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벌노랑이 피어날 때

김창집 2015. 3. 10. 23:03

 

♧ 벌노랑이 - 김윤현

 

벌노랑이 앞에 다가섰다고

벌노랑이를 보았다 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피는 꽃 중에서 하나일 뿐이라며

다소곳하게 피어나는 겸손을

벌노랑이에서 읽어내지 못하면

벌노랑이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곁에 있는 여러 꽃들과 어울려

환한 미소를 주고도 기뻐하는 마음을

벌노랑이에서 느끼지 못하면

벌노랑이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꽃이 꽃에게 건네는 사랑은

그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벌노랑이는 노란 입김으로 말하는 것 같다

벌노랑이는 자신의 입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어딘가에 있음을 느껴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내 마음에도 벌노랑이 한 포기 심어두고 싶다

 

 

 

♧ 벌노랑이 - 김승기

 

헉, 숨이 막힌다

 

가슴 벌렁벌렁

아찔한 현기증

팔다리 아픈 줄 모르고

주저앉고 말았네

 

폭폭 쏟아지는 햇살 안고

갑자기 내 안으로 날아 들어온

노랑나비 한 마리

 

꽃불로 앉아

온몸 황홀히 불태우고

노오랗게 물드는 하늘

 

우주를 뒤흔들어 놓을 줄이야

   

 

♧ 노랑꽃밭의 레퀴엠 2 - 강은령

 

꼭히 누구로 인한 외로움이 아니더라도

생(生)은 엉겅퀴,보라색 눈물 한 방울

스무 해를 넘어 간 삶의 대궁은

향기로운 화관(花冠) 한 번 이지 못하고

가시 잎사귀는 질곡으로 빼곡히 둘러 있었다

태양의 갈기같은 머리를 흔들며

짙은 눈썹 아래 깊었던 다정한 눈동자

봄 볕 아롱거리는 노랑 꽃잎의 투명함이여

음습한 자조의 붉은 등 아래서 너, 청춘은

그렇게 무너져 갔느냐 쓸쓸한 얼굴을 하고서

상기된 얼굴로 나의 집 어귀에 서있곤 했다지

그 교회의 문에서 다시 너를 맞을 수만 있다면

너의 제비꽃이 되어 줄 수도 있을텐데

해가 뜨는 뱃전을 훌쩍 날아서

바다로 가는 문고리를 젖혔다고 했다

손이 닿지 않은 부르는 소리도 마다하고

이 세상의 신을 신은 채로 동아줄도 거부한 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인연이여

너의 작은 꽃이 되어 주었다면

금빛 모래 들여다 보이는 맑은 초록 물에서

동동 떠다니는 너 노랑 꽃잎이 되었을까

물풀로 감기는 이, 나의 비가(悲歌)여

굳이 너로 인함이 아니라도 핑게할 일 많은

인생의 격랑 속에서 나는 네가 그립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 봄날 우리 슬픔은 - 권도중

 

꽃 피는 슬픔,

천지 가득 꽃비 내리면

봄날 우리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

그립고 안타깝던 올해의 생각도 대지에 지고

 

지고 난 자리 씻기는

저 만리의 위안에

가지마다 돋을 푸른 일상을 가자

천지가 품었다 묻어 둔 그대, 슬픔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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