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제주 4.3과 개복숭아꽃

김창집 2015. 4. 2. 08:33

 

잔인한 달 4월이다.

제주에서는 온 섬에 오랫동안 피비린내 풍겼던

무자년 난리(4.3) 67주년,

작년에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

진정한 4.3의 봄은 언제나 올는지.

 

국가기관에서는 여론에 밀려 후속 조처가 별로 없이

추념일 지정만 한 셈이다.

내일은 국무총리가 참석한다든가?

 

죄가 있다면, 제주섬에 태어난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

해묵은 상처는 해가 갈수록 더해갈 뿐이다.

 

 

♧ 질치기 - 문무병

 

설운 님 오시는 길은

봄밤 새풀 돋아난 바람길이어라

비비둥둥 살장고 치며

혼 씌워 오는 밤에

하올하올 날아서 오는

나비 다리어라

 

테우리 마소 모는 소리 유연하고,

질토래비는 자왈곶[荊棘] 헤쳐가는데

어둔 밤 참호의 비명도 이어지는

어욱꽃 뉘엿뉘엿 눈부신 한라산,

님이 오시는 길은

바람길 구름길이어라

 

칭원한 소리 안개 속에 흐르는

저승길 대나무 상가지

백지 나부끼는 자왈곶[荊棘] 지나,

저승문 문직대장에 인정 걸고,

 

저승길 무명천 밟으며 상마을 도올라

아, 님이 오시는 길 열려 맞자

 

자손은 조상 그려

조상은 자손 그려

비새[悲鳥]같이 울음 우는 봄밤

님이 오시는 길,

칭원하고 원통한 저승길 열두 구비

열려 맞자

 

 

 

♧ 4월의 햇살 - 오영호

 

화산섬 돌담 밑에

60년 여문 한(恨)을

쪼아 문 산비둘기 푸드득 날아올라

구천의 대문을 열고

신원(伸寃)의 깃발

흔들 때,

와르르

쏟아지는

4월의 노란 햇살

반짝이는 나뭇잎에

새겨진 눈물 자국을

허기진 바람을 타고

쉼 없이 닦고 있네.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우네

   

 

♧ 진혼곡鎭魂曲 - 김광렬

 

슬퍼하지 마라

누구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느니

찢긴 저 풀잎도 제 상처 보듬어 안고 살아갈 것이니

 

별빛 치렁치렁한 밤 캄캄한 흙더미 속에서

잉잉 울고 있는 원혼들아

원통하다 원통하다고

 

삭은 뼈 긁으며 괴로워하지 마라

이 지상의 불꽃이었던 것들은 모두 재가 될 것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물이 되어 흐를 것이니

 

때 이른 승냥이 같은 바람이 할퀴고 갔을 뿐이니

바람칼 맞아 뚝뚝 떨어지는 꽃잎이었을 뿐이니

 

그러므로 그대들,

막 동터오는 아침햇살 한 자락씩 베어 물며

찬란한 이슬길 걸어 극락정토로 잘 가라

 

가서, 아름다운 넋으로 다시 살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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