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송당리에 방송 촬영 갔다가
꿩메밀국수 해 먹는 집에
백서향이 만발하여
향기가 넘쳐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찍었다.
백서향(白瑞香)은 흔히 천리향으로 불리는 종으로
제주섬에 자생하는 팥꽃나무목과의 식물이다.
잎은 마주나고 털이 없으며 광택이 있다.
꽃은 이가화로 흰색으로 피며,
지난해의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남부지방 해변의 산기슭에 나는 상록관목인데,
제주도에서는 곶자왈 지대에서 흔하게 보이며,
제주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희숙
살아서 외로웠던 사람
더는 외롭지 말라고
선물처럼 두고 온 서향 한 그루에서
죽어서 더 그리운 사람들이
별꽃처럼 피었다는 소식이
안부처럼 들려
반가운 마음에
천 리를 걸어서도 만나고 싶은
이름들에 편지를 씁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오랜만의 안부가 마음에 걸려
정작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서향 꽃잎에 묻어둔 채
안녕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그곳도 봄인가요? 라고 고쳐 썼다. 지우고
살아서 외로웠던 사람에게 라고 써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성급하게 건져 올린 소식들을 띄웁니다
♧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 고재종
하늘의 정정한 것이 수면에 비친다. 네가 거기 흰구름
으로 환하다. 산제비가 찰랑, 수면을 깨뜨린다. 너는 내
쓸쓸한 지경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제 그렇게 너를 꿈꾸
겠다. 草露를 잊은 산봉우리로 서겠다. 미루나무가 길게
수면에 눕는다. 그건 내 기다림의 길이. 그 길이가 네게
닿을지 모르겠다. 꿩꿩 장닭꿩이 수면을 뒤흔든다. 너는
내 그리운 지경으로 다시 구불거린다. 나는 이제 너를 그
렇게 기다리겠다. 길은 외줄기, 飛潛비잠 밖으로 멀어지듯 요
요하겠다. 나는 한가로이 거닌다. 방죽가를 거닌다. 거기
윤기 흐르는 까만 염소에게서 듣는다. 머리에 높은 뿔은
풀만 먹는 외골수의 단단함임을. 너는 하마 그렇게 드높
겠지. 日月 너머에서도 뿔은 뿔이듯 너를 향하여 단단하
겠다. 바람이 분다. 천리향 향기가 싱그럽다. 너는 그렇
게 향기부터 보내오리라. 하면 거기 굼뜬 황소마저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아득하겠다. 그 향
기 아득한 것으로 먼 곳을 보면, 삶에 대하여 무얼 더 바
래 부산해질까. 물결 잔잔해져 水心이 깊어진다. 나는 네
게로 자꾸 깊어진다.
♧ 헌화가 - 임동확
저 꽃을 내 기꺼이 그대에게 꺾어 바치리 미처 뒤돌아볼 새 없이 앞만 보고 과속해도 끝없이 추월당하는 잘못 든 생의 고속도로를 비웃듯 순식간에 늙음도, 흐르는 시간도 멈춰버린 수로여 어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거나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변명 삼아 맨주먹으로 땅바닥이나 내리치며 탄식하고 있으리 어찌 즐겨, 한때 내 비록 자랑스럽지는 않았으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청춘의 붉고 흰 추억의 꽃타래 한 묶음쯤 그대에게 엮어 바치지 않으리 귀신도, 물짐승도, 공중을 나는 수컷의 새 한 마리도 육향에 취해 그저 부끄럼도 잊은 채 앞다투어 발정하며 길을 막는데,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할 마로니에 공원 미끄럼틀 아래 매달린 쇠줄그네를 약속 장소로 택한 그대 위해, 내 어찌 꽉 쥔 생의 핸들을 놓치지 않으려 머뭇거리리
- 지금 불로 익힌 지상의 어떤 음식보다 달고 향기로운 제 몸 속의 훈향에 제가 먼저 감동해, 어딘론가 서둘러 닿으려는 모든 발길을 멈추게 하며 홀연 가는 곳마다 황홀한 천리향으로 타오르는 수로여 -
살아서 닿을 수 없는 저 그리움의 절벽을 발판 삼아 그 찬란하고 뜨거운 열반의 정화수에 내 아픈 한 몸 누이리 차라리 육탈해 멈추지 않는 노래의 향기로 둥글게 퍼져오는 그대 위해, 어찌 저 죽음의 파도 일렁거리는 천길 낭떠러지인들 마다하리
♧ 서향瑞香 - 박상천
어스름 저녁 무렵
어느 정원에서 무심코 만난
서향이라는 나무 이름 팻말이
문득 내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슬픔을 휘저어놓았다.
잊고 지냈던 그 이름,
서향이라는 이름 하나가
지나간 시간들을 휘돌아 오며
다시 슬픔의 흙탕물을 일으켰다.
뜨락에 꽃들이 피었다 지는 것이 괜시리 안타까와 아버지와 둘이서 올봄에는 주고받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나와놓고 보니 실재만큼 이쁘지는 않은데도 보지 못했던 너희들에게 보이고 싶어진다.
저 꽃들을 몇 해나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인데 듣고 있는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니 역시 나이탓인가 부다.
일년 내내 꽃이 피게 하고 싶어 재작년에 넝쿨장미를 심었는데 그것이 지금 담을 타고 가며 한창 맺고 피고 한다. 진홍색이 얼마나 이쁜지… 금년 봄에는 서향을 제법 큰 것을 사다 심었다. 내년 이른 봄에 좋은 냄새를 풍길 것이고 가을에는 금목서가 노랗게 피며 향내를 보낼 것이고 겨울 들면서는 산다화가 필 것이다. 꽃이 피고 질 때마다 멀리 있는 너희들 생각이 나는구나.
왜 그때는 편지에 씌어진
어머니의 그리움을 읽을 줄 몰랐을까
뜨락에 꽃이 피고 질 때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
내년 봄에는
좋아하시던 서향나무 한 그루 묘소 곁에 심어드리면
어머니의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질까
서향이라는 이름이 일으킨
이 슬픔의 흙탕물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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