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작은 실수로
두 번이나 방송국에 녹음하러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매화
꽃을 찍는 일도 시를 쓰는 일을 닮았다.
왁자지껄 피어 있는 꽃 중에
어느 가지를 택할까?
구도는 어떻게 잡지?
모양을 주로 할까?
그럼, 색감을 중시할까?
생각 같아서는 봄향기도 담고 싶다.
허나
길옆에 세운 차 때문에
다른 차들이 줄줄이 돌아가는 것이 신경 쓰이고
빨리 가서 시골에 강의 나갈 준비도 해야 할 판
서둘러 찍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래도 뭔가 올려야 하니
골라 내보내야 할 판….
며칠 전
'작은 詩앗 채송화' 제12호 '먼 산'의 소개와 함께
앞으로 詩 몇 편 내보냈는데,
다시 몇 편 골라 같이 올린다.
♧ 어미 - 복효근
청둥호박을 딴 지가 며칠인데
덩굴에 호막 매달렸던 자리
진물이 흐른다 아직도
허공에 젖물리고 있는
아, 어미라는 것
♧ 배꼽의 기원 - 오인태
경남 함안군 안의면 도림리 985번지
감꽃이
쫑긋, 피기도 하고
감꽃이
똑똑, 지기도 하던
임인년 사월 스무여드렛날 사시 경
♧ 배꼽 - 윤호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대웅전도 조사당도 요사체도 사라지고, 범종각 구리종도 자취없이 사라지고 돌탑만이 남았다. 쑥대밭 한가운데 비바람이 지어준 가사를 들쳐 입고 돌탑만이 홀로 남았다.
♧ 배꼽 - 이지엽
꽃 떨어져 나가고
열매도 떨어져 나가고
꽃밭침도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
겨울 흰 눈밭
무릎 꿇어
혼자 견디는 자리
♧ 꽃 - 함순례
지구별에 연착한 이들의 지독한 당혹감
아주 쓸쓸한 사랑의 꽃
♧ 죽기 좋은 장소 - 김길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따나 또라자
천 년 된 동굴묘지
헝클어진 바위틈
따우따우라 불리는 목각인형들
말간 얼굴로 두 손 내밀어
이국의 여자를 부르네
♧ 인연 - 나기철
제주여자고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 팜플렛은 60페이지에서 광고가 50페이지인데, 각 기별 참여회원들 이름이 삼사십 명씩 주르르 나와 있다.
아. 태양 같은 내 여자도 그 중 하나로구나.
♧ 연중 ‘봄’ - 나혜경
세어 봄, 앉아 봄,
알아 봄, 설명해 봄, 표현해 봄, 골라 봄, 시범해 봄
평가를 읽어보니
학생들은 사계절 ‘봄봄’을 실천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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