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권경업의 가을시편과 이질풀꽃

김창집 2015. 9. 10. 11:51

 

‘9월’ 하면 떠오르는 꽃,

바로 이질풀 꽃입니다.

 

짙푸른 풀잎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밀어 핀 꽃.

 

우리나라 산과 들, 어딜 가든

다양한 종류의 쥐손이과 꽃들이

이런 저런 이름으로 피어나

등산객들을 반깁니다.

 

오늘 아침, 이 꽃과 함께

'산악시인'이라 일컬어지는 권경업 시인이 생각나,

보내준 시집 중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을 펼쳐

시 몇 편을 옮깁니다.

 

 

♧ 9월

 

네 품안에 있어

더욱 아득한 산아

 

상수리 숲 도토리처럼, 이 가을에는

내 여린 그리움들도 여물겠건만

어찌하여 갈수록 눈물은 흔해지고

왜 이리 서글퍼지는지

 

아무리 누가 누구를 그리는 마음

아픈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것이라 해도

오죽하여, 쨍하던 써레봉 마루

저리 노을에 제 몸 태우랴

   

 

♧ 원동나루에서

 

흐르는 것 세월만이 아니네

무작정 한 곳으로 흘러가는

바보 같은 것도 있네

떠나는 뒷모습 먼발치서나마 볼까 싶어

까치발 돋우듯 산모퉁이 거슬러 오르는 마음에도

어김없이 중력은 작용하여

보이지 않는 산, 보이지 않는 바다 사이

쉼 없이 몸을 낮추는 강물 같은 것

구르고 처박히고 굽고 휘다가

여울목 게거품에 소리소리 지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깊어진 속 시퍼렇게 멍들인 그리움도 있네

 

 

♧ 섬

 

바다를 마주하면

내 서 있는 물은, 늘

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한번쯤은 그럴 때가 있었겠지요

누군가를 마주 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 가을에게

 

배경으로한, 한 없이 투명한

너 푸른 빛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발걸음에 내 귀는 시리고

소리 없이 전하는 바람결에

들끓던 가슴은 스산하여

나는 서성인다

 

뜨겁던 여름 날, 먼 빛으로

너를 예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 아침이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하여

나는 떨고 있다, 두려움은 아니라 말하지만

흔들리며 가야할 너와의 길이

저 쑥밭재 길섶 억새처럼, 밤마다

하얗게 울음으로 피어날 그 일이 걱정이구나

 

흔히들 쉽게 말하고 쉽게 지워버릴

그 무엇으로는, 정녕

너를 맞지 않으련다

 

 

♧ 해묵은 된장이고 싶다

 

동짓달에 담그고 삼월에 뜨는

햇 된장이 아니라

묵히고 묵혀 곰삭은

해묵은 된장이고 싶다

 

해거름 굽은 돌담길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올 너에게

숭숭 써린 애호박에 보글보글 끓다가

맨발로 달려 나와 구수하게 맞아드릴

토장국이고 싶다

 

자주 찾지 않아 허옇게 곰팡이가 슬도록

볕바른 장독대에서, 하염없이

쪼그려 앉아 기다려도 좋을

묵은 된장이고 싶다

가끔, 입맛을 찾았다고 말할 너에게만

 

 

♧ 한로(寒露)

 

세상이 다 애처로운 아침입니다

 

취밭목 길섶 제 혼자서 피어

끝내 한로 찬이슬이라고 우기는

저 가여운 들국화를, 누가

밤새 눈물 머금게 하였습니까

 

 

♧ 쑥밭재

 

내 숲한 뜬눈의 밤이

그리움의 척도라면

취밭목 등 굽은 굴피나무처럼

그대를 바라보며

한 백 년 서 있겠습니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초길 고향 나들이  (0) 2015.09.14
군산, 그리고 사계바다  (0) 2015.09.12
백로에 보는 으아리  (0) 2015.09.08
초가을 수크령 이삭  (0) 2015.09.05
강아지풀에 대한 명상  (0) 201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