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연미의 시조와 석류

김창집 2014. 11. 1. 00:04

 

김연미 시조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펼친다.

 

오종문 시인의 해설이

흥미롭다.

 

…처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하다.

 

그렇구나.

몇 편 옮겨

석류와 곁들여 본다.

   

 

 

♧ 등을 기대고

 

엄마 등에 제 등을 대고 책을 펴든 우리 아이

 

귀찮다 하면서도 가만히 힘을 빼면

 

오, 제법 무게 받드는 일곱 살 된 뼈마디

 

그래 그래 그렇게 언덕이 되어야지

 

살갗의 촉을 세워 등뼈를 더듬으면

 

7볼트 전류로 답하는 이 작은 떨림이여

 

산맥으로 자라거라 힘살 고루 배이도록

 

반듯하게 힘을 맞춘 아이 등과 내 등 사이

 

두 개의 심장 소리가 세 마치로 울린다

   

 

♧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어제

바람 불고

오늘

파도가 높다

 

수직의 허공을 날아간

꽃잎들은 어찌 되었을까

 

별도봉

벼랑에 걸린

백치 같은

들국 핀다  

 

 

♧ 언니의 샘

 

토산 땅 노단새미 씻김굿이 걸판지던

은둔 끝난 지점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겨우내 빨래터 굿판 그칠 줄을 몰랐다

 

엇박자 방망이질에 파래지던 그 노래

한 섬쯤 눈물 흐르면 해원이 되는 걸까

젖은 옷 올올 사이로 얼음살이 박히던

 

흐르지 못할 거면 차라리 돌아가리라

한겨울 예각으로 날선 삶이 갈라질 때

산자락 뼛골을 딛고 울 언니가 저기 오네

   

 

♧ 관음사 고사목

 

갖가지 사연마다 내줄 것은 다 주었네

마지막 인연들이 이곳에 와 깃을 내리고

아버지 날숨이 저기 수묵화로 번지고

 

자식 위한 손끝마다 모지라지고 있었네

제 몸에 꽃 피우는 일 치매처럼 지우고

갈수록 단단해지는 간절함의 저 뼈들

 

뚝뚝 듣는 물소리 관음사 목탁소리

는개의 품안에서 저녁 산이 흐느낀다.

대웅전 지붕 저만치 까마귀도 우는데…

   

 

♧ 돌담 넘을 무렵

 

띄엄띄엄 생색내듯 이파리 두엇 내 놓고

배배꼬인 쪽으로만 기어이 방향을 틀던

콩 줄기

더듬이 끝이

돌담을 넘을 무렵,

 

황달 걸린 얼굴로 떡잎이 떨어진다.

콩 줄기 다 키워낸 육신의 빈 주머니

아버지

그렇게 우릴

키워놓고 가셨다.

   

 

♧ 동백꽃, 지다

 

시한부 날짜 받고도

입술화장 진했었지

 

떨어져 내린 마음까지

붉은, 붉은 꽃이다가

 

홑치마

끝자락부터

 

사그라지던

그 여자

   

 

♧ 겨울 연못

 

상기온 탓이려니 눈물 거기 고인 것은

싸늘하던 그 해 여름 연 잎의 정수리마다

무심히 지나쳐버렸지 아득함이 깊었어

 

리라. 그 많던 연(緣)들 하나하나 손을 놓고

빈 몸으로 돌아와 노숙에 드는 하늘

이 겨울 연못 언저리 사랑 두고 가리라.

 

입술을 깨문다고 침묵이 전해질까

고개를 숙인다고 마음마저 허락될까

갈라진 입술 축이며 바람 한 번 물 한 번

 

저항과 순종이 동의어로 마르는 계절

한 겨울 하가리 연못 철새처럼 그 곳에 가면

살얼음 사랑에 갇힌 침묵들이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