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아기노루귀 솜털에

김창집 2015. 3. 5. 00:29

 

♧ 노루귀 - 김윤현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아,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 노루귀 - 김승기

 

출퇴근 길

버스 정류장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화분으로 올려져 창가에 놓인

노루귀 두 쌍이

매양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하, 그렇구나

너를 위해 있어야 할

반 평의 땅이나마 가지지 못했어도

이렇게 가까이 둘 수 있는 것을

그 동안 내 곁에 두려고

오랜 시간 무던히도 꽃밭을 만들며

먼 산 바라보기만 하였구나

 

그냥 두어라

봄이 와서 눈이 녹는데

어디서 누가 눈이 녹아야 봄이 온다고 하더냐

눈 속에서 얼음 뚫고 피워내는 꽃

사람의 손길이 어찌 자연만 하겠느냐

가슴에는 언제나 그리움 키워 두고

가끔씩 너를 찾아 내가 가면 되지

 

오늘도 커다란 꽃밭을 만들며

행복한 외로움으로

너를 생각한다

 

 

 

♧ 가슴에 머무는 소리 - 김종익

 

생강나무 아래 노루귀꽃 피는 소리

쑥 냉이 언 땅 비벼 솟아나오는 소리

쥐똥나무 잎 눈뜨려 옹아리하는 소리

쇠똥구리 지구를 굴리는 소리

 

침묵한 채 잠든 밤의 코고는 소리

여우비 지나간 후

계곡에 쌍무지개 걸리는 소리

 

작은 햇살 퍼가려고

떡갈나무 은사시나무 잎사귀

달그락거리며 다투는 소리

 

순이 고운 모습에 반해서

내 가슴 퉁탕거리는 소리

그녀의 깊은 눈 속에 빠져

눈물 먹으며 허우적대는 소리

   

 

♧ 봄 - 남경식

 

매화 산수유 버들강아지 냉이 진달래

개나리 목련 노루귀 벚꽃

봄봄봄

봄이 핀다

숨 가쁘게

그리고 봄날은 간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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