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이다.
제주에서는 온 섬에 오랫동안 피비린내 풍겼던
무자년 난리(4.3) 67주년,
작년에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
진정한 4.3의 봄은 언제나 올는지.
국가기관에서는 여론에 밀려 후속 조처가 별로 없이
추념일 지정만 한 셈이다.
내일은 국무총리가 참석한다든가?
죄가 있다면, 제주섬에 태어난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
해묵은 상처는 해가 갈수록 더해갈 뿐이다.
♧ 질치기 - 문무병
설운 님 오시는 길은
봄밤 새풀 돋아난 바람길이어라
비비둥둥 살장고 치며
혼 씌워 오는 밤에
하올하올 날아서 오는
나비 다리어라
테우리 마소 모는 소리 유연하고,
질토래비는 자왈곶[荊棘] 헤쳐가는데
어둔 밤 참호의 비명도 이어지는
어욱꽃 뉘엿뉘엿 눈부신 한라산,
님이 오시는 길은
바람길 구름길이어라
칭원한 소리 안개 속에 흐르는
저승길 대나무 상가지
백지 나부끼는 자왈곶[荊棘] 지나,
저승문 문직대장에 인정 걸고,
저승길 무명천 밟으며 상마을 도올라
아, 님이 오시는 길 열려 맞자
자손은 조상 그려
조상은 자손 그려
비새[悲鳥]같이 울음 우는 봄밤
님이 오시는 길,
칭원하고 원통한 저승길 열두 구비
열려 맞자
♧ 4월의 햇살 - 오영호
화산섬 돌담 밑에
60년 여문 한(恨)을
쪼아 문 산비둘기 푸드득 날아올라
구천의 대문을 열고
신원(伸寃)의 깃발
흔들 때,
와르르
쏟아지는
4월의 노란 햇살
반짝이는 나뭇잎에
새겨진 눈물 자국을
허기진 바람을 타고
쉼 없이 닦고 있네.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우네
♧ 진혼곡鎭魂曲 - 김광렬
슬퍼하지 마라
누구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느니
찢긴 저 풀잎도 제 상처 보듬어 안고 살아갈 것이니
별빛 치렁치렁한 밤 캄캄한 흙더미 속에서
잉잉 울고 있는 원혼들아
원통하다 원통하다고
삭은 뼈 긁으며 괴로워하지 마라
이 지상의 불꽃이었던 것들은 모두 재가 될 것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물이 되어 흐를 것이니
때 이른 승냥이 같은 바람이 할퀴고 갔을 뿐이니
바람칼 맞아 뚝뚝 떨어지는 꽃잎이었을 뿐이니
그러므로 그대들,
막 동터오는 아침햇살 한 자락씩 베어 물며
찬란한 이슬길 걸어 극락정토로 잘 가라
가서, 아름다운 넋으로 다시 살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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