등 사이
두 개의 심장 소리가 세 마치로 울린다
♧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어제
바람 불고
오늘
파도가 높다
수직의 허공을 날아간
꽃잎들은 어찌 되었을까
별도봉
벼랑에 걸린
백치 같은
들국 핀다
♧ 언니의 샘
토산 땅 노단새미 씻김굿이 걸판지던
은둔 끝난 지점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겨우내 빨래터 굿판 그칠 줄을 몰랐다
엇박자 방망이질에 파래지던 그 노래
한 섬쯤 눈물 흐르면 해원이 되는 걸까
젖은 옷 올올 사이로 얼음살이 박히던
흐르지 못할 거면 차라리 돌아가리라
한겨울 예각으로 날선 삶이 갈라질 때
산자락 뼛골을 딛고 울 언니가 저기 오네
♧ 관음사 고사목
갖가지 사연마다 내줄 것은 다 주었네
마지막 인연들이 이곳에 와 깃을 내리고
아버지 날숨이 저기 수묵화로 번지고
자식 위한 손끝마다 모지라지고 있었네
제 몸에 꽃 피우는 일 치매처럼 지우고
갈수록 단단해지는 간절함의 저 뼈들
뚝뚝 듣는 물소리 관음사 목탁소리
는개의 품안에서 저녁 산이 흐느낀다.
대웅전 지붕 저만치 까마귀도 우는데…
♧ 돌담 넘을 무렵
띄엄띄엄 생색내듯 이파리 두엇 내 놓고
배배꼬인 쪽으로만 기어이 방향을 틀던
콩 줄기
더듬이 끝이
돌담을 넘을 무렵,
황달 걸린 얼굴로 떡잎이 떨어진다.
콩 줄기 다 키워낸 육신의 빈 주머니
아버지
그렇게 우릴
키워놓고 가셨다.
♧ 동백꽃, 지다
시한부 날짜 받고도
입술화장 진했었지
떨어져 내린 마음까지
붉은, 붉은 꽃이다가
홑치마
끝자락부터
사그라지던
그 여자
♧ 겨울 연못
이상기온 탓이려니 눈물 거기 고인 것은
싸늘하던 그 해 여름 연 잎의 정수리마다
무심히 지나쳐버렸지 아득함이 깊었어
가리라. 그 많던 연(緣)들 하나하나 손을 놓고
빈 몸으로 돌아와 노숙에 드는 하늘
이 겨울 연못 언저리 사랑 두고 가리라.
입술을 깨문다고 침묵이 전해질까
고개를 숙인다고 마음마저 허락될까
갈라진 입술 축이며 바람 한 번 물 한 번
저항과 순종이 동의어로 마르는 계절
한 겨울 하가리 연못 철새처럼 그 곳에 가면
살얼음 사랑에 갇힌 침묵들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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