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추석 이튿날 저녁을 맞으러 다랑쉬오름에 오른다.
해마다 습관적으로 해온 일이지만
동행인들은 새롭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금은 초연한 자세로
내가 사는 거리를 생각하는 일,
가끔 한 번씩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곳에서 사는 가족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저 구름 속 태양이
마지막으로 내 보내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안간힘을 느끼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돌아본다.
이번에 자리를 같이 한 오름길라잡이강좌 9기생 외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지만, 그들이
저 태양이 내지르는 마지막 몸부림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비록 제일 크게 빛나리라던 달은
구름 속에 가려 맞지 못했을지라도
자연이 허여한 만큼만 즐기면 그만이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보았다.
짙은 구름 속에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는 달의 그림자를.
♧ 地上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 뒤에 連座연좌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날(日)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먹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地上지상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 번째 베어 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群集군집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새끼 짐승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 박아 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향해 손짓해도
정적으로 날아간 흰 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病병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노래가
발 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하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젖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하다면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라비오름의 억새 (0) | 2015.10.02 |
---|---|
뚱딴지가 여무는 가을 (0) | 2015.09.30 |
고향길, 금꿩의다리 (0) | 2015.09.28 |
뜻 깊은 추석 보내세요 (0) | 2015.09.27 |
추분 무렵의 흰진범 (0) | 2015.09.25 |