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작은 詩앗 채송화’와 매화

김창집 2015. 2. 6. 10:53

 

어제는 작은 실수로

두 번이나 방송국에 녹음하러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매화

꽃을 찍는 일도 시를 쓰는 일을 닮았다.

 

왁자지껄 피어 있는 꽃 중에

어느 가지를 택할까?

구도는 어떻게 잡지?

모양을 주로 할까?

그럼, 색감을 중시할까?

생각 같아서는 봄향기도 담고 싶다.

 

허나

길옆에 세운 차 때문에

다른 차들이 줄줄이 돌아가는 것이 신경 쓰이고

빨리 가서 시골에 강의 나갈 준비도 해야 할 판

서둘러 찍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래도 뭔가 올려야 하니

골라 내보내야 할 판….

 

며칠 전

'작은 詩앗 채송화' 제12호 '먼 산'의 소개와 함께

앞으로 詩 몇 편 내보냈는데,

다시 몇 편 골라 같이 올린다.

   

 

♧ 어미 - 복효근

 

청둥호박을 딴 지가 며칠인데

덩굴에 호막 매달렸던 자리

진물이 흐른다 아직도

허공에 젖물리고 있는

아, 어미라는 것

   

 

♧ 배꼽의 기원 - 오인태

 

경남 함안군 안의면 도림리 985번지

 

감꽃이

쫑긋, 피기도 하고

 

감꽃이

똑똑, 지기도 하던

 

임인년 사월 스무여드렛날 사시 경

   

 

♧ 배꼽 - 윤호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대웅전도 조사당도 요사체도 사라지고, 범종각 구리종도 자취없이 사라지고 돌탑만이 남았다. 쑥대밭 한가운데 비바람이 지어준 가사를 들쳐 입고 돌탑만이 홀로 남았다.

   

 

♧ 배꼽 - 이지엽

 

꽃 떨어져 나가고

열매도 떨어져 나가고

꽃밭침도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

겨울 흰 눈밭

무릎 꿇어

혼자 견디는 자리

   

 

♧ 꽃 - 함순례

 

지구별에 연착한 이들의 지독한 당혹감

아주 쓸쓸한 사랑의 꽃

   

 

♧ 죽기 좋은 장소 - 김길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따나 또라자

 

천 년 된 동굴묘지

헝클어진 바위틈

 

따우따우라 불리는 목각인형들

말간 얼굴로 두 손 내밀어

 

이국의 여자를 부르네

   

 

♧ 인연 - 나기철

 

  제주여자고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 팜플렛은 60페이지에서 광고가 50페이지인데, 각 기별 참여회원들 이름이 삼사십 명씩 주르르 나와 있다.

  아. 태양 같은 내 여자도 그 중 하나로구나.

   

 

♧ 연중 ‘봄’ - 나혜경

 

세어 봄, 앉아 봄,

알아 봄, 설명해 봄, 표현해 봄, 골라 봄, 시범해 봄

 

평가를 읽어보니

학생들은 사계절 ‘봄봄’을 실천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