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루귀 - 김윤현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아,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 노루귀 - 김승기
출퇴근 길
버스 정류장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화분으로 올려져 창가에 놓인
노루귀 두 쌍이
매양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하, 그렇구나
너를 위해 있어야 할
반 평의 땅이나마 가지지 못했어도
이렇게 가까이 둘 수 있는 것을
그 동안 내 곁에 두려고
오랜 시간 무던히도 꽃밭을 만들며
먼 산 바라보기만 하였구나
그냥 두어라
봄이 와서 눈이 녹는데
어디서 누가 눈이 녹아야 봄이 온다고 하더냐
눈 속에서 얼음 뚫고 피워내는 꽃
사람의 손길이 어찌 자연만 하겠느냐
가슴에는 언제나 그리움 키워 두고
가끔씩 너를 찾아 내가 가면 되지
오늘도 커다란 꽃밭을 만들며
행복한 외로움으로
너를 생각한다
♧ 가슴에 머무는 소리 - 김종익
생강나무 아래 노루귀꽃 피는 소리
쑥 냉이 언 땅 비벼 솟아나오는 소리
쥐똥나무 잎 눈뜨려 옹아리하는 소리
쇠똥구리 지구를 굴리는 소리
침묵한 채 잠든 밤의 코고는 소리
여우비 지나간 후
계곡에 쌍무지개 걸리는 소리
작은 햇살 퍼가려고
떡갈나무 은사시나무 잎사귀
달그락거리며 다투는 소리
순이 고운 모습에 반해서
내 가슴 퉁탕거리는 소리
그녀의 깊은 눈 속에 빠져
눈물 먹으며 허우적대는 소리
♧ 봄 - 남경식
매화 산수유 버들강아지 냉이 진달래
개나리 목련 노루귀 벚꽃
봄봄봄
봄이 핀다
숨 가쁘게
그리고 봄날은 간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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