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고향길, 금꿩의다리

김창집 2015. 9. 28. 08:13

 

추석이라고 해야

고향길도 밟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고조부에서 갈린 각 가족끼리 차례를 지내고 나서

오후 1시가 돼서야 집을 번갈아

전체가 모여 차례를 지내는 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 고향에는 세 집이 남았는데

가다오다 한번쯤 차례가 걸리는 때라야

그 집으로 찾아가 모이는 것이다.

 

아쉬운 대로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안부를 물으며 음식을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이 옮겨와 사는 제주시와

고향과의 거리는 22km, 차로 30분이면 가는 곳이니,

고향이 수백 수천km 떨어진 이곳 한라수목원에 와서 사는

그 간절함이 이 금꿩의다리만 하랴.

 

금꿩의다리는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70~100cm로,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며, 7~8월에 담자색 꽃이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피는데 꽃잎은 없다.

강원, 경기, 평북과 일본에 분포한다.

 

 

♧ 한가위 고향길 - 임영준

 

걸음마다 되새기게 되는

고향의 주름과

평생을 달고 살아야 하는

불효의 통증

 

지금까지 누린 것 중에

아직도 믿을 만한 것은

한결같은 보름달과

혈맥으로 이어진 끈뿐인가

 

그래도 어릴 적 포만했던

한 아름 추억은

뒷동산 무덤 곁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으려나

   

 

♧ 고향길 언덕에서 - 차성우

 

홀홀이 벗어버리고 떠나신 줄 알았더니

고향 언덕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구나!

 

산 넘어 아주 멀리 떠나신 줄 알았더니

갈잎길에 아롱아롱 바람으로 부는구나!

 

가도가도 다 못 간 길 구름으로 남았던가!

맺은 한 다 버리고 떠나신 줄 알았더니

 

남몰래 가슴속에 그리움이 있었구나!

   

 

♧ 고향길 -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도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되어 떠나려네

 

 

♧ 금꿩의다리 - 김승기

 

날지 못하는 새, 금꿩은

대신 세상을 자줏빛 다리로 걷는 법을 알아

길쭉한 다리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넘어질까 퍼덕퍼덕 날개 펼치면

이파리 너울너울 푸르렀다 희었다 춤을 춘다는데,

검은표범나비 제비부전나비 줄래줄래 따라와 꽃 핀다 꿀 흐른다 소리치며 매달리고

검은머리노랑배멧새 검은등알락할미새 울음소리도 덩달아 뛰어내려와 날개 위에서 팔딱팔딱 뒤웅박질을 한다는데,

뼈와 살과 피부까지도 금색인 금꿩이라서

금빛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본다는데,

울음도 금빛이어서

보이는 모든 것이 무지개빛 황홀한 기쁨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웃음과 환호성뿐이라는데,

웃음소리 울음소리 떨어진 자리마다엔 자줏빛 줄기로 쭉쭉 키 늘이며 꽃술 노랗게 꽃이 핀다는데,

그래서 뜨거운 여름날도 숲속은 언제나 시원하게 맑아

더위에 지친 영혼 식히려 너도나도 모여든다는데,

그 날갯죽지 품이 어찌나 그리 넓은지,

이건 모두

독을 약으로 발효시킬 줄 아는

어린잎 자줏빛 줄기를 꿈꾸는 천성 착한 너의

깃털 하나하나에서 뿜어내는

애틋한 마음,

꽃은 그렇게 피는 것이라네.

 

 

♧ 금꿩의다리 - 소양 김길자

 

산새들이 즐겨 노래하는

수목원에서

야리야리한 자줏빛다리가진

그녀를 만났다

 

누가 키웠을까

헌칠한 키에

다섯 폭 치마 힘껏 펼쳐 들고

꽃망울 터트리는 그 자태

 

고요가 흐르는 숲속에

보랏빛 꽃잎에 노랑꽃술로

아니,

노랑꽃술이 꽃술 아닌 꽃으로

자신을 지키며 피는 것을

바람은 알았을까

 

 

♧ 금꿩의다리 - 김윤현

 

뿌리는 뿌리가 할 일하여 금꿩의다리를 키운다

잎은 잎이 할 일하여 금꿩의다리를 푸르게 한다

줄기는 줄기가 할 일하여 하여 금꿩의다리를 세운다

꽃은 꽃이 할 일하여 금꿩의다리를 빛낸다

 

금꿩의다리는 꿩이 지나간 줄도 몰랐나 보다

 

꽃송이마다 금빛 좌망(坐忘) 주렁주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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