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내다가
가끔 산에나 가는 형편이어서
자주 보이는 매화만 핀 줄 알았다가,
어제는 동네를 지나다닐 일이 있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걸 보니,
바로 이 목련이었다.
어제 오후 날씨가 조금 흐려
사진이 밝진 못하지만,
어렵게 핀 꽃이
아침 비에 떨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 백목련白木蓮 - 홍해리
아침마다 계단을 오르면서
목련과 키를 재보면
하늘 가까이서 오는 여자들
짧은 봄밤을 아쉬워하고 있다
밤새도록 달빛에 바래이기는
옥양목 한 필이 오히려 서러워
발돋움하며 다가서는 이마
하얀 울음이 구슬로 맺혀 있다
겨드랑이 허리 가슴 이랑에
깨어진 달빛이 모여
한밤중 맑던 잠을 데불고 사라지느니
만남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신랑의 부신 행차를 맞는
서늘한 무한 고요속
목욕재계한 여인의 덧없음이여
그녀의 울음이 귀에 젖어
꽃봉오리 한 치는 부풀리나니
밤이면 날개를 퍼덕이다
날지 못한 날개를 지상에 떨구고
소복을 한 여인의 허공이 지고 있다.
♧ 목련 꽃 너머 달이 피는 밤 - 이남일
목련 꽃 너머 달이 피는 밤
도시의 섬은 외롭다.
한 가닥 가래떡보다
밤새 뽑기 어려운 시 한 줄은
아무도 듣지 않는 사월의 노래
산 벚꽃 터지는 소리에
달빛은 꽃잎에 속절없이 눕는다.
그렇다고 꿈마저 외로우랴.
못 견디게 목이 마를 때
발길에 자유로운 바람 따라 떠난다.
가는 곳 묻지 않고
길 없는 길 따라 간다.
♧ 목련화 - 조철형
바람을 안고 살던 거친 날
전신마다 시리운 네 설움은
그리운 남녘의 바람을 기다리며
많이도 아팠구나
바람의 심장에서
혈관 구석구석 요동치던 뜨거운 너의 피가
하늘로 치솟는 날
화려하게 아주 화려하게 너는 춤출 때가 되었다
봄
춤추는 하얀 날들은
오롯이 네가 죽도록 그립던 세상이다
꽃 피면 가여운 날 다가오더라도
가녀린 너의 목이 떨어져도 울지 말고 가야 한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뜨거운 너의 피가
거리를 하얗게 적시온 날
바람의 가슴에서 용틀임하던 그리운 너의 사랑도
뜨겁게 뜨겁게 하늘로 치솟아 오를 테니까.
♧ 목련꽃 - 김귀녀
지난해 가지치기한
목련을 보았네
목련 봉긋한 가슴들이
망울망울 맺히고 있었네
홀로 힘겹게
홀로 피었네
텅 빈 가지에서
아픔이 하얗게 피는 줄
모르고 있었네
고개를 떨구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네
봄이 이렇게
아프게 오고 있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내 모습 부끄러워
땅만 보았네
♧ 하얀 목련, 그토록 그리웠던 해후(邂逅) - (宵火)고은영
세상은 각박했고 잔인했다
꽁꽁 언 계절의 심연에서 겨울은
심화된 삶에 슬픔으로 출렁였다
더러 추운 가슴 위로 지나는 바람을 보며
덧댄 가난 속에도 눈물을 떨구던 나는
몇 방울의 눈물에 어른거리던
너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기다림은 한없이 길었고
애타는 그리움에 몸살을 앓았다
순수한 빛의 서막과 함께
꿈꾸던 나의 애창(愛唱)을 열고
이만 때 즈음이면 실종된 의식을 일으켜
나에게 와 줄 너와의 해후를 그리워했던 만큼
진실하고 유일한 모습으로
네가 하루속히 나에게 당도하기를
현재가 과거로 흘러가는 동시성 속에
너 나에게 왔는가
그 길고 지루했던 어둠과
산발한 바람의 통로를 거쳐 지금
햇살이 찬란한 이 광장에서 나는 너를 만난다
눈부신 얼굴의 수줍음, 황홀하도록 순결한 미소
나는 이 세기가 가기 전 사라질 운명이어도
너는 몇 천년인들 건너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이 시린 생애서
수십 번 세상의 바뀌어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품에 안긴 너의 충만한 사랑이
이토록 환한 미소로 내 영혼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하다니
♧ 목련 2 - 권도중
생각의 끝은 봄바람 같은 염원으로
소망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한 겹의 연한 몸짓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몇 겨울 오고 간 자리, 남아 있는 늦은 계절
구름은 쌓여서 망울이 되고
먼 하늘 어디에선가 살아서 운다
네 생각은 아직 더 찬바람 속에서
슬픔 같은 세월 더 기다려야 온다고
목련은 참아온 터트림으로 그렇게 핀다
♧ 목련을 사랑하다 - 김하인
몸 없이 마음으로만 깨끗하게 사랑했습니다. 마음 뒤에 몸 사랑해야 하는 순서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사랑하므로 추해지느니 정갈하게 생명 놓아버렸습니다.
그렇듯이,
목련은 잎 없이 꽃부터 먼저 새하얗게 피어납니다. 잎 피어나기 전에 미련없이 꽃 떨어집니다. 잎과 함께 동거하느니 순결로 가차 없이 아름다움 죽여버렸습니다.
♧ 목련나무 - 도종환
그가 나무에 기대앉아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뜰의 목련나무들이
세차게 이파리를 흔들고 있나 보다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
살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사랑이었다
그를 만났을 땐 불꽃 위에서건 얼음 위에서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숯불 같은 살 위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고
시냇물이 강물을 따라가듯
함께 섞여 흘러가지도 못했다
순한 짐승처럼 어울리어 숲이 시키는 대로
벌판이 시키는 대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사랑이 가자는 대로 가지 못하였다
늘 고통스러운 마음뿐
어두운 하늘과 새벽 별빛 사이를 헤매는 마음뿐
고개를 들면 다시 문 앞에 와 서 있곤 했다
그가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목련나무잎이 내 곁에 와 몸부림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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