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춘분에 만난 솜나물꽃

김창집 2015. 3. 21. 23:27

 

 

어제 춘분 날

거슨세미와 체오름에 가서 본 꽃들.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복수초,

현호색, 남산제비, 개구리발톱풀,

오랜만에 솜나물을 제법 많이 보았다.

 

잘 아시다시피 현호색과 복수초, 산자고는

떼를 이루어 자생하는 것들이어서

엄청나게 많이 접했고,

오랜만에 솜나물꽃은 양지 바른 곳에서만

실컷 조우할 수 있었다.

   

 

♧ 춘분(242) - 손정모

 

아무래도 그건

기나긴 여정이었어라

추위로 멍울진 상처엔

호수를 지나

강, 밤새워 건너던

새떼들의 함성이 얼룩지고

식물의 물관부를 거쳐

끝없이 치솟던 물기마저

화석의 색채로 침묵하다가

마침내 밤낮의 길이

합일점에 이르러

살며시 홍조를 띠는

오늘을 본다.

 

 

♧ 봄이 오는 소리 - 박인걸

 

찬바람 사이로 비친 햇살이

물오른 가지를 쬐일 때

움츠린 진달래 꽃 봉오리에서

실핏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발이 더러 날리는

춘분으로 가는 길목에

뒤뜰 감나무 가지서

되새 한 쌍이 짝짓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묵은 낙엽더미를 헤집고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맑은 얼굴을 내민다.

 

봄은 이렇게

가녀린 소리로 오지만

생명들의 찬가는

곧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 꽃샘추위 - 동호 조남명

 

때 되면 어김없이

내미는 꽃망울

땅 밑 속살 올린 어린 싹

 

춘분 지나 청명이건만

추위는 철모른 채

어찌 새봄을 시샘하는가

 

암토暗土에서 솟아오르는

여린 몸짓들

그 생명의 활기

자연의 순리를

막을 수는 없으리

 

눈 속에서 피는 꽃처럼

굳센 싹으로 꽃망울로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 뿐.

   

 

♧ 비탈과 골짜기 사이 - 이정란

 

경칩과 청명 사이

춘분이다

햇살의 입자는 가늘게 세포분열하고

바람은 날개 밑에 숨겼던 칼을 버렸다

자전거 타고 둑길을 달리던 사람이

멈추어 서서 연인에게 전화를 건다

초롱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새싹들

개울 양쪽을 이으려는 다리

사랑의 말은 마음 어디까지 스며들며

땅 속의 생기는 새싹 다리 놓아

무슨 꽃을 퍼뜨리려나

다리는 잇는 게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일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대 향해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춘분이다

살의 비탈과 영혼의 골짜기 사이

 

 

♧ 일월(日月) - 정희성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그 즈음에

해와 달을 몸받아

누리에 나신 이여

두 손 모아 비오니

천지를 운행하올 제

어느 하늘 아래

사무쳐 그리는 이 있음을

기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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